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어려워하는 점이 다르겠고 한 사람이 어려워하는 점도 달라지겠으나 내가 지금 어려워하는 것은 글이 얼마나 외부적(external)이냐 내부적(internal)이냐, 인 것 같다. 분명 남들이 읽을 글을 쓰는 것은 일기 쓰는 것이랑 달라야 하고, 글에 내 경험과 느낌이 아예 안 들어갈 순 없지만 그대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승화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직 잘 안된다. 또,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것도 잘 안된다. 내가 말하는 정확한 뜻을 전달하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그 욕심(의도)과 실제로 글로 전해지는 것(결과)을 일치시키는 것도 잘 안된다.
최근 들어 나는 한국어도 영어도 좀 부족함을 느낀다. 원래 한국어를 글로 구사하는 건 어색했어도 아는 단어 맞춤법은 정확했었는데 'ㅐ' 'ㅔ,' 'ㅀ' 'ㄹ' 받침이 헷갈린다. 덜 써서이기도 한 것 같고, 주로 가족한테 카톡 보낼 때 사용하니까 어느 순간 신경을 덜 쓰기 시작하면서이기도 한 것 같다. 영어 스펠링도 그런데, 'relieve' 'receive'와 같은 단어들에서 'i'와 'e'의 순서, 'fulfillment'(US) 'fulfilment'(UK), 'theater'(US) 'theatre'(UK), 'center'(US) 'centre'(UK), 'honor'(US) 'honour'(UK)는 찾아보면 둘 다 맞는데 둘 중 어느 게 맞는지 헷갈려하고 있으니까 내 스펠링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그랬더니 실수가 더 잦아진 것 같다.
이건 그리고 스펠링뿐만 아니라 발음도 그렇다. 미국에서 지내면서 British 발음이랑 들려오는 미국발음이랑 충돌을 하는지, 한국에서 10년 동안 살면서 전혀 꼬이지 않던 혀가 꼬인다. 한국발음은, 예전에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오, 영어발음이 조금 섞여 있구나"라고 처음 깨달았었고, 꽤 최근 친구들한테서 내가 말할 때 항상 외국인이 한국어 말하는 것 같았다(지금도 그렇고)는 얘기를 들었다.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니면 어떤 한국어 수준의 외국인을 말한 건지를 모르지만, 그런 외국발음이 티 날 정도로 섞여있긴 하다. 더군다나 그걸 의식한 이후로부터 이상하게 원하지 않는데도 더 그런 식으로 발음하게 된다 (내 언니를 봐도 그러는 것 같더라).
이뿐만이 아니라 "너 이거 안 먹지?"라는 질문에 안 먹는다고 하고 싶은데 한국에서 "아니"라고 하고 미국에서 "응"이라 해버린다 (뜻하는 의미의 반대로). "Could you put the slides back on?"이라고 부탁드리려는데 한국어로는 "슬라이드를 다시 띄워주실 수 있으세요?"식의 순서이다 보니 "슬라이드"와 "다시"를 말하기까지 되게 많이 말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좀 그 앞부분을 빨리 넘어가려고 얼버무리게 됐다. 게다가 내가 성격까지 부끄럼이 많고 말을 엄청 조용히 한다.
이러니까 내가 나를 도와주려는 교수님들이나 선생님들 입장에서 영어를 잘 못한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 것 같다 (이것도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한 분은 "여결이는 더구나 모국어도 아닌 언어로 이걸 한다는 게... 난 상상할 수도 없고 존경을 표한다" 식으로 말하셔서 차마 고쳐드릴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오해예요, 저 영어가 모국어 같아요"라고 고쳐드릴 정도로 말을 잘하지 못한다. Idiom이랑 slang(관용구)에서도 많이 약하다.
애초에 글 쓰는 것이 힘이 드는 일이지만, 이런 것들이 한 겹 더 제약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의미는 전달해야겠는데 원하는 표현이 다른 쪽 언어로 떠오르고, 그 정확한 의미를 이 언어로 설명하고 싶고, 그러다 보면 너무 내 머릿속으로, 내부적이게 됐다는 걸 발견하기도 하고 (내부적 외부적인 것에 대해서는 다른 말을 하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내용이 이쪽으로 먼저 흐르게 됐다). 내가 지금 쓴 글도 한국어가 어색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글 쓰는 스타일의 영향도 있다. 물론 그 스타일이 work 하지 않으면 (글쓴이의 의도가 글에서 실현이 되어야 하는데 글쓴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면) 고쳐야 할 것 같다. 앞에서 말한 모든 게 제약이기도 하지만 유익하기도 해서 나는 불만은 없고, 다만 어떻게 이걸... navigate 할지 (그러니까, 어떻게 그것을 인지하고 그것이 나에게 주는 어려움들을 피해 가기도 하고 넘어가기도 하면서 전진할지)가 여러 숙제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