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했을 때 맨 처음 마주한 감정은 낯선 세상에 들어선 이방인 느낌이었다. ‘사무실’ 중심으로 돌아가던 내 세계가 ‘집’ 중심 세계로 변한 탓이다.
사무실 중심 세계를 사람과 일로 꽉 찬 세계라 한다면 집 중심의 세계는 가족과 지인만이 있는 텅 빈 세계다. 빠르고 부산한 세계에서 느리고 조용한 세계로 들어온 것이었다. 은퇴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던 셈이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은퇴 후 세계는 이전과는 다른 법칙이 작동하는 듯했다. 몇 가지만 보자.
무엇보다 수직적이고 공적 관계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수평적이고 사적 관계가 돋보이는 세상이다. 상사와 부하가 없고 갑과 을의 관계가 없다. 더는 지시하거나 대접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공적인 만남과 표현은 줄어드는 대신 가족, 친구, 지인 등과의 사적 관계가 늘어난다. 계급장이 없어 일을 강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공짜 생활이 허용되지는 않는다. 내가 할만한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 나 없이도 집안일이 잘 돌아갔었을 텐데도 자청해서 청소하고 빨랫감을 널고 설거지하는 이유다. 현실적으로 지위나 명예를 얻기도 어렵다. 그러니 미련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지나온 권세와 영화의 다리는 끊어버리는 게 현명하다. 내가 ‘명함 없는’ 은퇴 생활을 선택한 중요한 논거 중 하나다.
은퇴 후 세계는 성과나 결과가 아니라 태도와 과정이 중요한 세계다. 성과를 낼 일 자체가 줄어드는 대신 타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은퇴 초기 아들의 생활 태도를 이해하지 못해 제법 심각한 갈등을 빚은 것은 내가 걸맞은 태도를 갖추지 못해서다. 사적 감정의 분출이 많아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지시와 수용의 관계법이 아니라 공존과 평등의 관계법을 모르면 힘들어진다.
은퇴 후 마주한 세계는 틈이 없고 시간에 쫓기는 세계가 아니라 여백과 여유의 세계다. 무언가로 채울 수 있는 세계다. 무엇으로 채울 건가는 온전히 내 의지와 선택에 달려있다. 나만의 삶, 나대로의 삶을 살 기회는 커 지지만 반대로 삶에 대한 무력감이나 무상함이 커질 수 있다. 그래서 고민하다 선택한 것이 글쓰기다. 지금 나의 여백을 가장 많이 채워주는 현실적 수단이기도 하다. 글쓰기가 나만의 인생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 되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 은퇴는 이전 세계에서 벗어나는 결별의 출구이자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없는 길을 나만의 방법으로 내야 한다. ⓒ 정승주
내 경험상, 은퇴하며 들어간 세계는 열거한 것처럼 이전 세계의 상식과 문법이 통하지 않는다. 고집하면 할수록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철학자 강신주는 상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화두를 풀지 않으면 자신만의 삶을 살아낼 수 없다고 말한다.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결코 해결할 길이 없는 딜레마나 역설로 가득 차 있는 물음이 바로 화두입니다. (중략) 화두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려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관문 같은 겁니다.” (강신주 지음,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동녘, 2014, 15쪽)
은퇴는 이전 세계에서 벗어나는 결별의 출구이자 신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새로운 세계에서도 제대로 살려면 전에 가진 상식과의 결별과 세계에 맞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 앞에 놓인 화두를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무문관(無門關)>은 선불교의 여러 화두집 중 하나다. 강신주에 따르면 <무문관>은 13세기 초에 무문 혜개(無門 慧開), 즉 무문 스님이 이전에 전해오던 많은 화두 중 48개를 선별하여 해설한 화두집이다. 무문관의 한자어를 직역해 보면 ‘문이 없는 (관)문’이다. 제목부터 화두 모음집답게 역설을 담고 있다.
준비했음에도 그동안 내가 은퇴 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당혹해하고 때로는 힘들어 한 걸 보면, 은퇴라는 게 ‘무문관’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생각이 맞다면 나만의 화두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아이처럼 되어야 할 것 같다. 아이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세계를 습관의 눈이나 상식의 눈으로 보지 않고 그저 받아들여서다.
은퇴하고 2년 반이 지나니 이제야 생활이 조금 편안하게 느껴진다. 혹시 화두를 제대로 잡아 나만의 인생을 그런대로 살고 있다는 증표가 아닐까. 맞다면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