나를 바꾸게 한 ‘생각’의 스승, 함석헌

by 서옹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삶에서 생각이라는 게 그리 단순한 건 아닌 것 같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생각 없이 한 걸 알고 후회한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스무 살 때의 나도 생각이란 걸 했겠지만 생각 없이 산 것처럼 말이다.


1979년 가을,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졌을 때 나는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대학 신입생이었다. 고백하건대 그때 나는 그의 죽음을 하늘이 무너진 듯 슬퍼했고 눈물이 날 정도로 안타까워했다. 한 사람의 생이 끝났을 때 자연스럽게 드는 슬픈 마음을 넘어 국가의 큰 지도자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상실감과 이제 나라는 어떻게 되나 하는 낭패감 때문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호외(號外)가 세상을 뒤덮은 날, 나는 집 근처 전파사 앞을 지나다 전시된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추모 방송 소리에 잠시 멈춰 서서 보고 있었다. 장송곡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탓에 마음은 더욱 슬펐는데, 갑자기 옆에서 같이 TV를 보던 한 아저씨가 나 들으라는 듯이 “그렇게 오래 자리를 탐하고 사람들을 욕보이더니만 천하의 박정희도 업보는 어찌 못하네”하고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말투에는 그렇게 못살게 굴더니 그리될 줄 알았다는 속내가 진하게 묻어 있었다. 내 슬픈 마음과 다른 그것은 분명 생소했다. 그때까지 나는 박정희를 비난하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없었던데다 유신독재 정부의 주입식 교육에 흠뻑 젖은 맹목적인 청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짧게 스쳐 간 그 느낌을 장엄하고 긴 국장(國葬)과 함께 잊어버렸다. 그러다 이른바 ‘서울의 봄’이 끝나가던 이듬해 어느 날, 누군가가 쓴 글 – 아마 신문이나 시사잡지의 칼럼이지 않았나 싶다 - 에서 함석헌이라는 이름 석 자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글귀를 발견했다. 내용은 모른 채 그 글귀는 전파사 앞 아저씨의 말과 중첩되면서 내 머리를 때렸다. 이 느낌은 뭐지 하면서도 ‘그래. 사람이 생각 없이 살면 안 되지’하는 자문(自問)이 생겨난 순간이었다. 한참 지난 훗날이 되어서야 나는 함석헌이 오랜 세월 반독재투쟁과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실천적 종교사상가라는 사실과 그 글귀는 그가 쓴 칼럼의 제목이란 걸 알게 되었다.


주로 소설을 읽던 나는, 이후 ‘생각’이라는 것에 꽂혀 대학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철학, 종교, 사회, 역사와 관련한 책들을 보이는 대로 집어 읽었다. 읽고 나서 느낌이 생기면 노트에 생각들을 적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 서가에서 프랑스 혁명사와 관련한 책 한 권 – 지금은 저자도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 을 발견했다. 책은 긴 시간 진행된 프랑스혁명의 변화 상황과 그에 따른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목숨을 건 인물들이 어떻게 변해가고 타락하는지, 기득권세력은 어떻게 분열을 조장하는지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너무 두꺼워 여러 날에 걸쳐 읽은 후 내가 느낀 건 비판 없이 세상을 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과 성찰 없는 신념은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박정희의 죽음을 맹목적으로 슬퍼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나는 그렇게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스스로 의식을 하든 하지 못하든 조금씩 생각의 크기를 키웠다. 하지만 나에게 생각이란 걸 스스로 묻게 해준 함석헌의 글을 직접 접한 건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뒤인 87년 민주화 때였다. 몇 개의 칼럼을 단편적으로 읽었는데, 생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듯한 그의 글은 매번 나를 매료시켰다.


그렇게 맛보기 수준으로 즐기다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그가 쓴 책을 샀다. 함석헌 특유의 종교적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풀이한 <뜻으로 본 한국 역사>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의 칼럼 전체를 온전히 읽은 것은 오십이 다 되어서다. 뒤늦게 스무 살 때 기억이 떠올라 원문이 수록된 책을 찾아 산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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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서재에는 함석헌이 썼거나 관련한 책이 열 권 정도 있다. 가끔 인생이든 종교든 아니면 정치든 생각을 다시 세울 일이 있을 때 그의 책을 펴보곤 한다. ⓒ 정승주


함석헌의 이 칼럼은 놀랍게도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58년에 쓴 아주 오래된 글이었다. 더욱이 독립운동가였고 박정희의 유신독재와 맞섰던 장준하가 펴냈던 잡지 <사상계>에 기고한 글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내용은 6.25 전쟁이 주는 역사적 교훈에 대한 것이었고, 지금도 유효할 만한 역사 인식과 종교적 혜안을 담고 있었다. 나대로 해석해 보자면 우리 민족이 다시 하나 되는 진정한 자존(自存) 국가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백성(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내게는 그가 썼거나 관련한 책이 열 권 정도 있다. 지금도 가끔 인생이든 종교든 아니면 정치든 생각을 가다듬고 싶을 때 그의 책을 펴보곤 한다. 내 경우 생각은 각성을 일으키게 했고 성찰로 이어지게 했다. 성찰은 나를 조금은 다른 나로 바꿔줬다. 유대칠이 “생각이 삶을 다르게 한다.”(<대한민국철학사>, 이상북스, 2020, 124쪽)라고 한 것에 나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다 생각은 아니지 싶다. 생각했지만 생각하지 않은 것일 수 있고, 오히려 생각하지 않은 것만 못 할 수도 있다. 스무 살 때의 나를 보면 그렇다.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신영복은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인생의 결론이라고까지 말한다.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입니다. 나는 20년의 수형 생활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그 만남에서 깨달은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결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영복 지음, <담론>, 돌베개, 2015, 14쪽)


나이가 드니 생각이 자꾸 멈추는 걸 느낀다. 과거의 경험만을 고집하고 생각이 머물게 되면 그게 바로 ‘꼰대’일 것이기에 약간은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신영복의 말은 나에게 더욱 죽비처럼 다가온다. 이제 은퇴한 내가 세상에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짐은 되지 않아야 할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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