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너무나 친절한 연주자님
1부 공연의 마지막 부분이었던 듯하다.
그날의 프로그램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 어떤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계속해서 연주를 맞이해야만 했는데 문득, 그가 한 곡의 도입부를 시작하자 ‘어? 이 곡 슈만 곡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곡들에서도 ‘이건 드뷔시네’, ‘이건 좀 러시아스러운데?’, ‘라흐마니노프다. 라흐마니노프!’ 이런 식으로 모르는 곡의 작곡가들이 이상하리만치 쉽게 연상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모르는 작곡가의 경우에는 대강의 국적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때서야 연주에 앞서 그가 관객들에게 일러둔 말이 생각났다.
‘피아니스트는 작곡가와 관객을 있는… 어쩌고저쩌고…‘
관객과 작곡가를 이어주려는 그의 의도가 너무나 완벽하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가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이유가 자신의 해석보다 작곡가의 의도를 관객들에게 더 잘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관객에게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곡이랍니다. 마치 이 곡을 작고할 때 작곡가의 집 근처에 커다란 종이 있었던 것 같지 않나요? “
“마침 그 종소리가 러시아 스럽게 울렸는지, 조금은 쓸쓸하면서도 때로는 웅장하게 들리기도 하네요 “
이런 식으로 관객에게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를 들러주면서 동시에 곡에 대한 설명도 함께 해주는 친절한 음악 선생님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그의 연주와 함께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2부 공연이 감동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몇 번의 무대 인사 후 그가 드뷔시의 곡을 앙코르로 연주하였는데, 마침 나의 지난해 연주곡과 같은 곡(드뷔시, 아라베스크 1번)이어서 더 세밀하게 들을 수 있었다.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어느 곳 하나 감동과 충격을 받지않은 순간이 없지 않지만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곡의 마지막 음을 그가 어떻게 연주했는지였다.
사실, 그 곡을 연주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게 곡의 마지막 음을 작은 소리지만 깔끔하게, 소중한 소리로 치는 것이었다. 실제 연주에서 내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를 했는지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메르만은 너무나 쉽게, 아무렇지 않은 듯 내가 원하는 그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를 나와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임을 알지만 그가 얼마나 대단한 연주자인지 다시 한번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공연에서 큰 인상을 받은 부분이 그가 여백을 다루는 순간들이었다.
대게 뛰어난 연주자들의 공연을 가면 그들이 여린 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들을 보고 감탄하곤 했다.
‘와… 어떻게 저렇게 작은 소리를 내는데 귀에 꽂히는 거지’
그런데, 지메르만은 여린 음을 떠나서, 음이 끝나고 난 뒤에 음의 잔향이라고 해야 하나 음과 음의 여백에서도 그의 연주가 계속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곡의 마지막 음이 연주된 뒤에도 이어지는, 공간에 남아있는 음이 들렸다. 정말 기분 좋은 경험이었고, 또다시 말하지만 그의 대단함이 상기됐다.
어떤 이들은 그가 관객들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것에 다소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지만
그의 이러한 요구는 오히려 관객들에게 소중한 경험을 해주고 싶은 연주자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솔직히 3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음악에 빠져, 혹은 공연 현장에 흠뻑 젖어들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해 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