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코앞인데 여전히 덥다. 습기까지 머금은 공기 탓에 짜증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에어컨을 켜야 하나 망설이다 얼음물 한 잔을 들이켰다. 조금 낫다.
더위도 잊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볼 요량으로 컴퓨터를 켰다. 뉴스포털에 접속하려는 순간, 불쾌지수만 더 높일 게 뻔한 걸 왜 봐야 하나 싶어 대신 유튜브로 넘어갔다. 알고리즘이 과학 다큐로 나를 유혹했다. 영상 아래 붙어있는 제목이 ‘소수를 찾기 위한 천재 수학자들의 도전’이라 못 본 체를 할 수 없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학창 시절에 ‘1과 자신을 제외하면 어떤 수로도 나누어지지 않는 수’ 정도로만 배웠던 소수(素數). 이 단순하게 정의되는 수가 수학자들에겐 매력적인 탐구 대상이라 했다. 최초로 지구 둘레를 계산했다는 고대 그리스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에서부터 가우스, 오일러 그리고 리만에 이르기까지 내가 이름 정도 알고 있는 수학자 모두가 소수에 숨겨진 규칙을 찾으려 했다. 심지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앨런 튜링(<이미테이션 게임>)과 존 내쉬(<뷰티풀 마인드>)도 소수 탐구 대열에 동참한 수학자였다.
흔히 수와 수학의 세계는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를 추상화한 것이기에 규칙의 세계라 불린다. 소수가 곤혹스러운 건 무수히 많은 소수를 세다 보면 규칙이 보일 법한데도 그렇지 않아서란다. 해서 옛 수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은 소수에는 우주의 법칙 같은 것이 숨겨져 있지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공교롭게도 소수로만으로 이루어진 오일러 계산식은 이런 추측에 힘을 보탰다. 자연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도형으로 여겨지는 원의 상징, 파이(π, 원주율)가 계산식의 정답 항에 비밀스럽게 자리 잡고 있어서다.
수많은 수학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의 세계 안에서 소수는 여전히 비밀에 싸여 있다. 오일러에 이어 리만이 제시한 소수 분포의 규칙성 추측과 관계되는 리만가설 역시 아직 풀지 못한 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나는 영상을 닫으며 ‘여전히 신은 장난 많고 심술궂네’ 하는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불쑥 사춘기 시절의 기억과 학위논문 준비 시절의 기억이 하나씩 소환됐다.
ⓒ 정승주
고등학생 때였다. 교과서가 아닌 어떤 책을 읽던 중이었지 싶다. ‘있음’과 ‘없음’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0과 1을 떠올렸고, 0과 1 사이는 끝이 있는데 어떻게 그 안에 무한의 수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며 신기해했다. 그건 무와 유처럼 분명 모순적이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무엇이었다. 치기 어렸던 나는 세계는 불완전하고 모순덩어리임이 틀림없다고 성급하게 결론 아닌 결론을 내렸었다.
학위논문 쓸 때는 조금 더 길고 깊은 경험을 했다. 교통망 문제나 통신망 문제처럼 대개 네트워크 문제는 해를 구할 때 네트워크의 크기(규모)가 커지면 컴퓨터의 계산시간도 그에 비례해서 늘어나는 게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해서 규모가 큰 현실의 네트워크 문제를 풀기 위해 대안으로 영점 타격하듯 필요한 지점만을 거치며 근사해를 구하는 방법을 쓰곤 한다. 근사해가 진짜 해는 아니지만 현실의 의사결정에 있어 정답처럼 써도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런 근사해를 도출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실제 문제를 푸는 게 내 학위논문의 고갱이다.
나는 근사해를 구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후 실효성을 검증하려 아주 작은 크기의 테스트 문제뿐만 아니라 풀어야 할 실제 문제에도 적용해 봤다. 실제 문제에 대해 알고리즘은 2시간 남짓 만에 해(근사해)를 계산해 냈지만 진짜 해는 하루가 지나도 얻지 못해 결국 컴퓨터 전원을 강제로 끌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내 컴퓨터 성능으로는 실용 측면에서 계산 불가였던 셈이다. 순간 내가 다루는 이런 작은 문제조차 진짜 해를 계산할 수 없다니 싶었다. 그때 나는 세계에는 끝 모를 깊이와 비밀의 벽 같은 게 있음을 실감했고, 사춘기 때와는 다른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과 경외감이 함께 엄습했다.
노년의 문턱에 선 지금 나는, 살아낸 세월의 무게만큼 또 조금 달라졌다. 세계가 여전히 신비롭고 끊임없이 궁금하게 하는 그 무엇이어서 좋고, 그 세계의 한 귀퉁이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의 마음이 절로 생겨서 좋다. 늦더위가 영상을 불러오고 영상이 옛 기억을 소환하는 과정이 괜스레 우연만이 아닌 기분 좋은 나비효과처럼 느껴진다. 비록 이렇게 막글을 쓰게 만드는 부수 효과를 내긴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