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이 환생한다면?
일요일 오전에 눈을 뜨자마자 천안으로 달렸다. 공장장에게는 미리 연락하지 않았다. 그를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발품 조금만 팔면 된다. 공장장에 대한 정보는 이미 넘칠 만큼 가지고 있었다. 정작 문제는 공장장이 쏟아낼 비난과 폭언의 수위였다. 어제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을 때 공장장이 말했다.
“차라리 공장을 하나 더 지어 이 새끼들아! 우리보고 죽으라는 소리야 뭐야! 지금도 허구한 날 야근에 철야에 등뼈가 부러질 지경인데 씨팔 새끼들! 사고는 지들이 치고 왜 수습은 만날 우리한테 하래! 그렇게 급하면 니들이 와서 만들어 가든가! 좆같은 새끼들. 책상 앞에 앉아서 말만 하면 뚝딱 다 되는 줄 아나, 이 새끼들.”
대꾸 한마디 못하고 멍하니 듣는 사이에 전화가 끊겼다.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는 쾅! 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 네 요구 따위는 들어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뭐래?”
정수기 앞에서 커피를 타던 한 과장이 물었다. 목 대리도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빼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사무실에는 우리 셋뿐이었다.
“지금도 야근에 철야에 등뼈가 부러질 지경이라고…… 우리보고 만들어 가라고 하시네요.”
“그럴 줄 알았어. 순순히 들어줄 리가 없지.”
“이제 어떡하죠?”
“평택 공장은 뭐래? 이번에 불량 난 트랜스미션 거기서 생산했다며?”
“일정이 안 된다고요.”
“일정이 되고 안 되고가 어딨어? 불량을 냈으면 책임져야지.”
“그게…… 원료 때문인지 공장 때문인지 아직 원인 파악이 안 돼서 책임을 묻기가 애매해요. 게다가 지금 우리 유럽 쪽으로 들어갈 물량 작업하고 있다는데 마음 같아선 그거라도 빼내 오고 싶지만 그랬다간 남의 공장에서 집안 싸움하는 꼴 될까봐…….”
“안 대리한테 사정해보면 안 될까?”
목 대리가 말했다. 작년부터 안 대리가 서유럽 세 개 나라를 담당하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안 대리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납품일자를 조정하는, 그 어마어마하게 귀찮은 일을 해줄 리가 없었다. 딱히 이유는 모르겠는데, 안 대리는 어쩐지 나를 피하는 것 같았고, 피한다기보다는 싫어하는 것 같았고, 싫어하면서 동시에 무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안 대리는 벌써부터 부장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었다.
나는 한 과장을 바라보았다.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한 과장이 어깨 너머로 손을 저으며 안 되는 거 알잖아, 하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새치기는 안 돼. 미국은 신용이 생명이야. 약속 한 번 어겼다간 그날로 수주 끝.”
나는 물을 마시러 가는 척하며 목 대리를 보았다. 목 대리는 뭔가를 찾는 듯 부산하게 서랍을 열고 닫았다. 뭘 찾느냐고 물으니 아무것도 안 찾는다고 했다. 그럼 왜 자꾸 서랍을 열고 닫느냐고 또 물으니 서랍이 잘 열리고 닫히는지 확인해본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목 대리가 웃었는데, 어쩐지 그 웃음이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보였다. 목 대리가 난처해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나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우리는 기적적으로 샴쌍둥이가 되었고 의좋은 형제가 되었다. 목 대리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약속이라면 독일도 만만찮지. 그렇지?”
내가 말하자 목 대리가 그 그렇지, 하고 당황한 듯 대답했다. 목 대리는 독일 담당이었다.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전화벨이 울려서 받으니 부장이었다. 나는 부장에게 천안 공장장과의 통화 내용을 보고했다.
“네가 직접 가서 말해. 비벼볼 데가 천안밖에 더 있어?”
“공장장님이…….”
“그쪽은 원래 그러니까 신경 쓸 거 없어. 지들이 안 하면 어쩔 거야. 본사가 하라면 하는 거지. 무조건 가서 비벼.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 달 안에 15만 대 생산해내라고. 그러게 누가 한 달로 협상을 하래? 쯧, 다 너 때문이야, 너! 용 대리 너! 어쨌든 네가 한 달 날짜 받아 왔으니 이번 일 책임지고 마무리해. 납품 날짜 못 맞추면 너한테 책임 물을 거야. 너! 너 잘라버릴 거라고!”
“설마 저 혼자 가라는…….”
전화가 끊겼다. (시발시발시발 내 말은 듣지도 않고.)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혼자 가래? 부장은 안 가고?”
한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네…….”
“그 공장장 만만찮을 텐데…… 자네 혼자 상대할 수 있을까…….”
“아마 욕을 바가지로 먹겠죠.”
“아래 애들 팬다는 소문도 있던데.”
“죽기밖에 더하겠어요.”
“공장장 본 적은 있어?”
“아뇨. 공장에는 두 번 가봤어요.”
“이해가 안 되네…… 왜 자네 혼자 보내는 거지…… 더구나 안면도 없는데…….”
“결국 본사가 하라는 대로 할 거니까요.”
“그래도 그게 아니지. 도리라는 게 있잖아. 부장이 직접 내려가서 밥도 사고 술도 사면서 달래고 사정도 좀 하고 해야 그 사람들도 마음이 풀리지. 자네 혼자 내려가봐, 명령만 하면 다냐, 공장이라고 무시한다 어쩐다 하면서 더 기분 나빠 할걸.”
나는 한숨을 쉬었다. 자꾸자꾸 쉬었다. 안 봐도 뻔했다. 당연히 기분 나빠 하겠지. 개나 소나 대리, 그 대리 중 하나가 왔네, 라고 생각하겠지. 영업을 위해 대리 직함을 달아줬을 뿐 실은 말단 직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박 과장님한테 도와달라고 해봐.”
내가 자꾸자꾸 한숨을 쉬자 보다 못한 목 대리가 말했다.
“중국 가셨어.”
“아.”
일본 쪽 회사가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 본토나 홍콩, 태국 등지로 공장을 옮기는 경우가 늘면서 박 과장 역시 그쪽으로의 출장이 잦았다. 박 과장의 후임 격으로 내가 부장을 따라 일본으로 출장을 다니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럼 방법이 없구만.”
한 과장이 다가와 힘내라는 듯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더니 사무실을 나갔다. 목 대리는 책상 위에 걸터앉아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책상 위는 물론이고 서랍 속도 정리했다. 누가 언제 불쑥 열어보더라도 깔끔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도록 물건들을 가로로, 혹은 세로로 가지런하게 놓았다. 책상 아래에 있던 휴지통을 들고 목 대리 자리로 갔다. 자네 휴지통 좀 꺼내도 돼? 물으니 목 대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나와 내가 들고 있는 휴지통을 번갈아 보았다. 뒤늦게야 왜? 하고 물었다.
“내 휴지통 좀 비우게.”
“자네 휴지통을 내 휴지통에 비운다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깔끔해야 한다고 했어.”
“금방 돌아올 거잖아.”
“어쩌면 금방 못 돌아올지도 모르지.”
“왜?”
“맞아서 입원할지도 모르니까.”
“설마 그 정도까지야!”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는 거야.”
내가 허리를 굽히자 휴지통을 잘 꺼낼 수 있도록 목 대리가 다리를 들어주었다. 나는 목 대리의 휴지통 위로 내 휴지통을 뒤집었다. 온갖 것들이 쏟아졌다. 잘게 찢어서 버린 서류들, 커피가 흘러내린 종이컵과 우유갑, 빵조각이 엉겨 붙은 비닐 등등.
“오늘도 점심을 빵으로 때운 거야?”
“응.”
빈 휴지통을 들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 뒤 퇴근했다. 목 대리는 사무실에 남았다.
회사 밖으로 나와 현조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어쩌면 맞아 죽을지도 몰라.’
한참을 기다렸지만 현조에게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치킨을 사 들고 현조네 집에 갔던 그날, 나는 현조에게는 말도 없이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갔어?’ 현조가 카톡을 보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
그 일 때문에 삐쳤나? 정작 화를 내야 할 사람이 누군데.
현조네 집으로 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반드시 집에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집으로 갔는데 없다면 좀 많이 비참할 것 같았다. 화창한 날씨가 아깝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내 원룸으로 향했다.
잠들기 직전에 카톡 하나를 더 보냈다.
‘아까 그거 농담이야.’
*
공장장 앞에 마주 앉았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힐끗 쳐다보기는 했지만 공장장은 내게 누구냐고도, 왜 자기 테이블에 앉느냐고도 묻지 않았다. 공장장이 묻지 않아서 나도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앉기 전에 먼저 앉아도 되느냐고 물었어야 했는지 모른다. 내가 이미 앉은 뒤라서 공장장이 묻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또 침묵 속에서 몇 분이 흘렀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으니 뒷말이 이어질 리가 없었다.
망설이던 나는 결국 용기를 내서 앉아도 되나요? 하고 앉은 채 물었다. 그러자 공장장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러든지, 대답했다. 그 순간 왈칵 의심이 들었다. 나는 주방으로 가서, 저분이 공장장님이 확실해요? 진짜 맞는 거죠? 한 번 더 물었다. 아무리 봐도 어제 내가 통화한 사람과, 그리고 무수한 소문 속의 인물과 지금 내 눈앞에 앉은 사람이 동일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제 통화하면서 나는 보기만 해도 정력이 철철 흘러넘치는 우락부락한 사내를 상상했었다. 그러나 지금 내 눈앞의 사내는 우락부락하기는커녕 오히려 한없이 유순해 보였고, 목소리조차 부드러웠고, 눈빛은 정답기까지 했다. 어제의 그 거침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맞다니까 그러네.”
주인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나는 막걸리 한 주전자를 받아 자리로 돌아왔다. 때마침 공장장의 잔이 비어서 얼른 따라주었다.
“저 회사에서 잘릴지도 몰라요.”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다. 일종의 충격요법.
“왜?”
공장장이 물었다. 여전히 내가 누군지, 왜 왔는지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았지만 이미 아는 듯도 해서 나도 내가 누군지, 왜 왔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아시잖아요.”
“모르는데?”
“아시면서.”
“몰라.”
공장장의 표정은 진짜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갑자기 돌변해서 욕설을 퍼붓거나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을 거라는 것. 이상하게 그런 믿음이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자신감이 붙었다.
“자르겠죠. 저라도 자르겠어요.”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는데, 물론 공장장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서였다.
“왜 안 그렇겠어요. 제가 사장이라도 자를 거예요. 불량을 납품해서 신용 잃어, 손해배상금 물어줘, 이제 재납품 날짜까지 못 맞춰서 거래 끊기면 그 손해가 얼마예요. 누군가한테는 책임을 묻고 싶을 거예요. 그게 저일 이유는 없지만 누가 그런 걸 신경 쓰나요? 모두들 자기만 아니면 되는걸요. 제가 어떻게 되든 말든 누가 저 따위를 신경이나 쓰나요.”
“그럼 잘려.”
내 귀를 의심했다. 공장장을 쳐다보았다.
“네? 잘려요?”
“자른다며. 그럼 잘려야지 별수 있나.”
“잔인하시네요. 병들진 않았지만 제겐 늙은 부모님이 계시고, 여우 같은 마누라는 아직 없지만 마누라 삼고 싶은 여자도 있다고요. 토끼 같은 자식도 주렁주렁 낳을 거고요.”
“그럼 그러든가.”
“공장장님이 도와주셔야죠. 공장장님 도움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들이에요.”
공장장은 왜, 라고 묻지 않았다. 처음부터 내가 누군지 알았다는 뜻이었다.
“도와주세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단도직입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싫어.”
“저 잘린다니까요.”
“그러니까 잘리라니까요.”
“제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불쌍은 모르겠고 적어도 행복해 보이진 않는군.”
말장난의 연속이었다. 어제는 강하게, 그리고 오늘은 모르쇠 전법. 상대방의 진 빼놓기. 허탈하게 만들기. 동시에 약 올리기. 부하직원 다루는 스킬이 보통이 아니었다. 또 다른 충격요법이 필요했다. 공장장의 감정을 뒤흔들어놓을 수 있는 것. 일단은 틈이 생겨야 무엇이든 파고들 여지도 생기는 법.
“정말 횡령하셨어요?”
그런 소문이 있었다. 공장에 들일 기계설비 대금을 높게 책정한 다음 그 차액을 꿀꺽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금액이 무려 수억에 달했다.
“했지.”
즉각적인 대답. 공장장이 나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더니 막걸리를 마셨다. 죄책감이라고는 1그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발시발시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뻔뻔할 수가 있지?)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말이 맞았다.
“그 돈으로 쓰레기나 다름없는 고물들을 사셨다면서요?”
“샀지.”
“왜 하필 고물이었어요?”
“누구 눈엔 고물이고.”
누구 눈엔 고물이 아니란 말인가요? 하고 따지듯 물었지만 공장장은 대꾸하는 대신 양은 잔에 막걸리를 가득 따라 꿀꺽꿀꺽 소리 내가며 마셨다. 성대가 위아래로 격렬하게 움직였다.
왜 하필 고물이란 말인가. 망가진 자전거, 고장 난 밥솥, 구멍 난 침대 매트리스 따위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돈이 썩어나는가. 처음 횡령 얘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나는 그 범법행위보다 오히려 그 돈으로 고물을 샀다는 게 더 어이없고 화가 났다. 돈의 가치가 그렇게 하찮은가. 고작 고물이나 사려고 횡령이라는 그 어마어마한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중고로 들인 열 살짜리 내 자동차는 걸핏하면 죽은 척했다. 한 달 내내 주말까지 반납해가며 일을 하지만 통장 잔고는 한 치의 미동도 없었다. 집주인은 호시탐탐 월세를 올릴 기회만 엿보았다. 계약기간 내에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집주인이 다른 집과 비교하며 월세가 싸다고 투덜거릴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 공장을 책임지는 장이 횡령이라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글쎄, 있을 수는 있겠지. 이미 일어났잖아.”
“남 말 하시듯 하시네요.”
“그럼 여 말 하듯 할까?”
순간 나는 내가 을의 입장이라는 것도 잊고서 공장장을 노려보았다. 다행히 공장장은 막걸리를 마시느라 내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왜 안 잘렸어요?”
어쩔 수 없이 내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그런데 이거 감정이 흔들리긴 하는 건가. 아 시발, 어지간히도 강심장인가 보네.)
“나도 잘릴 줄 알았지.”
공장장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헐. 안 자른 이유가 뭘까요?”
“나야 모르지.”
“아실 것 같은데.”
넘겨짚었다.
“정말 몰라.”
“아, 그래요? 그럼 저도 좀 가르쳐주세요.”
“뭘?”
“횡령이요.”
“왜 나한테 가르쳐달래?”
“경험자시잖아요.”
“누가? 내가?”
“이제 와서 시치미 떼는 건가요?”
“양 공장장 얘기하는 거 아니었어? 내 전임.”
“네? 양 공장장이라고요? 이 공장장님이 횡령한 거 아니에요?”
“무슨 소리야. 난 길 가다 백 원짜리 하나만 주워도 손을 벌벌 떠는 사람인데.”
“그럼 양 공장장님은 어디 있는데요? 안 잘렸다면서요?”
“잘리진 않고 옮겨 갔지. 평택으로. 마침 그쪽 공장장 자리가 비었거든.”
공장장이 또 빙그레 웃더니 쪽쪽 소리까지 내가며 막걸리를 마셨다. 굳이 막걸리를 그렇게 마셔야 하나 기분이 언짢았는데, 불현듯 깨달았다. 공장장은 나를 놀리고 있었다. 실컷 놀려 먹은 다음 약 오르지? 를 시전하는 중이었다.
“아, 씨!”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그러고선 뜨끔해서 공장장 눈치를 살폈다. 분명 내 말을 들었을 텐데도 공장장은 개의치 않는 듯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나는 내 잔에 막걸리를 따라 마셨다. 그러고 보니 공장장은 내게 한 잔 권하지도 않았다. 새삼 화가 나고 서운했다. 공장장 보란 듯 한 잔을 더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잔을 내려놓는데 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어떻게 됐어?”
부장이 물었다. 부장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신경질적이진 않았음에도 나는 그 목소리에서 신경질을 읽었고, 위협을 느꼈고, 움츠러들었다.
“그게…… 아직…….”
“아직도 아직이야?”
부장이 소리쳤다. 그 소리 역시도 평소보다 더 크다고는 할 수 없었는데, 또 나는 눈앞이 노래지고 입안이 바싹 타들어갔다.
“네…….”
“만나긴 했고?”
“네…… 지금…….”
“이건 누가 갑이고 을인지, 젠장. 본사에서 매번 이렇게 통사정을 해야 하냐고!”
“그러게요…….”
나는 감히, 공장 하나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공장을 증축하고 직원도 더 충원해야 한다는 말도 물론 하지 못했다. 말하지 않아도 나도 알고 부장도 알고 본사 직원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부장은 조금 더 불만을 쏟아내다가 갑자기 목소리 톤을 바꿔, 그러니까 낮지만 상당히 단호한 말투로, 물량을 확보하기 전까지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라고 협박했다. 나는 알았다고, 전보다 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주인 여자가 내 자리에 앉아 공장장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단 몇 분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그사이 내 자리를 뺏었다는 생각에,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돌아왔음에도 냉큼 일어나지 않는 주인 여자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서운해졌다. 그래서 한참 전부터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했던 것을 시침 뚝 떼고 물어보았다. 여긴 왜 손님이 없어요? 라고. 그러자 주인 여자가 공장장에게 따라주기 위해 들고 있던 양은 주전자를 소리 나게 탁자에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일요일 저녁에 술집 와서 술 처먹는 인간이 미친놈이지.”
나는 공장장을 쳐다보았다. 공장장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놀랄 거 없어. 나 미친놈 맞아.”
공장장이 말했다.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아래를 향해 내려가던 머리를 재빨리 치켜세운 뒤 내가 말했다.
“아니에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저는 당나라 시인 이백이 환생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 걸요. 풍류를 즐기는 선비! 멋있으세요! 진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