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연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아
감정이 고조되고 있었다. 감동의 눈물이 턱까지 차올랐고, 한두 페시지만 더해지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서정적인 2악장의 피아노 선율이 차분히 쌓아 올려지는 가운데 관객석에서 "까똑"...(1초 후)..."까똑" 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 그 어떤 대포 소리보다 강력했고, 그 소리에 집중을 유지할 재간이 나는 없다.
피아니스트도 분명 그 소리의 영향을 받았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음을 연주하는데 건반을 너무나 분명히 겹쳐 누르는 실수를 범했다. 어쩌면, 그 소리에 피아니스트가 항의하는 듯한 외침으로 들렸다.
서울시향의 첫 곡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았다. 베를리오즈의 오페라 <트로이인> 중 '왕실의 사냥과 폭풍우'라는 곡을 연주했다.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이었음에도 연주를 듣고 있자니 울창한 숲과 푸른 들판이 머리에 그려졌다. 피콜로의 높은음들이 계속될 때는 세찬 폭풍우가 귓가로 몰아쳤다.
곡 전반에서 호른 주자의 역량이 돋보였는데, 호른과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으로 마무리하는 곡의 마무리는 세찬 폭풍우를 걷어내고 구름사이 햇살로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줬다. 분명 좋은 연주였다.
이어 니콜라이 루간스키가 무대에 올랐다. 연주곡은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한국인들에게는 조성진 피아니스트 덕분에 더욱 친숙한 곡일 테다. 루간스키와 쇼팽의 조합이라니. 큰 기대를 가지고 감상에 들어갔다.
시작은 다소 불안정했다. 바이올린을 비롯한 현악기가 약하다는 느낌을 살짝 받았다. 그래도 루간스키는 베테랑답게 1악장 중반부를 지난 후부터는 곡을 리드하며 안정감을 찾아갔다. 피아니스트의 역량에 집중하며 감상의 깊이를 더해갔고, 1악장이 마무리 됐을 때는 시작의 불안감은 어느새 사라져 갔다.
2악장의 시작은 얼마나 서정적이던지..'역시, 쇼팽이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그 사고가 났다. 그 빌어먹을 사고가 터졌다.
"까똑".."까똑"
차곡차곡 쌓아온 감정은 무너졌고, 그 자리에는 분노가 대신 자리 잡았다. 곧이어 루간스키의 너무나 확실한 실수에 내 마음 속 분노는 절망이라는 감정으로 변했다. 만약 내가 연주자였다면 당장 연주를 멈추고 피아노 덮개를 덮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그 이후로는 어떻게 감상을 했는지 모르겠다. 집중하고 싶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피아니스트도, 지휘자도, 악단도 제대로 집중하였는지 모르겠다. 곡을 끝까지 연주한 것만으로도 큰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나마, 루간스키의 왼손 베이스와 알토의 노래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 소리에 집중하며 작은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앙코르곡으로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연주하는 루간스키에게 나의 감정이 투영된 것인지, 그의 연주가 매우 날카롭게 들렸다. 전혀 환상적이지 않았다. 감상자의 마음이 그랬다.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무대를 떠나는 그의 표정은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다. 그 또한 감상자의 마음이 투영됐기 때문이었길 빌뿐이다.
인터미션 후 2부에서는 슈만의 <교향곡 2번>이 연주되었다. 원래 슈만의 곡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었고, 워낙에 슈만의 곡은 난해(?)하다는 인식이 있어서 인지 곡 자체에 큰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다만, 서울시향에 대한 인상은 분명해졌다. 서울시향의 관악기는 훌륭했지만, 그에 비해 현악기의 소리는 그렇지 못했다. 볼륨도 보통이었고, 음색은 단조로웠다. 좀 더 또렷한 소리가 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공연 내내 머리에 맴돌았다. 곡 자체가 그런 것인지,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지휘자의 특별한 주문인지 알 길은 없으나 그렇게 들렸다.
1부 피아노 협주곡이 연주될 때도 뭔가 모를 불편함이 있었는데, 아마도 서울시향 내에서 관악기와 현악기 간 밸런스가 맞지 않은 게 분명히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래도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관악기와 콘트라 베이스의 중저음에 기대어 어떻게 어떻게 감상을 이어간 것은 다행이다.
공연이 끝나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악단이 퇴장하기 전에 객석에서 먼저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힘들었다. 하루 24시간 중 2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휴대전화를 멀리하지 못하게 하는 바쁜 사회가 야속하다. 앞으로 이런 경험은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미안해요. 루간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