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를 전공하고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 꿈을 이루진 못했다.
꿈을 포기하고 시작한 첫 직장생활은 그야말로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한 컨설팅 회사에 취직해서 그야말로 원 없이 중국어를 했다.
직장에서의 나의 미션은 중국 전문가
첫 임무는 중국 반도체 부품 공장의 근로자들에게 생산 교육을 하는 컨설턴트의 순차 통역이었다.
(*순차 통역이란, 강사의 말을 동시에 통역하는 게 아닌, 강사의 말이 끝난 후 통역을 하는 것)
대학 시절 중국에서 1년 간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학교와 기숙사만을 오가며 학원 다니듯이 중국어 공부를 해왔던 내겐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노량진에서의 외로움을 달래준 중국어 영상이 이렇게나 도움이 될 줄이야...
하지만 그런 설렘과 열정도 잠시,
아직 사회 초년생에, 영상으로 공부한 일방적인 중국어, 각종 어려운 공장 용어들의 난무...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 순간 난 그 자리에 꼼짝없이 얼어 있었다.
" 안돼, 한국에서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안 돼! "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제일 자신 있었던 건 나름의 친화력이었다.
중국어를 하는 중국인이든, 조선족이든 혹은 또 다른 외국인 근로자이든
나의 수줍은 떨림이 그들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이 가는 모든 곳에 늘 함께 있었다.
그들이 기계를 닦으면 옆에서 같이 닦고, 힘들어할 때면 어깨도 두드려 주며,
누군가의 통역사가 아니라 나 자신의 언어로 그들의 땀과 눈물을 닦고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고, 우리는 눈빛만 봐도 웃음이 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이 대장정의 교육을 이수하느라 걸린 시간만큼이나 우리들의 정은 너무나 깊어졌고,
헤어질 때 눈물바다가 되었다.
그들의 박수 소리와 함성, 그리고 미소...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은 그 공기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