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당신

by 모카모카

*


온몸이 따끔거리고 가려워서 결국 일어나 앉았다. 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허벅지를 긁다가 급히 팔을 긁었고, 손을 뒤로 돌려 힘겹게 등을 긁다가 또 얼른 가슴을 긁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까지 태운다지, 하고 위협적으로 말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정작 들어야 할 빈대는 내 몸을 물어뜯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공장장은 내 옆에 있지 않았다. 공장장은 아마도, 빈대도 없고, 그래서 몸을 긁어댈 일도 없고, 쿰쿰한 냄새도 없는 안채의 안방에서 편하게 잠을 자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의심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내내 비협조적이던 공장장이 잠잘 곳은 있느냐고 먼저 물어온 것부터가 그랬다. 묻는 순간 공장장이 비틀거렸고, 나는 없다고 대답하는 동시에 공장장을 부축했다. 없다고는 했지만 그건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뜻이었고, 그래서 하고많은 모텔 중에 저 잠잘 곳 하나 없겠어요, 하고 이어 말했다. 공장장이 혀를 차는 게 아무래도 나를 측은하게 여기는 듯해서 또 얼른, 널리고 널린 게 모텔인데요, 하고 덧붙였다. 모텔 잠이랑 집 잠이 같나, 들릴 듯 말 듯 공장장이 중얼거렸다. 집 밥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집 잠이란 말은 처음 들어본다고 하자 공장장이 또 쯧쯧 혀를 찼다. 혀 차는 소리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를 걱정해주는 게 고마워서 나는 공장장의 팔 아래로 어깨를 깊숙이 밀어 넣어 거의 들어 올리다시피 하며 걸었다.

“우리 집에 재워줄까?”

공장장이 물었다. 몇 시간 동안 보여준 공장장의 태도를 생각한다면 상당히 의외의 말이긴 했으나 나는 공장장이 내 친절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모양이라고 지레짐작해버렸다. 잠시 고민했지만 공장장 집이나 모텔이나 내게 집 잠이 아니긴 매한가지라 미안함이 줄었고, 그래서 좋다고 했고, 여전히 공장장을 부축하며 걸었고, 택시에서 내린 뒤 몇 번쯤 골목을 꺾어 들어 마침내 집에 도착했다. 여기서 자, 말한 공장장은 기역 자 형으로 붙은 다른 건물, 그러니까 본채쯤 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내가 선 곳은 말하자면 아래채의 허름한 문간방 앞.

온몸을 긁어대며 생각했다. 공장장은 굳이 나를 집까지 데려올 이유가 없었다. 나를 책임질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다. 나를 천안으로 불러들인 것은 공장장이 아니라 부장이었다. 내가 천안을 떠나지 못하게 한 것 역시 공장장이 아니라 부장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공장장에게 재워달라고 한 적이 없었고, 아니 내 잠자리를 걱정할 때조차 널리고 널린 게 모텔이라며 안심시켰고, 실제로도 술집을 나와 유흥가를 지나는 동안 무수히 많은 모텔을 보았고, 그래서 내가 여기 모텔 정말 많네요, 말했을 때 공장장이 잠시 멈춰 서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간판들을 눈이 부신 듯 올려다보기까지 했었다. 그러니까 잠잘 방이 없을까봐 나를 집까지 데려온 건 아니었을 거라는 말이다.

‘음흉한 노인네야.’

나는 목 대리에게 카톡을 보냈다. 잠시 기다렸다가 하나를 더 보냈다.

‘나를 괴롭히려는 속셈이겠지.’

그러는 동안에도 팔과 다리를 긁어댔다. 너무 긁어서 빨갛게 부어오른 곳에는 침을 바른 다음 찰싹찰싹 때렸다. 피까지 볼 수는 없었다. 피 냄새를 맡는다면 자던 중이거나 빈둥거리던 빈대들까지도 모두 일어나 내게 달려들 것 같았다. 목 대리에게서 카톡이 왔다.

‘누가?’

‘빈대에 질겁한 내가 이 구질구질한 곳에서 도망치기를 바라는 거야. 틀림없어.’

‘글쎄 누구를 말하는 거야?’

‘공장장. 정말 무서운 노인네야. 나를 이 빈대 소굴에다 집어넣다니. 앞에선 친절한 척하면서 뒤에선 호박씨를 까고 있었어.’

‘물량 얘기는 어떻게 됐어?’

나는 아직, 이라는 말과 함께 빨갛게 부어오른 곳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끔찍하군.’

글에서 목 대리의 찡그린 표정이 읽혔다. 나도 얼굴을 찡그리며 정말 끔찍해, 중얼거렸다. 들릴 리는 없겠지만. 핸드폰을 들지 않은 손으로 온몸을 벅벅 긁고 찰싹찰싹 때렸다. 시원한 느낌은 찰나에 불과했다. 게다가 여기를 긁으면 저기가 가렵고, 저기를 긁으면 또 다른 곳이 가려웠다.

‘당분간 천안에 있는 거야?’

‘어쩌면 영영 못 돌아갈지도 몰라.’

‘그런 말이 어딨어?’

‘해결할 때까지 돌아오지 말래.’

‘부장이?’

‘응. 부장이.’

‘심각하네.’

글에서 목 대리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나도 따라 한숨을 쉬었다. 들리지는 않겠지만. 잠시 후 목 대리에게서 다시 카톡이 왔다.

‘그래도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응. 영원히 거기서 살 순 없으니까.’

‘그건 그렇지.’

‘자네가 있을 곳은 여기야.’

‘그렇게 말해주니 힘이 나는군.’

‘집도 여기 있고.’

‘자네도 거기 있지.’

‘힘내. 건투를 빌게.’

‘고마워.’

역시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은 목 대리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번 더 말했다.

‘정말 고마워. 그리고 잠 깨워서 미안해.’

빈대 때문에 눕기는 틀렸을 거라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가렵지도 따끔거리지도 않았다. 내 몸이 빈대의 이빨에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물어뜯을 만큼 물어뜯은 빈대가 이제 지겨워져서 다른 놀이를 찾아 떠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빈대도 내가 불쌍해진 것일지도.

자리에 누웠다. 빈대들의 온상으로 보이는 이불은 덮지 않았다. 4월 말이니 정말 얼어 죽지는 않겠지만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 만큼은 추웠다. 체온 유지를 위해 옆으로 돌아누워 새우처럼 몸을 오그렸다. 눕기는 했지만 잠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또 어느새 잠이 든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여러 개의 꿈을 꾼 것 같은데 일어났을 때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딱 하나만 빼고. 누군가에게 끝없이 쫓기는 꿈. 꿈에서도 나는 그게 꿈인 걸 알아서, 꿈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꿈보다 백배나 더 처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현조가 쓰레기, 라고 했다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으나 그건 확실했다. 나를 내려다보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내 눈앞을 왔다 갔다 했다. 공장장일 확률이 가장 컸으나 어쩌면 공장장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나를 깨우러 온 공장장의 아들이거나 손자, 혹은 사모님. 그게 누구든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얼마나 불쌍해 보일까. 구겨진 와이셔츠에 찌푸린 얼굴, 두 손은 허벅지 사이에 쑤셔 넣고 새우처럼 웅크린 채 자고 있는 모습이라니. 노숙자의 몰골에 다름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나가기를 기다리며 그대로 누워 있었다. 얼른 흔들어 깨우지 않는 걸로 보아 내가 일어났는지 어쩐지 잠깐 확인하러 온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상대는 나가지도 깨우지도 않고 내 얼굴 위를 얼쩡거렸다. 그래서 나는 나를 내려다보는 이가 공장장의 손자가 아닐까 짐작했다. 낯선 손님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와 잠자는 나를 구경하는 거라고. 그렇다면 더 기다린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눈을 떴다. 까맣고 번들거리는 무언가가 내 눈앞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까맣고 번들거리는 무언가가 위아래로 쩍 벌어지더니 송곳 같은 이들이 드러났다. 곧 송곳 같은 이들이 사라지고 이번엔 갈기 같은 눈썹 사이로 커다란 눈동자가 보였다. 눈꺼풀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눈동자를 덮었다가 다시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런 다음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방을 나갔다. 나는 그대로 누워 있었다. 신기한 일이지만 나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고, 기적적이게도 내 심장은 1분에 70여 회의 펌프질로 온몸에 혈액을 실어 나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아침상을 두고 공장장과 마주 앉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집 안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나를 배려해 가족들을 모두 내보냈나, 잠깐 생각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손님을 빈대 소굴에 재우는 공장장의 인성을 보더라도 그럴 리는 없을 게 분명했다.

“왜 아무도 없어요?”

잠을 충분히 못 자서 목소리가 갈라졌다. 공장장에게 묻는 말이긴 했지만 내 눈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마당 한구석.

“쓸데없는 거 신경 쓰지 말고 밥이나 얼른 먹고 가. 출근하려면 지금 출발해도 늦을 텐데.”

공장장이 말했다. 벌써 일곱 시 오십 분이었다. 서울까지 출근하려면 당연히 지금 출발해도 늦었지. 하지만.

“저 안 가요. 아니 못 가요.”

“그새 잘렸어?”

“비슷해요. 정 부장님이 물량 해결할 때까지 돌아오지 말라고 했어요.”

“일 한번 똑 부러지게 하네.”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정말 너무하시네요.”

말해놓고 아차, 했다. 얼른 공장장 눈치를 보았다.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던 게 고작 하루 전인데, 그 걱정이 사라지자 오히려 공장장이 만만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헛소리가 나왔다.

“제 얘기는 그게 아니고요, 그러니까, 부하직원 입장도 좀 헤아려달라 뭐 그런 뜻이지요. 정 부장님이나 이 공장장님도 올챙이 적 시절이 있었을 거 아닙니까.”

아차차 또. 얼른 덧붙였다.

“올챙이라는 게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고요, 비유예요, 비유. 아시죠?”

“알았으니까 얼른 먹고 꺼져.”

기분이 상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숟가락질도 어쩐지 좀 전보다 거칠어진 것 같았다. 내게 유리한 쪽으로 화제를 돌려야 했다. 잠시 생각하다 내가 물었다.

“저 괴물 같은 생명체는 도대체 뭔가요?”

“점순이.”

내가 가리키는 쪽을 보지도 않고 공장장이 대답했다.

“아니, 정체가 뭐냐고요?”

“보면 몰라? 반려견이잖아.”

“제 눈엔 송아지만 한 늑대로 보이는데요.”

“어쩌면 늑대의 피가 섞였을지도 모르고.”

“네? 진짜 늑대라고요?”

“나야 모르지. 그렇게 궁금하면 점순이한테 직접 물어보든가.”

하마터면 정말 믿을 뻔했다. 점순이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못해도 내 가슴께까지는 올 것 같았다. 점순이를 보면, 정말 가당치도 않은 단어 조합이지만 늙은 송아지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런데 저렇게 풀어놔도 돼요?”

“되니까 풀어놨겠지.”

겁주려고 일부러 풀어놓은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의심에 무게를 더하는 건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점순이…… 제 방에 일부러 들인 거죠? 저 놀라서 죽으라고. 진짜로 놀라서 죽을 뻔했어요. 눈 뜨자마자 제 코앞에 떡하니 있는데 진짜로 심장 멎을 뻔했다고요.”

“설마. 송장 치우기 귀찮게 그딴 짓을 왜 해. 제 딴엔 제 방에 누가 와 있으니 궁금해서 들어가본 거겠지.”

“제…… 방이라고요?”

“겨울에만.”

말문이 막혔다. 그러니까 공장장은 손님인 나를,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와서는 개의 방에 재웠다는 말이지 않은가. 아, 뭐 이런 좆같은! 어쩐지 냄새도 나고 빈대도 많다 했더니.

“정말 너무하세요. 개가 자는 방에 사람을 재우다니요. 제가 아무리 미워도 이럴 수는 없어요.”

“꼭 점순이 방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 방세를 내는 것도 아니고.”

“누구 방인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밤새 빈대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요.”

“빈대가 있었어?”

“있었죠. 그것도 아주 많이. 4개 중대는 됐을 거예요. 물어뜯긴 데 한번 보실래요?”

나는 셔츠를 벗고 팔뚝을 보여주었다. 물어뜯긴 자국마다 빨갛게 부어 있었다. 공장장이 힐끗 보더니 한마디 했다.

“운동 좀 해야겠네.”

기가 찼다.

“이 자국을 보시라고요. 아직도 선명하잖아요. 밤새 얼마나 괴로웠는지 아세요? 긁어대느라 한숨도 못 잤어요.”

“빨간약 줄까?”

“필요 없어요.”

“그러게 누가 따라오래…….”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공장장이 중얼거렸다.

“제가 따라온 게 아니죠. 공장장님이 재워준다고 데려왔잖아요.”

“내가 그랬나…….”

지금이 기회였다.

“제가 많이 미우시죠? 그러실 거예요. 이해합니다. 공장장님 입장도 난처하시겠죠. 가뜩이나 일 많아 죽겠는데, 그렇죠? 게다가 기분 나쁘실 수도 있고요. 남이 싼 똥 치우라는 격이니. 그래도 어쩌겠어요. 우리는 가족인데. 가족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데 우선은 구하고 봐야 하잖아요. 힘들다고, 기분 나쁘다고 죽으라고 그냥 냅둬요? 그럼 다 같이 망하는 거잖아요.”

공장장은 대꾸하지 않았다. 내 말이 먹혔나?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얼굴도 어쩐지 좀 전보다 유순해진 것 같았다.

“공장장님 먼저 출근하세요. 전 차 찾아서 금방 뒤따라갈게요.”

막걸리집 근처에 내 차가 있었다.

“공장까지 오려고?”

“당연하죠. 사무실 분들께 인사도 드리고 또 발주서도 드려야 하고…….”

“안 오는 게 나을 텐데…….”

“왜 또 이러세요. 같은 가족끼리.”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간식 좀 사 갈까요? 사무실 분들 뭘 좋아하세요?”

“글쎄…….”

“그럼 제가 알아서 사 갈게요.”

공장장을 두고 먼저 일어났다. 내가 움직이자 점순이가 고개를 빳빳이 들더니 나를 주시했다. 짖거나 덤비지는 않았다.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공장장의 말처럼 사람을 공격하거나 할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하긴 그랬으면 벌써 물어뜯었겠지. 내 방에, 아니 제 방에 들어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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