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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메이쩡 Apr 15. 2024

외로운 놀이터

사람에 웃고 사연에 울다


요즈음 주말이면 아이와 집 앞 놀이터 향한다.

겨우내 추워서 집안에만 있다가 이제 날이 풀리니 정말이지 원 없이 놀이터를 간다.


매주 다른 아이템으로 아이의 시선을 돌리기엔 흥미도 자원도 한정적인지라 겨울 내내 꽃피는 봄 기다렸다.

부모들 모두 나와 같은 맘인지 그간 한산했던 놀이터는 아침부터 아이 손을 잡은 가족들로 종일 붐댄다.


그중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들을 자주 만난다.

처음에는 가벼운 눈인사만 했는데 조금 컸다고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놀곤 하는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좋다.

나만 바라봐 라는 눈빛으로 엄마만 찾는 아이가 어느새 친구바라기가 되어 있다니. 아이가 금세 자란 것 같아 한편으론 서운한 마음도 든다.


아이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위해 엄마들과의 눈인사도 필수다. 누군가와 수줍은 인사가 낯설지만 내 아이를 위해 용기를 내어본다. 그렇게 하루 이틀 눈인사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속얘기도 하고 남편 욕도 하는 사이로 무르익는다.


오늘도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는 친구를 발견하곤 내가 더 신이 나 인사를 했다. 놀이터에서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엄마와 직접 인사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그 엄마도 늘 주말이면  두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남자아이 한 명도 이렇게 힘든데 둘이라니.

나도 모르게 존경심이 피어올랐다.


요즘 주말은 부쩍 한가해진 남편과 함께다. 

아이들은 놀게 하고 우리 부부와 아이 친구 엄마 이렇게 셋이서 돗자리에 자리잡고 인사하며 안부를 물었다. 

엄마들의 대화에 끼지 못해 멋쩍어진 남편이 다.


"애들 아빠는 같이 안 나오셨나 봐요?"

순간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아, 남편 없이 저 혼자 키워요...

남편이 사고로 먼저 갔어요. 얼마 안 되었어요.

처음엔 좀 힘들어 매일을 울었는데 지금은 좀 괜찮아요..."


너무나 덤덤하게 이야기하는데 그게 더 했다.

아직 30대 중후반을 조금 넘긴 젊디 젊은 두 아이의 엄마가 늘 구석에서 외롭게 보였던 게 마음이 쓰여 다가갔는데 역시나 그녀는 남모를 슬픔을 홀로 삭히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매일을 아빠와 함께 했던 공간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숨통을 트이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그녀 애써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직 아이들에게 이야기 못했어요...

아이들은 아빠가 멀리 여행 갔다고 알고 있어요.

아이들한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분명 아빠 손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은데 벌써부터 걱정이요..."  애써 웃음 지었다.


그녀는 분명 미소 짓고 있었는데 눈이 너무 슬펐다.

순간 감히 어떤 위로를 해줘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 이후에도 계속 놀이터에서 만나는 그녀는 나에게 속 얘기를 해준 이후부터 너무나 밝게 인사를 건다.


그런 그녀의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가 얼마나 사랑으로 대했는지 알 것 같다. 행동도 말도 너무나 예의 바르고 예쁘다. 그런 것이 대견하면서일찍 철이 들어 보이는 첫째 아이를 보니 짠하기도 했다.


그간 이래저래 사고를 치는 남편을 보결혼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내 아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래 다정한 아빠였지...' 하며 다시 미소 짓고는 다. 

아무리 미운 사람일지라도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세상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것들이 많은데 하늘은 왜 이 아이들에게 있어 그 전부를 데려가셨을까?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삶은 늘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기대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예상치 못함 슬픔에 강제로 적응해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고 무겁 느껴다.


그래도 살아내고 살아내서 더 잘 살아갈 그녀의 소중한 인생을 응원하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 지금의 현실을 부정하기보다 더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었다.


내 주인의 발걸음을 간절히 기다렸을 외로운 놀이터. 오랜만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기분으로 행복했을 놀이터. 그런 놀이터가 오늘은 괜스레 슬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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