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성에서만큼은 보수적인 사람이다. 여간해서 낯선 음식에 도전하지 않는다. 먹던 걸 관성대로 즐길 뿐이다. 결정장애도 있다. 식당을 정하거나 식당에서 먹을거리를 정할 때 나서는 법이 없다.
아내 역시 보수적이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입이 까다롭다. 나를 닮아선지 애들도 매한가지다. 큰애는 중도라고 우길 정도는 되지만 둘째는 극보수에 가깝다. 해서 우리 가족 외식은 모두가 동의하는 대여섯 곳 식당 중 하나에서 쳇바퀴 돌듯 이루어진다.
보리굴비. 내가 참 좋아하는 요리다. 40대에 이르러서야 처음 맛보고 난 후 최애(最愛) 요리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보리굴비 집에서 외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내와 큰 녀석까지는 동의를 끌어낼 수 있어도 둘째를 넘어서긴 어려워서다.
가족 외식 목록에도 없고 아내가 요리해 주지 않아도 현역으로 일하던 때는 보리굴비에 대한 갈급을 손쉽게 채울 수 있었다. 직원 회식이나 이런저런 식사 모임 덕분이다. 두세 달에 한 번 정도는 맛봤다.
문제는 은퇴 후였다. 보리굴비를 먹을 기회가 급전직하(急轉直下)했다. 애들을 떼어놓고 아내와 먹을 때뿐이었다. 해에 한두 번이 고작이었다.
그러다 예기치 않게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지방에서 근무하던 큰애가 본사로 발령이 나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되면서였다. 어느 날부터 아내가 보리굴비를 사서 냉동 보관하며 손수 요리해 주기 시작했다. 떨어져 살던 사이에 녀석이 보리굴비 맛의 진수를 알게 된 것이다. 더해 성년이 된 둘째도 수용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곁불이긴 하지만 나는 다시 현역 시절처럼 보리굴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1년이 채 안 돼 큰애가 또다시 나가 살게 된 것이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다.
ⓒ 정승주
엊그제 점심 무렵. 뜬금없이 아내가 “점심으로 보리굴비 어때?” 했다. 속으로 ‘무슨 일?’하면서도 쾌재를 불렀다. 아내가 마음을 바꿀까 봐 얼른 “좋지!” 하며 맞장구치곤 두 손 들어 환영했다.
조금 지나 찜통에서 배어 나오는 내음이 온 집안을 휘돌아 감쌌다. 보리굴비가 매혹적인 모양으로 식탁에 차려진 순간 나는 둘째를 불렀다. 나타난 아들은 무덤덤하기 그지없다. 아내는 친히 먹음직한 부위를 떼어 아들 앞접시에 놓아줬다. 녀석 심기를 보위하는 양.
맛 고픈 나는 짐짓 모른 척하며 냉 녹찻물에 밥을 말아 밥 한술에 굴비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밥 한 그릇이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 반 공기를 더 펐다. 남은 굴비에 맞추어 양을 조절하며 먹고 있는데 아들은 “잘 먹었습니다” 하며 먼저 일어섰다. 좋고 싫음이 없는, 달관한 듯했다. 아내는 아들에게 잠깐 눈길을 주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나에게 알 듯 모를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보리굴비를 먹은 게 아니라 사랑을 먹은 거라는 걸. 아내가 그리고 둘째 녀석이, 내게 사랑을 내어준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