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당신

by 모카모카

불량한 것들


부장의 처남이라는 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멋쩍어진 듯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따라 웃지 않았고, 나 역시 그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내 머릿속에는 도대체 왜? 라는 의문부호만 가득할 뿐이었다. 내일 출장을 가야 한다, 그것도 나 혼자. 부장은 왜 이토록 중요한 일에 달랑 직원 하나만 보내는 것일까? 게다가 출장 준비만 하기에도 빠듯한 이때에 왜 처남이라는 작자를 만나보라는 것일까? 출장 준비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되고 처남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도대체, 왜, 하필 지금.

종신보험이니 상해보험이니 설명 따위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래도 마주 앉은 자가, 다 이해하셨습니까? 물었을 때는 네 그럼요, 하고 대답해주었다. 예의상. 그리고 어쨌거나 ‘부장’의 처남이기 때문에. 업계 1위 미래모빌스(미래지향적인 모빌Mobile 시스템System이란 뜻. 모빌스는 자동차를 뜻하는 Mobile+System의 머리글자 S의 합성. 오독을 경계하기 위해 한글 로고에서 ‘스’, 영문 로고에서 ‘S’자만 파랑색으로 색깔을 달리했다)의 3인자 정은신 부장의 처남이라니까 어쩔 수 없이.

오늘 오전 일본 나고야의 거래처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첨부된 ‘자체 실험 평가서’에서는 우리가 납품한 자동차 부품, 즉 트랜스미션이 평소 납품받은 제품보다 변속 동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소음이 심하다고 적시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4월 2일자에 납품받은 트랜스미션 전량을 불량으로 판단, 반품을 결정했다고 알렸다.

내가 그 같은 사실을 보고하자 부장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큰일이네. 공장 어디야?”

평택이라고 하자 평택이라고? 천안 아니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재차 물었다. 마치 천안이기를 바라는 듯한 말투였다.

“평택 맞는데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가 말하자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부장이 다음 날 곧장 일본 출장을 명했다.

“이번엔 용 대리 너 혼자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처리해.”

“네? 부장님은 안 가시고요? 이렇게 중요한 일에 저 혼자 가라고요?”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해외로 혼자 출장을 가본 적이 없었다. 주로 부장과 함께 갔고 때로는 박 과장과 동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불량이라는 이 전대미문의 사건 앞에서 고작 대리인 나를 혼자 보내겠다고? 도대체 왜?

“나 바쁜 거 안 보여? 그리고 일본 애들 몰라? 자기들이 그렇게 결정 내린 이상 절대 안 바뀌어. 걔들이 얼마나 철저하고 독한 애들인지 알잖아. 어차피 불량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가서 반품 처리하고 다시 납품할 날짜나 잘 협의해 와.”

“그래도 부장님이 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저 혼자서는…… 납품일자도 그렇고…… 사과의 뜻도 전해야 할 것 같은데…….”

“네가 사과하면 되잖아! 넙죽 엎드려서 죽을죄를 지었다고 해! 하라고!”

부장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나는 아무 소리도 못 하고 물러났다. 마음이 심란하고 머리도 어질어질했다. 걱정이 너무 크다 보니 밥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침에 이어 점심도 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장이 이해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한 과장에게 나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는 물었다.

“평소에 불량 나면 부하직원 혼자 보내기도 하고 그러나요?”

“불량 나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한 과장이 부장 자리를 힐끔거리며 나직이 말했다. 부장 외출하고 없다고 했더니 그럼 왜 소곤거려? 물었다. 버릇이 돼서요, 말하자 이해한다는 듯 방긋 웃고는 그제야 평소 목소리를 되찾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이게 어디 보통 사건이야? 나도 아까 들었는데 도대체 이해가 안 가네. 혹시 부장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닐까?”

그러고 난 두 시간 뒤 부장이 내게 전화를 해서는 말했다.

“옥상 카페에 좀 가봐.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럼 계약하시겠습니까?”

가느다란 손가락이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 내 앞으로 밀었다. 브로슈어는 어느새 얌전히 접힌 채 테이블 귀퉁이로 밀려나 있었다.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생각하지 않을 게 분명하면서도 나는 또 그렇게 말했다. 만에 하나라도 내가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건 계약하느냐 마느냐의 생각이 아니라 계약서의 구닥다리 활자체나 비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들어찬 설명 같은 형식에 국한될 것이다. 실은 내가 보험 하나도 못 들 만큼 개털이라는 걸 부장과 내 앞에 앉은 이 작자만 모르고 있었다.

“혹시 마음에 안 드는 조항이라도 있으신가요?”

“마음에 안 들면 조항을 바꿔주기도 합니까?”

딱히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상담에 성실히 임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내가 물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노력해볼 수는 있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말씀하시는지?”

“일단 얘기해보세요. 어떤 조항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닙니다. 다 마음에 듭니다. 아니, 아주 흡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주 앉은 자의 얼굴빛이 편치 않아 보여서 내가 얼른 말했다. 처남의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그거 다행이군요. 그럼 계약을 하시는 게…….”

“아, 저기, 저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요.”

“신중한 분이시군요.”

“감사합니다.”

“제 매형이 정은신 부장이라는 건 아시죠?”

“그럼요. 잘 알죠. (그래서 내가 이 자리에 나와 있잖아.)”

잘 안다니까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처남이라는 작자가 나를 보며 또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따라 웃는 대신 커피를 마셨고, 내가 잔을 내려놓자 이번에는 그가 커피를 마셨다. 두 개의 잔이 모두 비었다. 나는 빈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계를 보았고, 그런 뒤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대놓고 딴청을 피우면 이 둔해 보이는 작자도 눈치를 채겠지. 이제 나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두 무리의 사람들이 각각 두 개의 테이블을 붙여놓고 둘러앉아 회의를 하고 있었다.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었고,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서 회의 내용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잘 웃고, 잘 떠들고, 잘 마시고 먹었다. 화기애애해 보였다. 너무 화기애애해 보여서 어쩌면 회의 중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테이블 위의 수첩들만 아니라면 회의 중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회의 내내 거의 고개를 들지 않았다. 부장의 질책과 지시를 들으며 수첩에 필기하거나 낙서를 했다. 열심히 경청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한 번씩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번에는 재수 없게도 부장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이 끝난 직후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부장의 눈총을 받았다.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펜만 만지작거리는데 부장이 말했다. ‘그래, 용 대리는 박 과장의 의견이 대단히 훌륭하다 이거지? 응? 어떤 점이 그렇게 훌륭한지 한번 말해봐.’

두 무리의 사람들에게 흥미를 잃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부장의 처남과 눈이 마주쳤다. 또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왜 자꾸 웃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웃음에 한 번도 화답하지 않는 건 어쩐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이번엔 나도 얼굴 근육을 조금 움직여 웃어주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재밌나 보네.”

그러더니 부장의 처남과 반갑게 인사한 후 야외로 나갔다. 나도 목 대리를 따라 야외로 나가고 싶었지만 그냥 눌러앉아 있었다. 다시 시계를 보았고, 처남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카페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담배 피우던 목 대리와 눈이 마주쳤는데, 유리문 밖의 목 대리가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목 대리는 한 달 전쯤 내 앞에 버티고 앉은 이자와 보험을 네 개나 계약했다. 그때 목 대리는 알쏭달쏭한 소리를 했다. ‘보험이야. 보험 하나 없이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겠어.’ 그로써 목 대리는 보험을 네 개나 가진, 부장의 말에 의하면 ‘뒤가 든든한’ 사람이 되었다.

“해외영업 파트라면…… 해외로 출장이 잦으시겠습니다.”

오랜 침묵을 깨고 부장의 처남이 말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곧이어, 내일도 출장을 가야 한다고, 특히 출장을 강조해서 말했다. 이제 그만 일어서자는 뜻에서 한 말이었는데, 정말 둔한 것인지 아니면 둔한 척하는 것인지 얼굴에 미소까지 띠고 처남이 말했다.

“그럼 비행기를 자주 타시겠습니다.”

(그래 자주 탄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사고 날지도 모른다고?) 나도 만면에 미소를 띠고, 타는 거라면 뭐든지 자주 탄다고 대답했다. 주로 뭘 타느냐고 물어서 비행기, 자동차, 자전거, 지하철, 버스, 기차 가리지 않고 탈 수 있는 거라면 다 탄다고 대답했다. 잠깐 생각한 뒤에는 커피도 타고 간지럼도 타고 어릴 적에는 개도 탔다고 말했다. 또 잠깐 생각한 뒤에는 어릴 적에는 내가 부모님께 용돈을 탔는데 이제는 부모님이 내게 용돈을 탄다고 말했다. 햇볕에도 잘 타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럴 마음만 있으면 10분 이내에 손목에 시계를 그려 넣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바늘까지 완성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일단 시계 형태를 만든 다음에 바늘은 따로 작업해야 하니까요.”

말을 끝낸 뒤 나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이거 유머잖아, 그러니까 당신도 웃어, 라는 의미로. 웃을 줄 알았다. 나와 마주 앉은 이후 내내 웃었으므로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어쩌면 폭소를 터뜨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건 유머니까. 하지만 마주 앉은 자는 따라 웃지 않았다. 마주 앉은 이후 처음으로 그의 얼굴이 섬유다발이 잔뜩 붙은 홍합 껍데기처럼 딱딱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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