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어찌할까 하다가

by 서옹

나는 삼십 년 넘게 보고서 형식의 무미건조한 글만 썼다. 간혹 비켜서서 신문이나 전문 잡지에 칼럼 글을 쓴 적도 있지만 그 범주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오죽하면 아내가 “당신 글은 진짜 재미없어”라고 했을 정도다. 그런 말을 듣던 내가 은퇴 후 에세이 쓰기에 도전해 보겠다고 호기롭게 달려들었다.


첫 글 초고를 완성했을 때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내에게 보였더니 “칼럼 티가 나고 신파 조 문장이 거슬리네” 했다. 굳어버린 문체를 의식해 내 딴에는 힘을 빼고 감정도 넣고 했는데, 냉정한 내 첫 독자는 글의 어설픔과 과장을 정확하게 집어냈다. 문투를 고치고 또 고쳐 겨우 아내의 윤허를 받아 마무리했다. 요즘은 지루하다거나 신파 조라는 말을 다행히 아주 가끔 듣는다.


얼마 전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모처럼 보고서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글 성격상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게 일의 전부다. 현직에 있을 때는 쉽게 찾을 수 있던 자료를 은퇴하니 쉽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마땅치 않았고 진행이 더뎠다. 동향 파악이나 데이터 검색할 때 어쩔 수 없이 AI 도움을 받았다. 원(原)자료와 교차 확인해야 하는 게 성가셨지만 그래도 훨씬 쉽고 빠르게 마칠 수 있었다.


나는 글 한 편을 뚝딱 써내지 못한다. 글쓰기 재주가 없어서겠지만 완벽주의 성향까지 보태져 초고를 끝내고 나서도 유난스럽게 많이 고치기 때문이다. 오타 수정이나 문구 다듬는 건 기본이고, 여러 단락을 통째로 들어낼 때도 있다. 심지어 주제까지 바뀌기도 해 그럴 때면 초고와 전혀 다른 글이 되기 일쑤다. 손품이 많이 들다 보니 아무리 열심을 내도 매주 한 편 이상 쓸 수 없다. 최근에는 격주에 한 편꼴로 써내는 게 루틴처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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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주


언제부턴가 <브런치스토리>에서 AI를 이용해 썼음을 밝히는 글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오타를 수정하고 문장을 다듬는 걸 넘어, 심지어 초고 작성 때부터도 활용한단다. 글을 꾸미려고 넣는 사진이나 그림도 AI가 생성한 이미지로 대신하는 게 대세인 듯하다. 매번 그림을 그려 넣는 나로서는 잠깐이나마 솔깃해진다.


그림그리기도 이럴진 데 글 쓸 때는 얼마나 편할까 싶다. 보고서 형식 글이긴 하지만 AI 도움을 한번 맛보고 나니 더 유혹으로 다가온다. 순간, 글쓰기가 대체 뭐길래 쓸 때마다 어렵고 힘들다며 매번 투덜대면서도 놓지 못할까 하는 반대의 물음이 속에서 불쑥 올라온다.


내 안에서 자꾸 시켜서, 누군가에 공감받고 싶어서, 사는 게 힘들어서, 화가 나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작가가 되고 싶어서, 쓰는 게 그저 좋아서 등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브런치>에 쓴 내 글들을 읽어봤다. 어느 글 하나 예외 없이 나 자신과 나 자신이 품고 관계하는 것들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문투가 좀스럽고 문맥이 엉성한 데다 내용도 상투적이고 평범한 것이 딱 하자투성이 ‘나’다. 그런 내 분신을 스스로 자라게 하지 않고 남(AI)에게 맡기려 했다니.


해서,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쓸 수 있을 때까지 오롯이 내 힘으로 쓰자고 다짐해 본다. 한 단어씩 내 마음을 내보이는 태도와 똑바로 걷지는 못하지만 내 걸음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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