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이 빚은 스페셜리스트
도서관 음악 서가에서 읽을 책을 살펴보다가, 유난히 이질적인 제목이 눈길을 붙잡았다.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책을 집어 들고 한동안 제목을 바라봤다.
보통 '좌절'은 피해야 할 일, 위로받아야 할 일로 여긴다.
그런데 이 책은 '좌절'을 아예 특기로 선언하고 있었다.
저자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혜선.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 보이는 사람이, 왜 스스로를 '좌절 전문가'라고 부를까?
그 호기심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 보니, 백혜선 피아니스트가 인생에서 겪은 좌절의 양과 질이 보통이 아니었다. 우리는 종종 유명인을 보며 현재의 화려한 영광에 가려 그간의 노력을 과소평가하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을 반박하는 증거였다.
저자는 어렸을 적 피아노 이전에 수영에 재능을 보였고, 경북도 대표로 소년체전에 출전할 정도의 선수가 되며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우월한 신체능력과 재능에 노력까지 뒤따랐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국대회에서 진정한 천재(최윤정 선수)와 경쟁해 보곤 '천재의 꽁무니를 멀찍이서 뒤쫓는 비참함, 한때 천재인 줄 알았다가 밑천이 낱낱이 드러난 범인의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그 벽을 넘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서서히 수영선수의 자리에서 내려오며 수영과는 멀어졌다.
이후 그녀는,
"칭찬과 인정에 집착하지 않고도 내가 기꺼이 하고 싶어 하는 것도 하나는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고, 무언가 강력한 이끌림에 피아노를 시작하며 그 좌절에 머무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는데, 나는 이 부분이 아주 깊게 와닿았다.
좌절을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태도.
좌절을 '그만두라'는 신호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마음.
패배, 실패, 열등감 이후
남 탓을 하거나 우울에 머무는 대신
그 감정들을 곧바로 바라보고 방향을 다시 잡는 저자의 모습을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대단했다.
나 같았으면, 몇 년은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거렸을 것이 분명하다.
확실히, '스페셜리스트'는 다르다.
좌절은 누구나 하지만, 그걸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스페셜리스트'다.
그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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