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장이 왔다. 공장 마당에서 대기하던 나는 마치 일하다 뛰쳐나온 양 부장 차 앞으로 조르르 달려가 인사했다. 부장은 나를 본 체 만 체 하고는 공장장이 기다리는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 문을 열기 직전 부장이 갑자기 생각난 듯 뒤돌아서더니 나를 훑어보았다. 그러곤 쯧,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냈다. 말하지 않아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나는 팔다리 어느 하나 부러지거나 찢어진 데도 없었고 얼굴도 너무 말짱했다. 왼쪽 뺨이 부어 있던 어제보다 더. 쓰레기, 라던 현조의 말이 떠올랐지만 나는 차마 속으로라도 그 말을 내뱉지 못했다. 눈앞에 부장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부장과 내가 들어가자 둥근 탁자 앞에 앉아 있던 사내가 반쯤 몸을 일으켰다가 도로 앉았다. 공장장은 보이지 않았다.
“최 과장 오랜만이요.”
부장이 말했다. 내 왼쪽 뺨을 후려쳤던 사내, 그자가 최 과장이었다. 최 과장은 부장을 향해 고개만 까딱, 그뿐이었다. 부장은 탁자 앞에 앉고 나는 부장 뒤로 조금 떨어져서 앉았다. 커피가 나왔고, 공장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거 좀 한 번만 부탁 좀 합시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부장이 말했다. 호로록 소리 내며 커피를 마시는 공장장을 대신해 최 과장이 대답했다.
“공장 일정 안 되는 거 뻔히 알면서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3교대로 돌리면 되잖아요. 이번만 부탁 좀 합시다. 회사가 위기요, 위기 상황이라고. 이거 납품일 못 맞추면 손해가 어마어마해요. 거래처 떨어지는 건 둘째 치더라도 물어내야 할 손해배상금이 어마어마하단 말이요. 같은 회사 직원들끼리 이러지 맙시다.”
“우리가 같은 회사 직원이었습니까? 난 오늘 처음 알았네. 늘 명령만 내리기에 난 또 우리가 하청 업첸 줄 알았지. 아, 차라리 하청 업체가 나으려나. 거긴 그래도 납품 대금이라도 받을 수 있잖아. 우린 뭐 죽어라 일해도 돌아오는 게 없으니.”
“말이 심하네요.”
“말만 심한 걸 다행으로 아쇼. 행동까지 심했으면 진작 병원으로 실려 갔을 거요.”
최 과장이 말하며 나를 흘끗 쳐다보았다. 손 닿을 거리도 아닌데 나는 움찔했다.
“그 욱하는 성격 때문에 아직도 과장 딱지를 못 떼는 겁니다. 알아요?”
“알다마다. 누구처럼 아부하고 비굴하게 굽신거려서 승진하느니 차라리 평생 과장으로 남겠소.”
“그거야 최 과장 본인 일이니 알아서 하시고, 이번 건은 해결 좀 합시다. 급해요. 하루가 급하다고. 한 달 안에 15만 대를 생산해야 한다고. 이렇게 앉아서 노닥거릴 시간이 없어요.”
“그렇게 급하면 본사 직원들 데려와서 공장 돌리시든가.”
“최 과장!”
부장이 탁자를 치며 일어났다. 그 바람에 종이컵이 흔들리긴 했지만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공장장이 부장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허허 진정들 하시고. 이러다 멱살 잡겠어.”
부장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앉았다.
“원하는 게 뭐요?”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부장이 물었다. 최 과장이 지체 없이 대답했다.
“트랜스미션 15만 대 추가 생산 완료 후 전 직원 3일 휴가. 아, 교대 휴가는 사양이오. 반드시 전 직원 일제히. 우리도 좀 쉬어야 살지. 트랜스퍼 생산라인도 마찬가지. 15만 대 만들어내자면 그쪽 직원들도 휴일이나 야간에는 트랜스미션 라인으로 교대 투입해야 할 테니까.”
“3일 동안 공장 가동을 아예 멈추겠다는 말이오? 트랜스퍼까지? 정말 가관이군.”
“그러지 않으면 쉬어도 쉬는 게 아니지. 툭하면 불려 나올 테니까.”
“그게 가능하다고 봅니까?”
“충분히. 지금부터 미리미리 생산물량을 하청 공장으로 돌리면 가능하지. 대금 지불하는 게 아까워서 회사가 안 하는 것뿐이지.”
“자기 공장 놔두고 하청 공장에 맡겨라? 어이가 없군, 어이가 없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럼 우리도 못 하지.”
“일하기 싫으면 퇴사를 해요! 아무도 안 잡으니까. 월급은 꼬박꼬박 받아 가면서 이게 무슨 생떼야!”
“오, 그런 방법이 있었네. 공장장님 어떡하죠? 저 퇴사할까요?”
그러자 공장장이 턱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자네 하나 나가는 거야 상관없지만 다른 부장들 생각은 어떠려나…….”
“당연히 제가 나가면 다 따라 나온다고 하겠죠. 입사 때부터 다 제가 가르치고 키운 사람들 아닙니까.”
“그렇구먼. 그 사람들 다 데리고 갈 회사는 있고?”
“서로 오라고 할걸요? 저만 해도 기름밥 30년입니다. 평균으로 따져도 20년은 될 거구요. 어딜 가든 여기보다 못한 대우 받을까요.”
“아 참, 안산 2공장에서 경력직 구한다던데 추천서라도 써줘? 그쪽은 클러치라 좀 그런가…….”
“필요 없습니다. 클러치가 문제가 아니에요. 꼴 보기 싫은 낯짝들 또 봐야 할 텐데 거길 뭐 하러 갑니까.”
“부장들까지 다 나가면…… 저 값비싼 기계는 누가 돌리나…….”
“알아서 하겠죠. 나가면 그뿐인데 어떻게 되든 우리가 무슨 상관입니까.”
“나도 데려가주면 안 될까?”
“그냥 여기 계세요. 그 몸뚱이로 어딜 따라오시겠다고.”
“내 몸뚱이가 어때서?”
“걸핏하면 고장이잖아요, 연식 오래돼서.”
“심부름이라도 시켜줘. 나 심부름 잘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부장이 또다시 탁자를 치며 일어났다. 공장장과 최 과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부장이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알았습니다. 뜻대로 해드릴 테니 이 정신병자 같은 대화나 좀 그만하시죠. 이건 뭐 바보들의 대화도 아니고.”
부장은 최 과장을 노려보느라 못 본 것 같았지만 나는 똑똑히 보았다. 공장장이 빙그레 웃는 것을.
“얘기도 다 끝났으니 이제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
공장장의 제안에 최 과장은 좋다고 했고 부장은 바쁘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대로 보내는 건 예의가 아니지. 밥이라도 한 끼 먹여 보내야 내 마음이 편하지 않겠나.”
부장은 대꾸하지 않았다.
“서로 쌓인 감정도 풀고. 어쨌거나 앞으로도 쭉 얼굴 봐야 될 사인데 이러고 헤어지면 쓰나.”
“갑시다. 내가 살게요. 정 부장님도 마음 푸시고. 내일부터 당장 생산 들어갑니다. 대신 약속은 꼭 지켜주세요.”
최 과장이 말하자 그제야 부장이 마지못한 듯 그러자고 했다. 최 과장이 앞장서 사무실을 나가고 부장이 뒤를 따랐다. 공장장이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자네도 가지.”
“네? 저도요?”
“자네도 어차피 저녁은 먹어야 할 거 아냐. 최 과장한테 빚 받는다고 생각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눈만 껌벅거리는데 공장장이 오늘은 봐줄 만하네, 했다.
“어제는 벌겋게 부어서 영 못 봐주겠더니.”
“아…….”
뺨 얘기였다.
“전 괜찮은데…… 세 분이서 드셔도 되는데…….”
솔직히 그 자리에 끼고 싶지 않았다. 모셔야 할 사람이 세 명이나 되었다. 차라리 혼자 짜장면이나 먹는 게 더 속 편했다.
“같이 가. 최 과장이 욱하는 게 있어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야. 이번에 얼굴 익혔으니 다음엔 좀 더 나을 테고.”
공장장이 그렇게 말하는데 더는 사양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공장장을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최 과장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공장 후문 근처의 허름한 술집이었다. 공장장을 따라 술집으로 들어서는데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불렀다. 영문도 모른 채 부장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최 과장과 공장장을 의식하는 듯 술집 통유리 창을 등지고 서더니 목소리를 낮춰 부장이 말했다.
“너는 일 마무리될 때까지 여기 있어.”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여기 남아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인가. 나는 머뭇거리다 왜요? 하고 물었다.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해야 할 거 아냐? 말만 저러고는 우리 골탕 먹일 수도 있어. 최 과장 저 작자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야.”
“그래도 제 업무가 있는데…….”
“네 업무가 바로 이거야. 나고야 펑크 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설마 그러기야…….”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지켜보다가 무슨 일 생기면 즉시 연락하고. 공장장한테 말해놓을 테니까 현장 나가서 일도 좀 돕고. 핑계 좋잖아.”
“그럼 제 업무는…….”
“그건 걱정 말고.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으니까.”
부장은 제 할 말만 하고는 술집으로 들어가버렸다.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내가 말할 때마다 뚝뚝 끊고 끼어들기만 하고. (아, 시발. 뭐 이런!)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욕을 간신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새로 왔다는 직원, 그럼 그자가 내 일을 하는 건가? 그래서 내 책상에 앉아 있었나? 인수인계도 안 했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때 최 과장이 안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네! 우렁차게 대답하고는 얼른 뛰어갔다.
최 과장이 소주병을 든 채 부장을 재촉하고 있었다.
“마셔요, 마셔. 이런 날 마셔야지 언제 마십니까. 소주 맛을 알아야 인생을 제대로 아는 거라니까. 인생이 어디 달기만 하겠소. 쓰디쓴 게 인생인데. 이 소주가 바로 인생의 쓴맛이다 이거요.”
부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보였지만 최 과장은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주병을 부장 코앞까지 바짝 들이밀고는 흔들었다.
“차 때문에 그래요? 그럼 대리 부르면 되지. 내가 대리비 낼게요. 한 30만 원이면 되려나? 40만 원? 까짓 내가 내면 되지. 내가 대리비 드릴 테니 일단 마시고 봅시다.”
“그럴 필요 없어요. 내 대리비는 내가 낼 테니 최 과장은 그 돈으로 애들 과자나 사줘요.”
자존심이 상한 듯 부장이 퉁명스럽게 대꾸하더니 마침내 소주잔을 비웠다. 최 과장이 얼른 빈 잔을 채웠다. 그 뒤로 부장은 더 빼는 것 없이 잔을 부딪쳐 오는 족족 다 마셨다. 금방 얼굴이 빨개졌다. 안주는 거의 먹지 않았다. 최 과장도 안주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석쇠 위에서는 막창과 곱창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구워지고 있었다. 공장장과 나는 둘이서만 건배하며 조금씩 소주를 마시고 노릇노릇 잘 구워진 막창과 곱창을 골라 먹었다.
“먹어, 먹어. 우리라도 먹자고.”
내가 부장 눈치를 볼 때마다 공장장이 말했다.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우리는 한 팀이라기보다 두 팀에 가까웠다. 공장장과 내가 조용히 얘기하며 조용히 먹고 마셨다면, 최 과장과 부장은 마치 주량 대결을 하듯 한쪽이 마시면 다른 쪽이 따라 마셨고,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듯 이야기했다. 쌓인 걸 푸는 자리가 맞긴 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술김에 주먹다짐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았다.
최 과장의 주량이 어마어마했다. 결국 최 과장이 이겼다. 부장은 탁자에 엎드린 채 최 과장을 손가락질하며 뭐라고 계속 중얼거렸지만 발음이 꼬여서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런 부장을 최 과장이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았다.
“아이고, 배고프다. 이제 안주 좀 먹어볼까.”
최 과장은 주먹만 하게 상추쌈을 싸서는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나는 터질 것 같은 볼을, 그렇게 마시고도 끄떡없는 최 과장을, 너무 여유로워서 오히려 괴물 같은 그 사람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정 부장은 어떡하지…….”
어느새 완전히 뻗어버린 부장을 보며 공장장이 중얼거렸다.
최 과장은 택시 뒷좌석으로 집어 던지듯 부장을 밀어 넣었다. 그 옆자리에 내가 앉고, 공장장은 조수석에 탔다. 택시가 움직이자 길가에 선 최 과장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이게 뭐지? 이게 무슨 일이야? 여기 어디야?”
잠결에 그런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용 대리!”
다급하게 나를 찾는 목소리, 부장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래채로 갔다. 문을 열자 부장이 웃옷을 벗은 채 힘겹게 허리를 비틀어가며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내 몸이 왜 이래? 이 붉은 반점들은 다 뭐야? 왜 또 이렇게 가려워? 응?”
그 순간 아차 싶었다. 빈대 생각을 못 했다. 지난밤 나는 천안에 내려온 첫날 내가 썼으나 그 뒤로는 손도 대지 않은, 옷장 한편에 처박아두었던 요와 이불을 꺼내 깔고 펼친 뒤 부장을 아래채 방으로 밀어 넣었다. 내가 산 이부자리는 들고 나와 안채 마루에 깔았다.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단지 내 것을 내가 쓰고, 남의 것을 부장에게 내주었을 뿐이었다.
“여기 어디야?”
부장이 물어서 나는 공장장님 댁이라고 대답했다.
“날 왜 여기로 데려온 거야?”
부장이 또 물어서 나는 정신을 잃으셔서 어쩔 수 없이 여기로 모셨다고 대답했다.
“호텔도 있잖아. 왜 하필 여기야?”
부장이 인상을 썼다. 목소리도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나는 주눅이 들었다.
“공장장님께서…….”
“내가 이리로 오자고 했네.”
공장장이 말했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내 뒤에 서 있었다. 나는 옆으로 비켜섰다.
“정신도 없는 사람을 혼자 호텔방에 자게 할 수가 있어야지. 그러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서 내가 우리 집으로 오자고 했어. 내가 많이 잘못한 건가?”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제 몸 좀 보세요. 벌레들이 얼마나 물어뜯었는지 가렵고 따갑고 아주 죽겠습니다.”
공장장이 한 발 앞으로 나서더니 허리를 숙인 채 부장의 몸을 들여다보았다.
“저런! 쯧쯧. 빈대한테 물린 자국인가 보네. 빈대가 있으면 안채로 건너오지 밤새 뜯기고 있었어? 쯧쯧.”
“취해서 쓰러져 자는데 제가 어떻게 압니까. 방이 이 지경이면 그냥 호텔로 데려가시지. 아 젠장, 가려워 죽겠네.”
“나도 몰랐어. 용 대리는 이 방에서 잘 자기에 아무 문제 없는 줄 알았지. 빈대가 기승을 부릴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나.”
“용 대리가 이 방에서 잤다고? 진짜야?”
부장이 나를 보며 물었다.
“네……. 저 저는 괜찮았는데…… 어제 청소도 했는데…….”
“그럼 도대체 빈대가 어디서 나왔다는 거야? 아, 술집!”
부장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곧 옷을 주워 입으며 투덜거렸다.
“거기서 붙어 왔나 보네. 어쩐지 지저분하고 더럽고 기분 나쁘다 했더니. 왠지 불쾌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어. 하여튼 최 과장 이 작자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니까.”
“뭐 그렇다고 그렇게 말할 것까지야…….”
나를 슬쩍 돌아본 뒤 공장장이 중얼거렸다.
“최 과장이요? 제 말이 뭐 틀렸습니까? 사사건건 시비잖아요. 자기보다 직책도 높은데 걸핏하면 반말에다, 되네 안 되네, 하네 마네, 자기가 공장 책임자도 아니면서 나설 때 안 나설 때 다 나서고. 오죽하면 최 과장을 공장장으로 아는 사람들이 다 있을까. 안하무인에다 남을 배려하는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어제도 안 먹겠다는 술 억지로 먹이더니 결국 이 꼴로 만들었잖아요. 솔직히 재수 없죠 뭘.”
“아니 최 과장 말고 술집……. 내 40년 단골집인데…….”
“아 뭐, 어쨌든 지저분한 건 사실이잖아요. 빈대 붙어 온 것도 맞고.”
옷을 다 입은 부장이 방 밖으로 나왔다. 집을 한 번 둘러보더니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고야 건은 잘 좀 부탁드립니다. 전 이 공장장님만 믿어요.”
“벌써 가게? 아침이나 들고 가지.”
“아닙니다. 얼른 병원부터 들렀다가 사우나라도 해야지 찝찝해서 못 살겠어요.”
부장이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나는 긴 숨을 내쉬며 마루에 주저앉았다. 공장장이 점순이를 불렀다. 뒤뜰에서 점순이가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왔다.
“왜 말씀 안 하셨어요?”
내가 물었다. 공장장이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아 빈대, 했다.
“글쎄. 빈대에 주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집에서 나왔다고 꼭 내 빈대라고 할 수는 없지.”
“아무튼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내가 말하자 공장장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주방으로 가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나도 얼른 이불을 개서 한쪽으로 밀어놓고 공장장을 도왔다. 벌써 이 집에서 맞는 세 번째 아침이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장장은 여전히 혼자였고, 냉동된 밥과 국을 꺼내 데운 뒤 직접 상을 차렸다.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다. 첫날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아서 더는 묻지 못했다.
나는 다 차려진 상을 마루로 들고 나갔다. 공장장은 점순이 밥을 챙겨준 뒤 상 앞으로 와서 앉았다. 내가 반찬통 뚜껑을 여는 사이 공장장이 국에 밥을 말아 먹기 시작했다. 잠시 그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 내가 말했다. 부장의 폭탄선언 이후 내내 고민하던 것을.
“저 여기서 한 달만 살면 안 될까요? 월세는 드릴게요.”
딴엔 죽어라 고민하고 내린 결정인데 공장장은 고개 들어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다른 집을 알아봐야 하나? 하지만 한 달 살자고 그러기엔 과정이 너무 번거로웠다.
“저 방 제가 계속 쓸게요. 어차피 비어 있는 방이잖아요.”
그래도 공장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 부장에게 얘기를 못 들은 건가? 나는 설명했다. 한 달 동안 이곳 천안에 있게 됐다, 부장의 뜻이다, 무슨 일이든 다 시켜달라, 힘껏 돕겠다. 기껏 힘들여 다 설명했더니 그제야 공장장이 들었어, 했다.
“월세 낼게요. 한 달만 살게 해주세요. 다른 집 알아볼 시간이 없어서 그래요.”
여전히 묵묵부답. 하, 정말 구질구질하다. 차라리 모텔로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묵겠다 하면 DC도 받을 수 있을 텐데. 아니 그보다 민박이 나으려나? 식사까지 해결하려면 하숙이 낫겠지? 그런데 요즘도 하숙 치는 집이 있나? 이 궁리 저 궁리 다 하는데 또 뒤늦게 공장장이 그러든지, 했다.
“하. 그럼 월세는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너무 세게 부르시면 제가 곤란해요. 출장비가 따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제 돈 들여서 여기 있는 건데.”
“맘대로 해.”
이번엔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답을 미루는 게 혹시 월세를 올리려는 속셈이 아닌지 잠시 의심했었다. 그런 나를 반성한다.
“그럼 부동산에 시세 알아볼게요. 서울보다는 훨씬 싸겠죠? 하, 내 집 두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평택이라고 했나?”
고개도 들지 않고 공장장이 불쑥 물었다. 네? 하고 반문하자 공장장이 또, 원인은 밝혔고? 했다. 그러고도 좀 더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그게 불량 얘기라는 걸 알아챘다.
“아, 트랜스미션 불량! 네, 평택에서 생산했어요. 원인은 아직이죠. 다음 주쯤 조사팀이 움직일 거라는데 언제 밝혀질지는 몰라요. 그런데 왜요?”
공장장은 대꾸하지 않았다. 느리지만 일정한 속도로 묵묵히 밥을 먹었다. 어떻게 보면 묵언수행을 하는 것처럼도 보였고, 깊은 고민에 빠진 것처럼도 보였다.
“회사 창립 이후 불량 부품을 납품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데, 하, 그게 왜 하필 내가 있을 때, 그것도 일본인지.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데 제가 딱 그 짝이에요.”
“…….”
“그런데 정말 원인이 뭘까요? 궁금해 죽겠어요.”
“…….”
“이거다! 하고 딱 밝혀질까요? 전 그랬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전 불량 때문에 정 부장님이 왜 저만 구박하는지 모르겠어요. 스트레스 받아서 저한테 화풀이하는 걸까요?”
“…….”
“그런데 왜 정 부장님한테 3일 휴가 약속 받으셨어요? 상무님이나 이사님께 말해야 되는 거 아닌가…….”
“…….”
“아, 정 부장님이 안 이사님 라인이어서 그런 거예요? 그거 알고 말씀하신 거 맞죠?”
“…….”
“공장장님 제 얘기 듣고 계세요?”
“…….”
(지금까지 쇠귀에 경 읽었나?)
“조용히 할까요?”
그때 공장장이 숟가락질을 멈추더니 뜬금없이 평택이군……, 하고 중얼거렸다. 영문을 몰라서 평택이 왜요? 물었지만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혹시 불량 얘기인가? 내가 조잘조잘 떠들어댈 동안에도 공장장의 머릿속 생각은 여전히 불량에 머물러 있었던 건가?
밥그릇을 깨끗이 비운 점순이가 입을 쩌억, 벌리고는 하품을 하고, 그 순간 공장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장장의 밥그릇도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나는 허겁지겁 입안으로 밥을 욱여넣고 국을 마셨다. 공장장이 또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고는 마당으로 나섰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국을 마신 뒤 서둘러 일어났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공장장을 내 차에 태웠다. 아침 여섯 시 오십 분, 세수도 이도 닦지 못한 채 20분 거리의 공장을 향해 힘껏 액셀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