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나게 좋은 머리는 아니지만,
미련하게 열심히 하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래서 중국어를 전공한 나는 중국어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 고시에 도전했다.
친구와 함께 처음 올라온 노량진 고시촌.
나의 첫 서울 생활은 그렇게 고시촌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처럼 계속되었고,
언젠가 벗어날 길이 있겠지...
막연한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니 버텼다.
첫 임용 고시에서 쓴 맛을 본 후, 친구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서울 이 고시촌에 혼자 남겨진 나, 그리고 막막하기만 한 나의 미래.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의 생활력이 강해진 시점이...
아침 7시에 일어나면 눈곱만 떼고 책상에 앉았고,
12시가 되면 근처 한식 뷔페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고,
저녁 6시가 되면 역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했다.
그때는 밥 먹는 것도 사치인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생활비와 문제집 비용으로 부모님께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중국어 통역과 과외 아르바이트로 남은 저녁 시간을 메꾸었다.
그렇게 정해진 루틴은 나를 생활력 강하고, 부지런하게 만들었지만
정말 애석하게도 내가 서울에 올라온 단 한 가지 이유, 임용고시에 붙게 하지는 못했다.
3번의 낙방 후,
더 이상은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아 시험을 포기하고 첫 취직을 했다.
낯선 서울에서 집을 알아볼 엄두도 나지 않았던, 돈 한 푼 없는 사회 초년생
나는 이제껏 익숙하게 지냈던 노량진 고시촌에 그대로 터를 잡았다.
무릎이 다 늘어난 운동복을 입고 새벽잠을 쫓으며 학원가로 향하는 무리 사이로,
나는 곱게 화장하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그렇게 서로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그들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나의 수줍은 첫 직장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노량진역을 지날 때면
그 여름 코를 찌르던 생선 냄새가 여전히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