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by 석정호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밖의 어떤 일에 무력감을 느끼거나 안타까워할 때가 있다.


경주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다.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날 저녁 국어 선생님께서 큰 가방을 들고 경주역으로 바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선생님은 광주 분이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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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 고향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때는 5. 18 이전이라 선생님의 자부심은 일제 강점기의 광주학생운동이었다. 연극도 하신다고 했는데 일제에 맞서는 학생들의 분노를 표정과 몸짓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곤 했다. 그러면서 경주가 너무 오고 싶었다고 했다. 신라 천년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곳으로 자원해서 왔다고 했다.

약간 특이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선생님은 재미있으셨고 어린 내게 그 순수한 열정이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이들을 잘 통제하지 못했다. 장난꾸러기에 철없는 중학교 놈들을 휘어잡기 어려워했다. 다소 과장된 표정 연기를 보며 아이들은 웃었고 그 모습을 따라 하며 놀리기도 했다.



대구 여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순영이라는 유순하고 예의 바른 학생이 있었다.

광주가 고향이었다. 어떤 연유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순영과의 면담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영은 전라도 태생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왠지 아이들과 섞일 수 없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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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이 아팠다. 순영이 아이들과 잘 어울리기를 바랐다. 순영은 나를 잘 따랐고 그 당시만 해도 요즘처럼 지역감정이 심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광주에서 오신 선생님은 결국 광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눈 내리던 날 저녁, 바삐 경주역으로 들어가시던 발걸음이 마지막이었을까?

순영도 일 학기를 넘기지 못하고 전라도의 어느 학교로 전학을 갔다.


구조적인 부조리로 인하여 인간성의 순수함이 상처를 입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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