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은퇴해서도 일을 하려 할까

by 서옹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은퇴해서는 돈 벌기만을 위한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른바 ‘명함 없는’ 은퇴의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오해할까 명토 박아 말하면, 금전적으로 여유가 많아서 한 선택은 아니다. 저축한 돈이 조금 있긴 해도 고정 수입은 국민연금과 개인적으로 든 사적 연금에서 나오는 게 전부다. 조금이나마 여유를 주게 하는 사적 연금마저 수령 만기가 코앞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한 것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사는 삶도 괜찮을 성싶어서다.


결심대로 은퇴 후 2년을 ‘돈 안 쓰는’ 한량으로 지냈다. 산책하고 책 읽고 멍때리기가 내 일과였다. 누군가는 여유 있고 자유로워 보여 부러워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지루하기 그지없게 보일지 모르는 그런 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지 하며 할 일을 생각했다. 이유가 뭘까 하고 자문할 때도 많았다.


그러다 나는 강상중의 책 <고민하는 힘>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사회적 존재임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나는 ‘사람은 왜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타자로부터의 배려’ 그리고 ‘타자에 대한 배려’라고 말하겠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일하는 의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중략)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이면, 이 배려라는 ‘인정의 눈길’은 가족이 아니라 사회적 타자로부터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고민하는 힘>, 사계절, 2009, 118쪽)


강상중이 말하는 ‘인정의 눈길’, 즉 배려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사회적 존재인 나는 그 배려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현역일 때는 싫든 좋든 일터를 매개로 배려의 공간에 머문다. 나의 노동은 타자(직장)에 대한 배려인 셈이고, 급료는 타자(직장)로부터의 배려인 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은퇴 상황에서 드러난다. 일로 빚어지는 사회적 관계가 없어져 버려 배려를 주고받을 수 없게 되어서다. 은퇴 후 자유롭게 지내면서도 내가 무언가를 해야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다.


해결책은 두 가지다. 현역 때처럼 돈을 받는 일을 다시 찾든지 아니면 돈과 관계없는 일을 찾는 것이다. 은퇴한 나로서는 급료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여러 사정으로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으니 선택할 수 있는 건 급료 없는 일뿐이다.


그래서 찾은 일이 글쓰기다. 오래전부터 책 읽기를 좋아한 나로서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선택이다. 남는 문제는 어떤 글쓰기를 하느냐다. 일기 쓰기처럼 메아리 없는 글쓰기는 나 자신과의 대화나 성찰로서의 의미는 있겠지만 강상중의 말에 빗대어 보면 ‘인정의 눈길’을 기대하긴 어렵다.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글쓰기 외의 방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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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의 삶에서 늦게 시작한 글쓰기가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가 되면 좋겠다. ⓒ 정승주


은퇴한 지 2년 되는 지난 초여름, 마침내 나는 첫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용감하게도 그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 기사로 게재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이후 스무 편 가까운 글을 썼다. 일부는 <오마이뉴스> 기사로 채택되어 분수 넘치게 타자로부터의 ‘인정의 눈길’을 받았다. 얼마 전 뒤늦게 <브런치스토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작가 신청을 해 두 편의 글도 썼다. 늙은(?) 나이에 나름 열심을 낸 셈이다.


20년 세월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신영복 선생은 자신의 책 <담론>(돌베개, 2015)에서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햇볕 때문이라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하루의 깨달음과 공부”(425쪽)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생은 사람이 힘든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이유, 즉 ‘자기의 이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기의 이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를 줄이면 자유(自由)가 되기 때문입니다” (426쪽)


은퇴의 삶에서 늦게 시작한 글쓰기가 부디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가 되면 좋겠다. 인생이라는 고달픈 여정을 어찌할 순 없지만, 글쓰기가 내 삶을 자유로 이끈다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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