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뭐?”
자리에 앉자마자 현조가 물었다. 바쁘니? 내가 되물었고 현조는 봤잖아, 했다.
“회식하러 가던 거.”
“그래. 회식하러 간다고 했지.”
나는 진동 벨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회식 꼭 가야 해? 요즘 직원들 회식 자리에 팀장 끼는 거 별로 안 좋아해.”
현조가 별다른 대꾸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 그러니까 내 말은 너를 안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팀장을 안 좋아한다는 거지. 불편하니까.”
“다른 팀 직원들도 있어.”
현조가 말했다. 그러면서 시계를 보았다.
“아 그래? 다른 팀 회식 자리에까지 끼는 거야? 눈치 없다 소리 듣겠네.”
나는 현조를 보며 웃었다. 일 능력은 있을지 몰라도 사회생활은 영 꽝이구나 생각하며.
“이번에 우리랑 같이 프로젝트 진행하는 팀이야. 회식은 인사하는 자리고. 서로 이름 정도는 알아야지.”
“아! 그렇구나. 그럼 같이 나오던 그 사람이?”
내가 현조네 회사에 도착했을 때 때마침 현조가 어떤 사람과 나란히 회사 건물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사람이 뭔가를 얘기하며 환하게 웃자 현조도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그쪽 팀장.”
“어려 보이던데?”
“글쎄. 선배보다 많을걸.”
나는 진동 벨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시계를 보았고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친해?”
내가 물었다.
“얼굴만 아는 정도?”
“그런데 웃어? 너 모르는 사람한텐 잘 안 웃잖아. 아까 회사에서 나올 때 보니까 둘이 얘기하면서 웃고 있던데.”
“글쎄. 내가 웃었나?”
“응. 웃었어. 확실해. 내가 봤어. 친하지도 않은데 막 웃고 그러면 만만하게 보일 수도 있어. 너 조심해야 될 거 같다. 같이 프로젝트도 진행하는데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되잖아. 게다가 그쪽은 남자고, 너보다 나이도 많고, 회사도 오래 다녔을 테니까.”
현조는 별다른 대꾸 없이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현조가 반박하지 않는다는 건 내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자존심 센 현조는 여간해서는 그래 네 말이 옳다, 라고 하지 않았다. 그럴 땐 침묵했다. 내가 한소리 더 하려는데 마침 진동 벨이 울려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조 앞에 커피 잔을 내려주고 나도 호로록 마셨다. 커피는 뜨겁고 진했다. 현조가 또 시계를 보았다. 주인공은 원래 늦게 나타나는 거야, 말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현조가 핸드폰을 꺼내서 나는 얼른 나 어제 천안 갔잖아, 하고 얘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공장장을 만난 일이며 빈대에 뜯긴 얘기, 공장 사무실에 찾아갔던 얘기를 해주었다. 물론 사내에게 뺨을 맞았다는 얘기는 빼고. 그러자 현조가 물었다.
“천안은 왜?”
“내가 얘기했잖아. 며칠 전에 치킨 사 들고 네 집에 간 날. 일본으로 출장 가야 하는데 불량 때문에 난리도 아니라고. 어제 아침에 카톡도 보냈고. 다시 납품을 해야 해서 그 문제로 천안으로 가는 중이라고. 천안에 가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했잖아. 기억 안 나?”
“아, 그랬던가.”
“다른 데로 잘못 갔나? 어쩐지 계속 안 읽는다 했어.”
“깜빡했나 보네.”
“카톡 확인해봐. 내가 보낸 거 있는지.”
“보냈으면 왔겠지.”
“확인해보라니까. 잘못 갔을 수도 있잖아.”
“나중에.”
“지금 봐.”
“선배.”
현조가 나지막하게 불렀다. 커피 잔을 들려다 말고 현조를 보았다. 왜 갑자기 목소리를 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납품 문제는 해결했어?”
나는 다시 공장장이 부장을 데려오라고 했다는 얘기며 계속 전화했지만 부장이 받지 않았다는 얘기, 그래서 서울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고, 사무실에서 부장을 만난 얘기들을 해주었다. 물론 뺨 한 대로 되겠어? 이 말은 빼고.
“팔이라도 하나 부러뜨리라는데? 그러면 그깟 15만 대 금방 오케이 난다고. 그깟 15만이 아닌데 그깟 15만이래. 공장이 노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한테 죽으라는 소리지 이건.”
“쓰레기네.”
“쓰…… 응? 뭐?”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 부장이라는 사람, 쓰레기라고. 그것도 아주 하수의.”
“아…… 그래.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부장은 얼른 내려가서 얻어터지라고 했지만 난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어. 지금도 봐. 곧장 천안으로 가는 대신 널 만나러 왔잖아.”
알아 혹은 선배가 그럴 사람이 아니지 같은 호응을 기대했지만 현조는 또 묵묵부답이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내가 말했다.
“너 아주 속 시원하게 말 잘하는구나.”
시간을 두고 기다렸지만 여전히 대꾸가 없어서 또 내가 말했다.
“사이다 같았어.”
현조가 시계를 보았다. 현조가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이제 일어나자. 너 회식 가야 하잖아. 더 늦기 전에 나도 천안 가봐야 하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조의 커피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밖으로 나온 뒤 나는 데려다줄까? 물었고 현조는 괜찮다고 했다. 나는 군말 없이 돌아섰다. 떠날 때를 아는 사람의 뒷모습처럼 보이기를 바라며 쿨하게 돌아서서 걸었다. 차를 세워둔 곳을 향해.
협상 테이블로
“왜 그 방에서 나와? 집에 간 거 아니었어?”
별로 놀란 기색도 없이 공장장이 물었다. 나는 안채 마루로 건너갔다. 그리고 서울에 갔다가 어젯밤 늦게 돌아왔다고 말했다. 안방 불이 꺼져 있어서 미처 말씀 못 드렸다고, 허락 없이 방에 들어가서 죄송하다고 했다. 공장장은 묵묵히 식사를 계속했다. 오후에 정 부장님 오신대요, 해도 나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그만이었다. 저도 밥 먹어도 돼요? 하니 말은 없고 고갯짓으로만 부엌을 가리켜 보였다. 나는 냉동된 밥과 국을 데워 와서 상 앞에 앉았다. 저도 공장에 가서 일 도울게요, 하자 그제야 무슨 일? 물었다.
“아무 일이나 다요. 시켜만 주세요.”
“시키는 건 문제가 아닌데…… 오른쪽 뺨이 남아날는지.”
웃음기 하나 없이 공장장이 말했다. 순간 사내의 우악스러운 손이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볼일이 있었는데 깜빡 잊고 있었네요. 저도 오후에 정 부장님 오시는 시간에 맞춰서 갈게요.”
그 말을 끝으로 공장장과 나는 말없이 밥만 먹었다. 공장장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그래서 나도 공장장에게 묻지 못했다. 궁금한 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령 다른 가족들은 왜 안 보이는지, 횡령은 다른 공장장이 했다면서 그렇다면 저 뒤뜰의 고물은 다 뭔지, 직원들 사이에 떠도는 그 소문들의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거짓인지, 같은 것들.
공장장이 출근한 뒤 나는 마루에 앉아 빈둥거렸다. 시간은 끔찍할 정도로 느리게 흘렀다. 공장장의 집 담벼락 아래에는 노란 꽃들이 잔뜩 피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하늘마저도 노래 보였다. 자꾸만 기분이 가라앉는 게 아무래도 노랗게 바랜 듯한 하늘 때문인 것 같아서 나는 시선을 거두고, 거두고 나니 딱히 볼 게 없어서 점순이를 봤다가, 마침 점순이도 나를 보는 바람에 눈이 마주쳤는데 한동안 서로를 그렇게 쳐다보다가 문득 내가 싸움을 거는 것으로 점순이가 오해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 뒤 조금 졸았다. 오전의 볕이 따뜻했다. 눈을 떴을 땐 고작 몇십 분이 흘렀을 뿐이었다. 나는 찢어져라 입을 벌리고는 하품을 했다.
현조는 잘 들어갔을까. 회식은 잘 끝냈을까. 아무 일도 없이, 아무런 일도 없이 곧장 집으로 갔을까. 오늘 출근은 잘 했을까.
현조에게 전화를 해볼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아직 이른 오전이니 목소리만 들어도 지난밤의 상황을 대충 알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오히려 오지랖 떤다고 오해할 수도 있었다. 정말 순수하게 걱정하는 건데도. 현조는 평소에도 술을 좀 과하게 마시는 경향이 있었고, 술에 취하면 겁대가리가 없어져서 덩치 큰 남자들에게도 곧잘 시비를 걸곤 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내가 덩치들에게 수없이 머리를 조아린 뒤 현조를 끌고 나온 것만도 도대체 몇 번이던가.
조금 더 망설이다 그냥 카톡을 보냈다.
‘출근 잘 했어?’
금방 답장이 왔다.
‘응.’
‘회식도 잘 하고?’
‘응.’
‘별일 없었어?’
‘응.’
‘집에도 잘 들어가고?’
‘응.’
‘회식 끝나고 바로 집에 갔어?’
금방금방 오던 답장이 이번엔 조금 늦게 왔다.
‘응.’
‘그 팀장이라는 사람은 어때?’
이번에도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냥 뭐.’
‘인상이 좀 그렇던데 혹시 비열하거나 그런 성격은 아냐?’
‘아직 잘.’
‘혹시 그 사람이 집까지 바래다줬어?’
‘아니.’
‘매너가 영 꽝이네.’
‘글쎄.’
‘내 말이 맞아.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어.’
‘뭐 그럴지도.’
‘앞으로 같이 일하자면 너 좀 힘들 수도 있겠다.’
‘그런가.’
‘아무튼 점심 잘 챙겨 먹고 힘내.’
‘응.’
오늘은 웬일로 꼬박꼬박 대답을 잘 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현조와 주고받은 대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내가 서울에 있었다면 맛있는 점심이라도 사줬을 텐데. 부장 말을 듣는 게 아니었다. 얼른 내려가서 더 얻어터지라니. 이게 말인가 막걸린가. 현조 말대로 정말 쓰레기가 아닌가. 나는 소리 내어 쓰, 레, 기, 하고 발음해보았다. 답답하던 속이 좀 풀렸다.
담벼락 아래 누워 있던 점순이가 마당 가운데로 걸어오더니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러고는 몸을 이쪽저쪽으로 굴렸다.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점순이는 구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등을 시멘트 바닥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가려워서 그런다는 걸. 하는 꼴이 우습기도 하고 안돼 보이기도 해서 내가 좀 긁어줄까 하다 그만두었다. 첫날 밤 내가 빈대에게 뜯긴 걸 생각하니 동정의 마음이 절로 사라졌다.
“야! 넌 그래도 가죽이 두껍기라도 하지 내 피부는 얇디얇다고! 너 때문에 내가 죽을 뻔했어.”
당연한 말이지만 점순이는 반응하지 않았다. 몸을 휘딱 뒤집은 채 등으로 시멘트 발린 마당을 기어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점순이를 내버려두고 뒤뜰로 갔다. 소문만큼은 아니지만 온갖 종류의 고물들이 덤프트럭 두 대를 가득 채울 정도로는 쌓여 있었다. 멀리서 볼 땐 다 고물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이게 정말 고물인가 싶은 것들도 상당수 섞여 있었다. 그러니까 고물 취급도 못 받을 것들, 고물이라기보다는 쓰레기에 가까운 것들. 예를 들면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를 까만 비닐봉지들, 너무 심하게 찢어져서 너덜거리고 흐물거리는 자전거 타이어 등등.
공장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보기 흉하게 왜 뒤뜰에다 고물들을 쌓아두는 걸까. 혹시 퇴직한 뒤에 고물상을 하려고? 그래서 미리미리 조금씩 주워다 놓는 건가. 그렇다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 고물들을 다 팔아봤자 돈을 얼마나 받는다고. 퇴직하면 늙어서 고물 옮길 힘도 없을 텐데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별 기대 없이 뒤적여본 고물 더미에서 알루미늄 목발 두 개를 찾아냈다. 먼지를 닦아낸 뒤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걸어보니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목발을 짚고 뒤뜰을 돌아다니는 와중에 부장이 내려올 때까지 시간을 보낼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전날 빗자루를 사느라 들렀던 그 철물점으로 갔다. 빗자루 때문 말고도 나는 어제 철물점 앞을 두 번 더 지나쳤는데 그때마다 길가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있던 주인이 노골적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아래위로 찬찬히. 호기심과 의심이 서린 눈길로. 한 번은 내게 말을 걸려는 듯 엉거주춤 의자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나는 기분이 나빠져서 철물점 주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목발을 짚고 철물점으로 느릿느릿 다가갔다. 예상대로 주인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 앞을 가로막았다. 다리는 어쩌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주인에게 나는 여기서 사 간 빗자루가 부러지는 바람에 앞으로 고꾸라졌고 그래서 다리를 다쳤다고 대답했다.
“에? 설마…….”
주인이 중얼거렸다. 나는 진짜라고 말했다.
“뭘 어쨌기에 빗자루가 부러져요?”
의심 가득한 얼굴로 주인이 물어서 나는 빗자루의 용도에 맞게 방을 쓸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방을 쓸었을 뿐인데 왜 빗자루가 부러졌다는 건지……?”
“약하게 만들었나 보죠. 방도 못 쓸 정도로. 이거 책임을 어디다 물어야 하나?”
내가 정색하며 책임 운운하자 주인이 움찔하더니 그런데…… 하고 말꼬리를 늘였다.
“빗자루 부러지는 것하고 다리 다치는 게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나는 주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빗자루가 부러져서 내가 앞으로 고꾸라졌고 그래서 다쳤다, 하고 한 번 더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왜? 주인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했다.
“빗자루가 큰 것도 아니고 겨우 무릎까지 오는 건데…… 빗자루 부러졌다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건…… 빗자루에 기대고 서 있지 않은 이상…….”
보기보다 치밀했다. 철물점 주인이 거기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지기 싫어서 끝까지 우겼다.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한창 힘을 주는데 빗자루가 똑! 안 당해봤으면 말을 마세요.”
한자리에 오래 서 있었더니 들고 있던 오른 다리가 저렸다. 나는 슬그머니 오른 다리를 내려놓고 왼 다리를 들었다. 못 봤을 거라 생각했는데 주인이 내 오른 다리를 가리키며 다리가……, 했다. 보기보다 눈썰미도 좋았다.
“열 발가락 밟혀서 안 아픈 발가락이 없는 법이죠.”
내가 말했다. 그게 무슨……, 중얼거리는 철물점 주인을 무시하고 돌아섰다. 그런 다음 태연하게 두 발로 걸어서 철물점 앞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