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일이 있어서 연차를 내는 게 아니라 먼저 연차를 내고 할 일을 찾기 시작했다.
큰 굴곡이 없는 평범한 하루에 감사하면서도 가끔 특별한 하루를 꿈꿀 때면 고민이 깊어진다.
아직 아이가 어린 탓에 혹여 나중에 연차를 쓸 일이 생길까 싶어 고이고이 모셔놓은 연차이지만, 가끔 일에서 한 발짝 벗어나고 싶을 때, 몸이 너무 피곤할 때면 아껴놓은 쌈짓돈을 꺼내듯 연차를 쪼개 쓴다.
문제는 이 소중하고 아까운 연차를 어떻게 쓸지 도저히 생각이 안 난다는 거다.
태생이 부지런한 탓에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타입이 아닌지라 늘 무언가를 해야 시간을 허투루 쓴 것 같지도 않고 보람도 되었다. 그래서 늘 하루 전 저녁부터 내일 할 일을 대략 정해놓고 나서야 비로소 '내일 쉬는구나!라는 안도의 감정이 들고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졌다.
결혼 전에는 휴일에 친구도 만나고, 함께 영화도 보고 그렇게 보낸 것 같은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는 조용히 혼자 사부작 대기 시작했다. 혼자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종일 책을 읽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전혀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독립적으로 지적으로 채운 하루를 생각하면 스스로에 자부심도 생기고 보람도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니 무언가 하던 거 말고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무언가를 생각하려다 보니 되는 것보다 안 되는 이유가 먼저 떠오르게 되고, 이런저런 이유로 시작도 전에 포기하게 되었다.
'필라테스가 배우고 싶은데,
평일엔 아이 등하원에 주말은 온종일 독박 육아니 안 되겠지... '
'해외여행을 가고 싶은데,
지금은 연초라 회사 업무도 바쁘고, 모아놓은 여행 자금도 없으니 안 되겠지... '
'지난 1년 고생해 상도 받은 나를 위해 선물하고 싶은데,
지금 딱히 가지고 싶은 것도 없는데, 그냥 나중에 생각나면 사야겠지... '
하고 싶은 것은 분명 있는데, 될 이유를 찾기보다는 안 될 이유가 먼저 떠올랐다. 어떻게든 방법은 있을 것인데 아주 사소한 바람도 눈에 띄는 확실한 답이 없으면 뒤로 제쳐 두었다. 그렇게 안 되는 게 쌓여가면서 내 마음 한편에 알 수 없는 갈증과 답답함이 쌓이기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참 모순되게도 일과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안될 이유보다는 될 이유를 먼저 찾는다.
밖으로는 될 이유를 안으로는 안 될 이유를 찾는 게 습관이 되면서 어느 순간 나 스스로가 지쳐 있음을 깨닫고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숨 쉴 구멍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
뭐라도 해보자 연차를 냈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뭐라도 해야지 싶으면서도 늘 그 무엇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아온 나다.
어떻게 하면 이 소중한 시간의 목마름을 채울 수 있을까...?
누군가 좋은 팁이 있다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