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 조성진 리사이틀(1)

조화와 혼돈, 그리고 예술가로의 여정

by Double P

1. 낯선 음악


격정적으로 움직이는 손과 몸, 그리고 그의 표정에서 이미 곡이 전하는 놀람과 분노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쇤베르크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조금 전, 리사이틀의 시작을 알렸던 바흐의 정갈한 음악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소리였다. 특히나 페달링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정도로 콘서트홀을 유려하게 채우던 바흐의 잔향은 어디로 간 것일까. 쇤베르크의 날 선 음들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극적인 대비 효과를 노린 것일까?’


나는 질문을 던지며 잠시 시간을 되감아 보았다.


2. 조화


조성진의 공연을 실제로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연 그가 검은 머리를 간직하고 있는 동안 실활을 접할수 있을까라는 걱정아닌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아주 운이 좋았다. 정석을 추구하는 그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영광이 내게도 올 줄이야. 그것도 소리의 울림이 좋기로 정평이 난 통영국제음악당이라니!! 나는 정말 큰 기대를 품고 자리에 앉았다.


무대에 나선 그는 첫 곡으로 바흐의 <파르티타 제1번 B플랫 장조>를 선택했다.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으나, 첫 프레이즈만으로도 '아, 바흐구나'를 직감할 수 있었다. 각각의 성부들은 명확히 나뉘어 각자의 노래를 불렀고, 어느새 그 노래들은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이루다 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첫 곡의 감상을 하나의 키워드로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조화’였다.



3. 고독


평화로운 조화 뒤에 쇤베르크가 찾아왔다. 연주회가 끝난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곡은 쇤베르크가 바흐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 같은 초보 감상자에게 그 존경의 흔적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처음에는 멜로디를 찾아 따라가 보려 애썼다. 하지만 '찾았다' 싶은 순간 멜로디는 이내 사라졌다. 아니, '흩어졌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어쩔수 없는 나는 음악이 전하는 본능적인 감정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분노, 공포, 좌절, 분절, 그리고 단절….


연주자의 표정과 몸짓 역시 매섭게 몰아치거나, 잦아드는 음량만큼이나 위태롭게 움츠러드는 모습이 연주와 어우러지며 통영이 아닌 냉전시대 진흙탕길 어딘가에 쓸쓸히 놓여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분절'이라는 단어가 감정을 치환했다.



4. 길잡이


‘조성의 기반을 다진 바흐 다음에 쇤베르크의 무조성 음악이라니’


이런 프로그램 배치에는 분명 연주자의 의도가 숨어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프로그램을 다시한번 유심히 살펴봤다. 이어지는 다음 곡은 슈만의 <빈 사육제의 어릿광대>.


이때부터 나는 조성진의 연주 실력을 감상하기보다 그가 건네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왜 그는 바흐와 쇤베르크 뒤에 유일하게 제목이 있는 이 곡을 배치했을까? 어쩌면 슈만을 통해 자신의 역할을 관객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바흐의 조화로운 세상이 쇤베르크가 살다간 현대사회의 고단함이 되었네요. 여러분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죠? 자, 이제 저를 따라와 보세요. 제가 광대가 되어 잠시나마 당신에게 달콤한 위로를 전하고 싶어요"


조성진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래야만 그가 2부 공연에 쇼팽의 왈츠 14곡을 배치한 이유가 비로소 설명된다.


나만의 이 기분 좋은 착각은 그가 슈만의 1악장과 3악장에서 보여준 특유의 경쾌한 리듬감에서 '믿음'이 되었고, 특히 3악장에서 마치 광대처럼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연주를 즐기는 그의 모습에서 '확신'으로 변했다.


‘그래요. 현실의 걱정은 잠시 잊고, 당신의 로맨티시즘에 맘껏 빠져볼게요!’


벅찬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어지는 20분의 인터미션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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