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분 자가훈련일지
늘 함께 달려왔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여정은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어 그 끝을 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방향을 향해 함께 달린다고 생각했다. 속도가 같지는 않지만 늘 함께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크게 외로움을 느끼진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옆을 보면 늘 나는 혼자였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돌려 그를 찾곤 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나만 혼자 힘든 어둠 속을 달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괘씸하고 미웠다. 하지만 나만 그 어둠을 견뎌낸 것이 아니었다. 공간만 다를 뿐 그 역시 어둠 속을 홀로 내달리고 있었다. 그 어두운 터널 끝에서 희망은 있겠지라는 나의 믿음과는 다르게 그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달리고만 있었다. 마치 엄마의 자궁 속에서 아직 세상 밖에 나오지 않은 아이처럼 앞으로 펼쳐질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두려운 것처럼 두 눈을 꼭 감은채 그저 열심히만 달렸다.
나 역시 보호받고 싶었기에 그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외면했다. 여태껏 혼자만 발버둥 쳐왔다는 사실에 대한 억울함과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한다는 자괴감은 잔뜩 날이 선 채 말로 뿜어져 나왔다. 넌 충분히 그래도 돼 라며 내 안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인데 내가 뭘 어떻게 더 해줄 수 있을까 싶어 그저 혼자 알아서 어둠 속을 깨고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길 바랐다. 그게 그리도 큰 욕심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충분히 혼자서 이겨낼 수 있다고 아니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정 이혼이라는 결말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목적지 없이 자신만의 동굴 속에서 그저 내달리던 그에게 나의 말은 힘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꽁꽁 숨는 독이 되었으리라. 말로는 알겠다며 철저히 다짐하는듯 보였지만 그는 결국 더욱더 깊이 숨어버렸다. 더 완벽하게 들키지 않기 위해 더 꼭꼭 자신만의 방어선을 구축했고 이내 추적조차 불가능하도록 그 장벽을 더 높게 쌓았다.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만 달리는 그에게 나는 옳은 이정표를 제시하는 페이스메이커가 되고 싶었지만, 나 역시 숨이 가쁘고 힘이 들자 스스로의 몸조차 돌볼 여유가 없었다. 서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었지만 이미 서로의 거리가 벌어졌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를 인정할 용기조차 없던 우리는 계속해서 본인이 안전하다 느끼는 그 길로 앞만 보고 달렸다.
마침내 그게 길이 아니라 허공이었음을 알았을 때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리도 열심히 달려온 흔적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기에 그 허탈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잘못 쌓아 올린 하루하루의 행적을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바꿀 수 있을까? 멀리 보는 것도 무척 중요하지만 허공 속에 발버둥 치는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오늘 지금 당장 밟을 수 있는 디딤돌 하나였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매일 지키고 실천할 수 있는 가이드가 있다면 한번 시작해 보자 마음먹었고, GPT가 일러준 이정표에 이어서 질문하기 시작했다.
GPT야, 남편에게 필요한 게 CBT(인지행동치료)라고 했는데 이게 무엇인지 설명해 줄 수 있니?
정말 좋은 질문이에요.
지금 말씀하신 CBT 기반 회피행동치료는 — 남편처럼 문제를 피하거나 거짓말로 덮는 행동이 반복되는 사람에게 특히 효과적인 심리치료 접근이에요.
CBT는 Cognitive Behavioral Therapy의 줄임말로 한국어로는 인지행동치료라고 부릅니다.
즉, “생각(인지) → 감정 → 행동” 이 세 가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잘못된 생각 패턴을 바꾸어 행동을 바꾸는 치료법이에요.
회피 행동(피하고, 숨기고, 미루는 것)은 사실상 “불안을 피해서 안정을 얻는” 학습된 습관이에요.
그래서 치료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사람은 “피했더니 마음이 편해졌다”는 경험을 반복하면, 그게 뇌에 보상 회로로 각인됩니다.
그래서 치료에서는 “피하면 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고통스럽다”는 걸 직접 경험하게 해요.
예: 문제를 말하지 않고 숨겼을 때 → 잠깐 안심되지만, 나중에 더 불안해짐, 솔직히 말했을 때 → 잠깐 불안하지만, 결과적으로 관계가 안정됨 > 이런 비교를 반복해서 학습시킵니다.
� 예시 훈련
“지금 내가 피하고 싶은 상황은?”
“그걸 피하면 진짜로 내가 안전해질까?”
“그게 100% 사실일까?”
이런 질문을 반복하며, 두려움이 ‘현실’이 아니라 ‘생각의 산물’ 임을 깨닫게 하는 거예요.
치료의 핵심은 “조금씩 행동으로 확인해 보기”
불안을 느끼는 상황을 단계별로 만들어 의도적으로 직면하게 합니다.
예: 1단계: “이번 달 재정 상황을 아내에게 솔직히 말하기” > 2단계: “돈 문제 해결 계획을 이야기하기” > 3단계: “작은 빚을 스스로 갚아보기” → 행동 후 “내가 생각한 만큼 세상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경험이 쌓이면, 회피 행동이 줄어듭니다.
회피형 사람은 “불안 = 피해야 할 감정”으로 학습돼 있어요. 치료에서는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느껴보기’를 연습합니다. (“이 불안을 견뎌도 괜찮구나”를 몸으로 익히는 것) 이걸 *노출훈련(Exposure therapy)*이라고도 부르며, 두려움에 익숙해지는 과정입니다.
초기 평가: 회피 행동의 패턴과 트리거(유발 상황) 파악
사고 기록: 불안할 때 떠오르는 생각을 분석
행동 계획: 피하지 않고 작은 행동을 실천
결과 평가: 행동 전후 감정 차이를 기록
인지 재구성: “생각이 행동을 조종하지 못하게” 교정
보통 10~20회기 정도(주 1회)로 진행되며, 회피성 성격, 불안, 거짓말, 미루기, 대인 기피 등에 가장 효과적인 접근 중 하나입니다.
CBT 기반 회피행동치료란, 두려움을 없애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견디면서 행동을 선택하는 법을 훈련하는 치료입니다.
그렇다면 이 CBT 기반 회피 행동에 기반해 매일매일 작게나마 실천해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이 일지는 하루 5분이면 충분합니다.
핵심은 “피하고 싶은 순간을 그냥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에요. 매일 한 장씩 써보면, 회피 행동의 패턴이 점점 ‘보이기’ 시작합니다.
1. 오늘 내가 피하고 싶은 상황은? (예: 아내에게 빚 이야기를 꺼내기, 상사에게 보고하기, 문자 답장하기 등)
2. 그 상황을 피하고 싶은 이유는 뭘까?
☐ 실망시킬까 봐
☐ 화를 낼까 봐
☐ 내가 무능하게 보일까 봐
☐ 그냥 불편해서
☐ 기타: ____________________
3.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자동 생각은? (예: “망했어.”, “어차피 나한텐 불가능해.”, “말해봤자 욕먹을 거야.”)
4. 그 생각은 100% 사실일까? → 근거가 있는지 스스로 검증해 보세요.
예: “예전에 솔직히 말했을 때 꼭 싸운 건 아니었지.”
5. 오늘 시도해 볼 ‘작은 행동’ 한 가지는? (예: 문자 한 줄 보내기, 5분만 대화하기, 메모로 먼저 써보기 등)
6. 시도한 뒤 느낀 감정은? (1~10)
불안감 ☐ / 안도감 ☐ / 후회감 ☐ / 자존감 ☐
� “불안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견딜 수 있었음”을 스스로 깨닫는 게 목표예요.
7. 오늘의 한 문장 기록
“나는 오늘 두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 움직였다.”
� Tip: 매일 밤 잠들기 전 이 일지를 5분만 써보세요. 3~4주만 지나도 “내가 뭘 피하고, 왜 피하는지”가 선명히 드러납니다. 그게 CBT의 첫 번째 치료효과예요.
이상적인 미래를 쫓기 급급해 매우 가까이에 있는 현실을 외면했다. 시작은 함께 달리자 마음먹었지만 어느새 숨이 차올라 내 몸 돌보기만 급급했다. 그저 알아서 잘 앞서갔겠거니 혹은 잘 따라오겠거니 어림짐작 할 뿐이었다. 어느 순간 내 옆에 아무도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외면했던 현실을 마주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린 일찍부터 이를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게 남은 에너지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떠밀리듯 인정한다. 실체 없는 믿음이 얼마나 덧없고 허무한지를...
오늘부터 그의 하루 일지와 함께 하루 10분 대화가 시작되었다. 매일의 기록과 매일의 대화가 두렵지만 또 기대된다. 우리도 모르게 벌어진 거리와 긴 시간 높게 쌓인 불신의 담장이 언제쯤이면 좁혀지고 또 깨어질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매일 조금씩 실천하고 직면해 보련다.
그리고 그 매일의 여정과 그 변화를 기록해 그에게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