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만취

by 석정호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나는 술집 앞에서 마냥 서성이는 사람이 된다.
과감하게 그 문을 열고 들어서지 못하면서... 즐기던 생활습관을 어느 날 문득 끊어야 한다면 그 단절감은 얼마나 뼈 아픈가?

나를 보고 칭찬인지 모를, ‘선비 같다 ’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꽁생원처럼 융통성이 없다고 아내는 욕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불상의 다면체다. 지금은 아닐지 몰라도 내 안에도 질풍노도의 욕망이 꿈틀거렸다.


처음 술을 마실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서먹하던 사람들이 와락 턱밑에 다가오고 세상의 모든 먹구름들이 사라진다. 술에 빠지게 되는 첫걸음이다. 국문학을 전공하던 우리는 그 시절 송강 정철의 후예라면서 기고만장했었다. 옛날 가사문학의 거봉이었던 정철은 우리가 추앙할 대선배이며 늘 술에 취해 신선임을 자처한 송강을 본받아야 한다면서 말술을 마다하지 않으려 했다. 한때 나도 술에 취해 부리는 추태를 낭만적 객기라 여기며 두주불사 했었다.



신손.jpg




구수한 순댓국 냄새가 길바닥을 훑어 퍼지는 시장 골목에서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면 굽은 허리로 가마솥에서 술국을 푸는 할머니가 있고, 늙수그레한 남자들 몇이 소주병을 기울이는 그런 풍경이 좋았다. 아주 젊은 시절에는 꽝꽝 음악이 천정을 울리고 호기로운 열정들이 출렁이는 맥주홀에서 나 또한 그 파도에 올라타기를 서슴지 않았다. 우연히 찾은 시골 읍내의 술집에서 코를 찌를 듯 풍기는 지분 냄새를 맡으며 신세타령을 늘어놓는 작부와 마주 앉은 날도 있었다.


나는 황순원의 소설을 즐겨 읽었는데, 자전적 소설 속의 주인공이 황혼 무렵이면 쓸쓸히 술집에 앉아 독작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지친 일상에서 발길을 돌리고 혼자 퇴근할 때, 왠지 모를 고독감과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의 실타래가 끈적거리며 따라올 때 발걸음을 시장통의 술집으로 옮기곤 했다. 조금씩 술잔을 털어 넣으면 어두운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새들은 날아가고 알 수 없는 푸근한 미소가 깃들며 자리에서 일어설 때쯤이면 기분 좋은 능청거림이 몸을 움직인다.


오래전 건강상의 이유로 나는 술을 끊었다.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불판의 고기를 사이에 두고 술잔을 기울이는 그 곁을 지나면서도, 들큼한 아카시아 향내가 비에 젖는 퇴근길에 어디선가 파전을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골목을 걸으면서도, 아내의 각 진 말들이 종일을 따라다니는 날에도, 나는 그냥 무심한 듯 지나는 어깨의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꽈리-1.jpg



지금은 술에 대한 미련도 애착도 사라지고 다른 여러 가지의 즐거움들이 내 곁에 있지만, 다시 한번 만취하여 집의 현관문을 호기롭게 들어서고 싶은 때가 있다.


“여보, 나 왔어!”


모든 것에서 풀어진 행복한 가장이 되고 싶어지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숲 근처 두견새 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