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날려 버린 추석 연휴

by 서옹

유난히 긴 추석 연휴. 시작은 좋았다. 아끼는 후배의 반가운 제안 덕분에 연휴 첫날부터 느긋하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집을 떠나 흩뿌리는 빗속에서 하는 드라이브는 호젓하고 여유로웠다. 연천 재인폭포 주변 길을 걸으며 나눈 담소가 시간을 잊게 했고, 햄버거 아침과 묵밥 점심은 새로웠다. 펼쳐진 풍광에 취해 캠핑용 간이의자를 두고 왔다가 되찾은 에피소드는 기분 좋은 덤이었다.


추석날도 좋았다. 멀지 않은 곳에 사시는 부모님을 모셔 와 집에서 단출하게 보내는 게 내 한가위 루틴이었는데, 이번에는 가족이 해외에 살아 자주 빠지던 동생뿐만 아니라 예비 며느리까지 함께해서다. 들뜬 마음에 아내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다 떨고 포식까지 했다.


부모님을 댁에 모셔 드리고 큰애 커플도 돌아가고 나니 집이 금세 적막해졌다. 글이나 쓸까 싶어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 검색창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윈도우10, 10월부터 지원종료’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잊고 있었다. 달포 전 10월 14일부로 윈도우10 버전에 대한 업데이트 지원이 끝난다는 걸 알았지만, 반은 잊고 반은 미루고 있었다.


다행히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기존 윈도우10 사용자에게 윈도우11을 무료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했다. 이왕 해야 하는 거라면 당장 하자 싶어 방법을 알아봤다. 까다롭다. 우선 컴퓨터 하드웨어 사양이 최소 요구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오래된 사양의 컴퓨터에서는 윈도우11을 깔지 못할 수도 있어 그 경우에는 새로 컴퓨터를 사야 한다는 의미다. 컴퓨터 메인보드의 BIOS(컴퓨터 부팅 시스템) 보안 설정도 설치조건에 맞아야 한다.


마음이 급해졌다. <PC 상태 검사 앱>을 실행하여 확인해 봤다. 프로세서, 메모리, 저장장치 등 하드웨어 요구조건은 통과됐다. 최소한 새로 컴퓨터를 사지 않아도 됨을 확인받은 것이다. 하지만 BIOS 보안 설정 요구조건 - TPM 2.0 기능 및 보안 부팅 활성화 - 은 충족하지 못했다. 방법을 검색해 설정을 바꾸려 여러 번 반복하며 늦은 밤까지 애썼지만 되지 않았다.


20251014_101437.jpg

ⓒ 정승주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원인 찾기에 나섰지만 만만치 않았다. 메인보드 제조사에 따라 BIOS 버전이 각양각색이었기 때문이다. 내 컴퓨터의 제조사와 BIOS 버전을 확인해 방법을 달리해가며 시도했다. 소득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컴퓨터와 기계에 밝은 손위 동서에게 연락했다. 동서는 자기도 같은 문제에 봉착해 우회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며 방법을 자세히 알려줬다. 조금 안심이 됐다. 동서가 알려준 대로 했다. 과정을 따라가다 놓치는 게 생길까 봐 태블릿을 옆에 두고 작업했다. 하지만 또 실패였다. 그렇게 하루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또 다른 다음날. 머리가 무겁고 짜증이 났지만 차 한잔을 내려 마시며 다시 시도했다. 동서가 알려준 방법은 희망이 보이지 않아 포기했다. 대신 실패한 모든 경우를 집어 보고 그때그때 인터넷 검색도 해가며 BIOS 설정을 바꿔봤다. 그렇게 속절없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갔다. 포기할까 싶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다시 할 힘이 생겨났다. 한참을 씨름하다가 우연히 어떤 모드를 설정했더니 부팅과 함께 컴퓨터가 제 스스로 윈도우11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두어 시간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오매불망! 얼마나 기다렸던가! 모니터에 윈도우11 화면이 내 눈앞에 보란 듯 펼쳐졌다.


대신, 이전에 사용하던 MS 오피스나 한글 오피스와 같은 응용프로그램들은 모두 사라졌다. 완전히 새로 설치된 것이다. 다행히 정품 구매 이력이 있어 손쉽게 다시 살릴 수 있었다. 께름직한 건 부팅 시간이 5분 정도로 오래 걸린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인터넷이나 응용프로그램을 쓰는 데는 불편이 없었다.


기쁜 마음에 동서에게 전화해 소식을 알렸다. 동서는 이것저것 꼼꼼하게 물었다. 대화가 오가던 중에 부팅이 오래 걸린다고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동서는 부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 했다. 부팅 디스크나 디스크 형식 설정이 잘못됐을 거라는 뜻 모를 말을 하며, 그대로 방치하면 디스크가 빨리 손상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듯 덧붙였다. 원인을 찾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잠을 잘 수 없어 한참을 뒤척였다.


컴퓨터와의 씨름, 나흘째 날. 동서가 말한 문제들을 해결하려 인터넷을 검색해 겨우 방법을 찾아냈지만 작업은 쉽지 않아 보였다. 부팅할 디스크의 형식을 변환해야 하는데, 윈도우 시스템 이전의 도스(DOS) 시스템 형식에 접속해 명령어를 입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검은 화면 위에서 반짝거리며 명령어를 기다리는 프롬프트를 다시 마주하니 30년 전 박사과정 시절 C++로 프로그래밍에 몰두하던 때로 돌아간 듯했다. 나는 잘못된 명령어를 입력할까 봐 조심에 또 조심하며 디스크 형식을 변환했다. 확인해 보니 제대로 됐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업그레이드 시작 키를 눌렀다. 1시간 남짓 돌다가 모니터에 윈도우11 화면이 나타났다. 컴퓨터를 재부팅해 시간을 재봤다. 5~1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정품 인증도 되어 있었다.


나는 개선장군이라도 된 양 곧바로 아내에게 달려가 소식을 알렸다. 컴퓨터를 새로 사지 않아도 되고 윈도우를 다시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며 자랑했다. 중간고사 시험 준비에 바쁜 둘째에게도 쉬는 틈을 노려 자랑했다. 컴퓨터 때문에 날려 먹은 나흘에 대한 아쉬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딱 고진감래(苦盡甘來)였다.

작가의 이전글AI를 어찌할까 하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