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개가 홱! 돌아갔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신음 소리조차. 그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 앞에 버티고 선 사내를 쳐다보았다. 이자는 누구인가. 왜 대뜸 내 뺨을 후려치는가. 내가 본사 직원이라서? 좋지 않은 아침인데 내가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해서?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키까지 컸다. 손이 전골냄비 뚜껑만 했다. 활짝 펼쳐진 손바닥이 눈앞으로 다가오는데, 마치 커다란 문어가 덮치는 줄 알았다.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기어들어와!”
영업사원은 언제 어디서든 웃어야 한다고 배웠는데요, 따위의 대답은 하지 못했다. 사내의 표정이 너무 험상궂었다.
“당장 꺼져!”
물론 나는 꺼지지도 못했다. 꺼질 수만 있다면 꺼지라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꺼졌다. 하지만 여기서 꺼진다면 다시는 이 사무실에 발도 못 붙일 것 같았다. 눈으로 공장장을 찾았다. 나의 구원자. 나의 생명줄. 어디 계십니까, 공장장님. 공장장은 사무실 제일 안쪽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사무실 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한 가운데 공장장만 관심도 없다는 듯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니 눈엔 우리가 개돼지로 보이더냐! 이까짓 빵 쪼가리 몇 개 사 들고 오면 좋아라 할 줄 알았냐!”
사내가 탁자 위 빵 봉지를 집어 들더니 그대로 쓰레기통에다 처박았다. 천안에서 유명하다는 빵이었다. 일부러 인터넷 검색까지 해서 사 온 것이었다. 내 정성, 내 노력이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었다. 나는 공장장을 보았다. 제발 나를 봐주기를 바라며. 이 사내를 말리고 나를 구해줄 사람은 공장장뿐이었다. 이 공장의 최고 권력자, 이 공장의 지배자. 공장장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 사태는 금방 진정될 것이다.
“뭐 그럴 거까지야.”
마침내 공장장이 말했다. 드디어 나서는구나. 역시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 나는 공장장에게 알은체하려고 했다. 반갑게 인사해서 사무실 사람들에게 공장장과 내가 이미 친밀한 사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했다. 내가 막 말을 하려는 순간,
“빵이 무슨 잘못이라고.”
공장장이 덧붙였다. 맙소사. 내가 아니라 빵을 편든 것이었나. 같이 막걸리도 마시고 밥도 먹고 한집에서 잠도 잔 나를 내버려두고, 뺨을 얻어맞든 말든 상관도 않더니, 빵이 무슨 잘못이냐고?
직원 하나가 사내의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쓰레기통으로 가더니 빵을 꺼내 도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새 봉지는 구겨지고 종이 쪼가리 같은 것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니들이 와서 만들어 가라고 했지? 그런데 뻔뻔하게도 혼자 오셨어? 누굴 좆밥으로 보나, 이 새끼들.”
여전히 험악한 표정으로 사내가 말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토요일 내가 통화한 사람은 공장장이 아니라 바로 이 사내였다. 그때 나는 공장장님 계시냐고 물었고, 상대는 무슨 일이냐고 했다. 나는 설명했고, 내 설명을 들은 상대가 불같이 화를 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공장장이라고 생각했다. 본사 직원에게 그렇게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공장장뿐일 거라고.
“꺼져 새끼야.”
사내가 말했다. 물론 나는 또 꺼지지 못했다. 나는 정말이지 꺼지고 싶었다. 하지만 꺼질 수 없었다. 여기서 꺼진다면 회사에서도 꺼져야 할 것이다. 나는 두 손을 마주 잡고 엉거주춤 서서 할 말을 정리했다. 먼저 사과부터 해야겠지. 그런 다음엔 내가 왜 혼자 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고. 뭐라고 할까. 일이 많아 다들 바쁘다고 할까. 아니면 다들 아프다고 할까. 식중독. 그래 식중독 좋다. 점심때 한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밥을 먹었는데 재수 없게 식중독에 걸렸다고.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벌려 막 말을 하려는데 이번에도 공장장이 한발 빨랐다.
“그만하면 됐지 싶은데.”
나는 어리둥절했다. 나한테 하는 말인지 사내한테 하는 말인지 헷갈렸다. 그랬는데 사내가 공장장을 돌아보며 투정 부리듯 말했다.
“그래도 너무하잖아요. 책임자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새파랗게 어린 놈 하나 달랑 보내다니요. 15만 대예요, 15만. 한 달에 트랜스미션 15만 대를 추가로 생산해야 한다고요. 우리가 노는 것도 아닌데 15만 대라니. 세상에. 이건 우리보고 죽으라는 소리지. 그런데도 어린 놈 하나 달랑 보내? 다른 땐 부장이라는 작자가 잘도 내려오더니만 이럴 땐 꼭 코빼기도 안 보여. 하는 짓들이 괘씸하잖아요. 날이 갈수록 더해.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하니까 이것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고 이러는 거잖아요.”
“저 직원도 혼자 오고 싶지는 않았을걸.”
“그러니까 누가 혼자 오래요? 부장이라도 달고 왔어야지. 하다못해 과장이라도.”
“들었지? 용 대리라고 했나?”
공장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가서 전해. 물량 확보하고 싶으면 부장더러 직접 와서 얘기하라고.”
나는 또 네, 하고 아직도 내 앞에 우뚝 버티고 선 사내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사내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건 뭐 같은 회사 직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원수라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제 나가봐.”
공장장이 말했다. 나는 사무실을 나왔다. 몇 걸음 걷다 멈춰 서서 아득한 마음으로 창밖의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뒤 공장장과 사내가 나오더니 나를 지나쳐 다른 곳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는 순간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곧 잦아들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왼쪽 뺨이 얼얼했다. 손바닥을 갖다 대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맞은 건 왼쪽 뺨뿐인데 오른쪽 뺨에서도 열이 났다.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부장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박 과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아직 중국에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서 과장님이 보고 싶어서요, 실없는 소리를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부장의 명령이 있지 않은 한 내 맘대로 서울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망설이다 공장장이 사는 동네로 돌아갔다. 갈 데가 그곳뿐이었다. 공장장의 집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동네를 걸어 다녔다. 부장에게 한 번 더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었다. 식당 벽에 ‘고춧가루를 뿌려서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런 종이를 붙여놓은 짜장면집은 처음 보았다. 얼마나 맛있으면 이렇게까지 할까 싶어서 고춧가루를 잔뜩 뿌려서 먹었다. 나쁘지 않았다. 다음에는 고춧가루를 뿌리지 않고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비교가 가능했다.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철물점을 발견하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빗자루를 달라고 하자 어떤 빗자루를 원하느냐고 주인이 물었다. 빗자루도 종류가 많냐고 하니 주인이 다소 놀란 표정을 짓더니 용도에 따라 어마어마하게 다양하다고 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인이 손가락을 꼽아가며 빗자루의 종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싸리비, 수수비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말 털이나 꿩의 꽁지깃, 족제비 털로도 빗자루를 만든다는 건 처음 알았다.
내가 신기해하는 표정을 보이자 주인은 신이 나서 한참을 더 설명했다. 나는 집중해서 들었다. 어떤 빗자루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달라질 것만 같았다. 빗자루를 찾아 철물점 안을 둘러보았다. 여기 없는데……, 주인이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곧 보고 싶으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이 가게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더니 빗자루를 한 아름이나 들고 나왔다. 가게 앞에 일렬로 늘어놓는데 내 키만 한 것에서부터 팔뚝만 한 것까지 종류가 무려 스무 가지나 되었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빗자루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폈다. 무게가 적당한지 들어보고, 털이 부드러운지 쓰다듬어보고, 내 키에 알맞은지 확인하기 위해 직접 빗자루를 들고 쓰는 시늉을 해보았다. 뿌듯해하던 주인의 표정이 점점 시무룩해졌다.
“그래서 어디에 쓸 건데요?”
주인이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빗자루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폈다.
“어디 유물이라도 발굴하시나?”
주인의 표정이 다시 생기를 띠었다. 나는 마침내 빗자루 하나를 골랐다. 주인의 설명에 의하면 최고급 나일론 섬유로 만든 것이었다. 나는 3천 원을 주고 빗자루를 건네받은 뒤 철물점 앞을 떠났다.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이번에는 이불가게를 발견했다. 지난밤의 악몽이 떠올라서 요와 이불, 베개를 하나씩 샀다. 배달해준다며 주인이 주소를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모양이라고 주인이 넘겨짚어서 아니라고 했다. 오늘 밤 이걸 쓸 수 있을지도 실은 모른다고 말하자 주인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쫓아내면 쫓겨날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게 중얼거린 뒤 요와 이불, 베개를 비닐봉지에 쓸어 담아 어깨에 짊어지고 가게를 나왔다. 공장장의 집으로 돌아와 방 청소를 하는데 목 대리에게서 카톡이 왔다.
‘뭐 해?’
바로 답장을 보냈다.
‘방 청소 중이야.’
‘무슨 방? 집에 온 거야?’
‘아니. 천안에 있는 점순이 방.’
‘점순이는 또 누구야?’
‘있어. 무시무시할 정도로 이쁘게 생긴 여자가.’
‘여자 만날 시간도 있는 거야?’
‘글쎄, 만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만나는 것 같지 않은 게 아닌 것 같은데? 방 청소까지 해주고.’
‘지난밤의 악몽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빈대에게 또 뜯긴다면 난 아마 창백한 좀비가 될 거야.’
‘빈대 나온다는 데가 그 여자 방이었어? 아, 공장장 딸?’
‘글쎄, 딸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데.’
‘어쨌든 대단하군. 자네보다 더 둔한 여자가 있다니.’
‘가죽이 엄청 두꺼워 보이긴 해.’
‘그런 말 여자한테 실례야.’
‘진짠데.’
‘됐고, 공장장은? 설득했어?’
‘아직.’
‘그럴 줄 알았어. 설득했다면 천안에서 남의 방 청소나 하고 있진 않겠지.’
‘부장 지금 사무실에 있어?’
‘없어. 오전부터 안 보이네.’
‘회사는 별일 없지?’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오늘 새 직원이 왔어.’
‘새 직원? 신입사원? 채용 공고도 없었잖아. 임시직?’
‘그것까진 모르겠고 아무튼 부장이 데려왔어. 아침에. 지금 자네 자리에 앉아 있어.’
‘왜? 요즘은 며칠만 출장 가도 그사이에 알바 쓰나?’
‘글쎄. 참, 근데 그건 생각해냈어?’
‘뭘?’
‘부장이 왜 자네만 괴롭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그럼 내가 힌트를 줄게. 부장 생일 때 선물해?’
‘아니.’
‘명절엔?’
‘안 하지.’
‘인터넷으로 상품 주문 대신 한 적 있어? 안 이사한테 선물한다고 우리한테 주문하라며 시키잖아. 카드도 안 주고.’
‘딱 한 번.’
‘그때 돈 받았어?’
‘얘기는 한 번 꺼냈는데…….’
‘부장 이사할 때 가서 도왔어?’
‘부장이 이사했어?’
‘응. 몇 달 전에.’
‘몰랐어.’
‘이사 전날 내가 말해줬잖아.’
‘기억 안 나.’
‘까먹었군. 어쩐지 안 보이더라니. 그날 우리 팀 다 왔는데. 박 과장 빼고.’
‘그랬구나.’
‘부장이 부르면 한밤중이고 새벽이고 다 나가? 말하자면 우리 대리운전이나 택시기사로 이용할 때.’
‘핸드폰 충전을 깜빡 잊고 잘 때가 많아서…….’
‘부장 처남이랑 보험 계약했어? 며칠 전에 자네 찾아왔었잖아.’
‘내게 필요한 건 보험이 아니라 새 찬데…… 그래도 거절은 안 했어. 생각해보겠다고만 했지.’
‘그렇군. 여기까지만 할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지?’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만 목 대리에게서는 더 이상 답이 없었다.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목 대리의 말을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뭐 어쨌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건 목 대리의 질문에 모두 ‘아니’라고 대답했다는 것이었다. 영혼의 샴쌍둥이인 목 대리에게 부정적인 사람으로 비춰졌을까봐 걱정되었다. 부장의 심부름을 잘 수행했는가, 라고 물었다면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했을 텐데. 예를 들면 커피나 서류 복사, 전화 연결 같은 자잘한 것들에서부터 바짓단 수선 심부름 같은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들까지. 목 대리에게 말해줄까 하다 이번엔 찌질한 사람으로 보여질까봐 그만두었다. 목 대리가 먼저 물어주면 좋을 텐데.
*
부장과는 여전히 통화가 되지 않았다. 일부러 안 받는 것도 아닐 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기간은 한 달, 목표 생산량은 트랜스미션 15만 대. 게다가 가뜩이나 빠듯한 공장 일정. 1분 1초라도 빨리 생산에 들어가야 했다. 납품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내게 돌아올 게 뻔했다. 그런데 왜 부장은 전화를 안 받는 걸까. 속이 탔다. 나는 마루에서 일어섰다. 내가 움직이자 점순이가 고개를 치켜들더니 또 나를 주시했다. 점순이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용조용 걸어 집 밖으로 나왔다.
서울로 달렸다. 중간에 목 대리에게 전화를 걸어 부장이 사무실에 있는지를 물었다.
“좀 전에. 지금 자네 자리에.”
목 대리가 소곤거렸다. 좀 전에 들어와 지금은 내 자리에 와 있다는 말 같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 힘껏 액셀을 밟았다. 길이 막히지 않아서 순식간에 서울에 도착했다.
내가 사무실로 들어가자 마침 출입문 앞에 서 있던 한 과장이 어? 하며 놀랐다. 손에 담배와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 한 과장은 옥상으로 가는 대신 도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내 자리에 새로 왔다는 직원이 앉아 있었다. 부장은 부장 자리에 있었다. 지나치며 슬쩍 보니 새로 온 직원은 책상 위에 서류를 잔뜩 늘어놓고 거기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나는 곧장 부장 앞으로 갔다.
“여긴 웬일이야? 천안은?”
내가 못 올 데라도 온 듯 부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서운했지만 일단 준비한 말을 했다.
“전화를 안 받으셔서…….”
“전화 좀 안 받았다고 여기까지 달려와? 천안은 어쩌고?”
“그러니까 매우 급한 일이어서…….”
“천안은 어떻게 됐냐니까!”
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무실 안의 사람들이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빼고 부장과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심호흡을 한 뒤 재빨리 준비한 말을 했다. 그러니까 두 번째 문장.
“부장님께서 직접 내려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왜?”
“그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공장장님도 그렇고 또…….”
나는 얼버무렸다. 사내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더러 보재? 이 공장장이 직접?”
“네. 부장님이 오셔야 생산에 들어가겠다고…….”
“그렇게 말했어? 확실해?”
“네 아마도…….”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렇게 대답했다. 공장장도 사내도 뜬금없는 발주보다는 그 발주서를 내민 사람이 부장이 아닌 나여서 더 화가 난 것 같았으니까. 부장이 간다면 그들도 마음을 돌릴 것 같았으니까.
“그거 해결하라고 보냈더니 쯧. 너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억울했다. 나는 할 만큼 했다. 뺨까지 얻어맞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나마 사내가 누그러든 게 다 내 덕분이었다. 내 왼쪽 뺨 덕분이란 말이다.
“그게…… 제 얘기는 들으려고 하지 않고 부장님만 찾아서…….”
“그러니까 왜 나를 찾게 하냐고! 그거 하나 딱딱 해결을 못하고서!”
“부장님이 책임자시니까…….”
“내가 몸이 두 개야 세 개야? 책임자라고 여기저기 다 가? 그럼 너는 뭐 하려고 회사 다녀? 네 역할이 뭐야? 내 명령을 들고 실전에 뛰어들었으면 무조건 싸워서 이겨야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싸워서 이겨야지. 그게 네 역할 아냐?”
나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뭔가가 많이 억울했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왼쪽 뺨은 아직도 욱신거리는데…… 시발, 이 나이에 뺨까지 얻어맞았는데…….
“내일 오후에 간다고 전해.”
마침내 부장이 말했다.
“그럼 내일 함께…….”
“너는 지금 당장 내려가. 약을 올리든 신경을 건드리든 해서 좀 더 얻어터져. 이렇게 눈치가 없나 그래. 때려서 못 이길 것 같으면 맞아서라도 이겨야지. 뺨 한 대로 되겠어?”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안 걸까. 나도 모르게 손으로 왼쪽 뺨을 감쌌다. 부장이 이어서 말했다.
“그 정도 부기로는 어림도 없지. 할리우드 액션 몰라? 상대가 뺨을 원하면 온몸을 내준다는 심정으로 몸을 날렸어야지. 팔이라도 하나 부러졌어봐, 그깟 15만 대 단번에 오케이 나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여전히 뭔가가 많이 억울했지만 또 여전히 반박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듣고만 있었다. 부장은 좀 더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이제 가봐, 하고 말했다. 사무실을 나왔다. 일 때문에 천안으로 가는 거면서도 마치 쫓겨나는 것만 같았다. 회사 건물을 완전히 빠져나온 뒤에야 새로 왔다는 직원에 대해 묻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직원이 왜 하필 내 자리에 앉아 있는지, 책상 위에 잔뜩 늘어놓고 보던 서류들은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