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당신

by 모카모카

*


“이거 냄새가 나는데요?”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며 최 과장이 말했다.

“난 안 뀌었어.”

“아 참! 술 마시는데 더럽게. 정 부장한테서 냄새가 난다고요.”

“정 부장이 뀌었어? 서울 방귀 냄새를 천안에 앉아서 맡다니 자네 완전 개코네.”

“재미없으니까 이제 그만하세요. 징계위까지 소집하는 거 보면 정 부장이 의도적으로 용 대리를 물 먹이려는 수작 같아요. 공장장님은 이 회사 다니면서 누군가가 징계위에 회부됐다는 소리 들어보셨어요? 난 그런 게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공장장이 소주잔을 비우며 알쏭달쏭한 소리를 했다.

“네? 무슨 뜻이에요?”

최 과장이 물었다.

“누구도 본 적이 없으니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있겠지.”

“그럼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저녁 일곱 시,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지났지만 이야기는 제자리를 맴돌기만 했다. 자문이 필요해서 집으로 가다 말고 두 사람을 찾아 다시 천안으로 내려오기는 했으나 과연 잘한 선택인지 의문이 들었다. 최 과장도, 이 공장장도 징계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30년, 40년씩 다닌 사람들도 금시초문이라는데, 왜, 이제 와서, 나한테만? 소속 위원들은 누구이며, 대체 왜, 입사 3년 차, 고작 대리 하나 때문에 이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야 하는가, 여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공장 말고 본사의 누군가를 찾아가야 하는 걸까. 하지만 누구를? 거기서 막혔다. 내가 아는, 본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정 부장이었고 다음이 박 과장이었다. 현재 정 부장은 일본에, 박 과장은 중국에 있었다.

“먹지만 말고 속 시원하게 말 좀 해보시라고요!”

공장장이 미적대자 안달이 나는지 최 과장이 엉덩이까지 들썩이며 재촉했다.

“정 부장 말이야…… 안 이사 라인이라고 했지?”

공장장이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나는 얼른 네, 하고 대답했다.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래서요?”

최 과장이 퉁명스럽게 묻고는 소주를 마셨다. 시뻘건 주꾸미 볶음도 크게 한 젓가락 집어서 먹었다.

“뭐 그렇다고.”

“지금 놀리는 겁니까?”

“아니 뭐 실세라니까…… 굳이 징계위 소집까지 필요할까 싶어서……. 용 대리 정도야 정 부장 선에서 날려도 될 텐데.”

저 아직 안 날렸는데……, 내가 중얼거렸다.

“그럼 뭡니까, 정 부장이 거짓말한 거예요? 왜요?”

최 과장이 물었다.

“정당성 확보랄까. 그 신입이 친척이라며? 자기 손으로 용 대리 자르는 것처럼 보이는 건 모양새가 안 좋지.”

“저 아직 안 잘렸다니까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정 부장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지. 양 공 횡령했을 때도 없었던 징계위가 대리 하나 해고하자고 사칙, 규율 다 검토해가며 꾸려질 리 없지.”

“저 아직 해고 아니라고요! 감봉이나 정직으로 끝날 수도 있잖아요!”

“아 그럼 뭐야, 징계위가 소집된 적이 없다는 증거만 잡으면 다 해결되는 거 아냐? 안 그래요 공장장님?”

귀가 번쩍 뜨였다. 하지만.

“그 증거는 어떻게 잡고?”

공장장이 찬물을 끼얹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속이 쓰렸지만 나는 그 쓰린 속에다 쓴 소주를 들이붓고 매운 주꾸미를 밀어 넣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그런 나를 최 과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공장장이 내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어, 맞아! 양 공 하니까 생각나네. 거기 장기근속자들 하나씩 자르고 신입으로 채운다던데, 공장장님 들으셨어요?”

공장장이 고개를 들고 최 과장을 보았다.

“평택 말입니다. 거기 고 주임이 얼마 전에 묻더라고요, 우리 사람 안 구하냐고. 왜 그러냐니까 양 공이 장기근속자들 줄줄이 해고하고 있대요. 자기는 그나마 최근에 잘렸다고 그러던데. 노조도 없고, 직원들 보호해줄 장치가 아무것도 없나 봐요. 그러니 양 공 마음대로 사람 자르고 이 지랄이지.”

공장장은 묵묵히 술을 마셨다.

“다들 양 공한테 불만이 많은 모양이던데요. 꼭 잘려서 하는 말은 아니고, 양 공 오고부터 공장 분위기가 이상해졌답니다. 고 주임 말이, 꼭 감시받는 것 같았대요. 작업시간은 늘었는데 직원 복지는 오히려 형편없어졌고. 양 공 오고 제일 먼저 바뀐 게 구내식당 밥하고 반찬이랍니다. 하, 새끼, 쩨쩨하게 하필 먹는 것 갖고 장난질이야.”

말끝에 최 과장이 소주잔을 들었는데 공장장이 못 본 듯 혼자 술을 마셨다. 머쓱해진 최 과장이 허공에 대고 건배, 외치더니 잔을 비웠다.

“하여간 제 버릇 개 못 준다니까. 여기서 횡령하다 걸려서 쫓겨 갔으면 거기서라도 잘할 것이지, 직원 감시가 다 뭐요? 거기다 쫓아내기까지. 숙련공들 죄 쫓아내면 일은 누가 하나.”

내 상심이 너무 커서 최 과장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나와 상관없는 어느 공장 얘기겠거니 했다. 그러다 숙련공을 쫓아냈다는 대목에서 귀가 번쩍 뜨였다. 숙련공을 쫓아내? 양 공? 혹시 평택 공장으로 옮겨 갔다던 그 양 공장장?

“이번에 불량 난 트랜스미션, 평택에서 생산했는데…….”

내가 중얼거렸다. 물론 반응을 기대하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공장장도, 최 과장도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잘 못 들었나?

“이번에 불량 난 트랜스미션, 평택에서 작업했다고요.”

한 번 더 말했다.

“그래서?”

최 과장이 물었다. 어라, 내가 예상한 반응은 이게 아니었는데? 당황한 나는 뭐 그렇다고요……, 얼버무렸다.

“용 대리가 짐작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공장장이 말했다.

“에이, 설마요.”

최 과장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술잔을 비운 뒤 석쇠 위의 주꾸미를 뒤집으며 말을 이었다.

“품질검사 담당도 있을 텐데. 원료 불량일 수도 있잖아요. 이건 뭐 무슨 사건만 터졌다 하면 죄 공장 책임으로 몰아가니…….”

투덜거리는 최 과장을 내버려두고 공장장이 내게 조사는? 하고 물었다. 그러게, 불량 조사는 어떻게 됐을까. 그동안 15만 대 채우는 데만 열 올리느라 조사팀 활동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생각난 김에 목 대리에게 전화를 걸어 결과가 나왔는지를 물었다. 글쎄, 모르겠는데. 목 대리가 말했다. 알 방법이 없겠냐고 하자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중얼거렸다. 하긴 목 대리나 나나 도긴개긴이긴 하다. 내가 통화하는 걸 지켜보던 최 과장이 나섰다. 본사에 근무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여기 상황을 설명한 뒤 결과를 물었다.

“어? 조사팀이 꾸려지긴 했지만 실제 활동은 안 했다고? 이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최 과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수록 내 심장도 덩달아 세차게 뛰었다. 불안의 심장박동이었다. 내가 정말 모든 잘못을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것인가. 불안해서 죽을 것 같았다. 통화하는 최 과장의 입만 쳐다보았다. 몇 분 뒤, 조만간 보자는 말을 끝으로 최 과장이 전화를 끊었고, 이렇게 말했다.

“흐지부지됐다는데요? 현장 조사는 없었답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물음표뿐이었다. 왜? 왜? 왜? 최 과장이 이어서 말했다.

“아, 이 친구는 구매자재부 부장인데, 조사팀 위원이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한두 시간 조사하는 시늉만 하다 갔답니다. 자기 부서 입장에선 다행한 일이긴 했지만 이해가 안 가더라고 하네요. 형식적인 조사에 불과했답니다. 평택 공장은 아예 가보지도 않았고.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아세요? 원인 불명. 그다음 날 조사팀 해체. 이상하죠? 생각할수록 이상하네. 진짜 이상해.”

최 과장이 젓가락으로 안주 접시를 뒤적거리며 이상해, 이상해, 하고 중얼거렸다.

“뒤에 누가 있는 거 같지?”

공장장이 물었지만 최 과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이렇게 말했다.

“하긴 제일 이상한 건 이거죠. 횡령을 했고, 감사에서 걸렸고, 물증도 확실하고, 증언해줄 사람도 있는데,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죠. 형사처분까지도 가능한 죄인데 말입니다. 그저 여기서 저기로 옮겨 앉았을 뿐. 그것도 사건 터진 지 보름 만에.”

“그때도 소문 무성했지?”

“그랬죠. 뒤에 누가 있다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내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공장장님 뒤를 봐줄 정도면 도대체 누구…… 혹시 사장님?”

최 과장이 팔을 쭉 뻗어 공장장에게 건배를 청했다.

“회사 문턱이 많이 낮아진 것 같죠? 예전엔 안 그랬잖아요.”

공장장이 잔을 들더니 건배하는 대신 혼자 홀짝 마셨다.

“똑똑한 친구들 많았지. 지금도 문턱이 낮아졌다기보다는…….”

그러면서 나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럼 이 친구만 예외인 걸까요?”

“제가 왜……요?”

“그래도 사람이 나빠 보이진 않잖아.”

“아, 사장님이 아니신가? 하긴 횡령이 회삿돈 훔치는 건데 사장님이 뒤를 봐주는 건 말이 안 되긴 하죠?”

“젊은 친구가 착하기만 해서 어디다 씁니까. 고문관 되기 십상이지.”

“그렇다고 착하다는 소리는 아니고.”

“계속 제 얘기 하시는 거 맞죠?”

“그래도 눈치는 좀 있네요.”

“어쩌면 강단도 있을지 모르지.”

“계속 저 놀리시는 거 맞죠?”

“하긴 조금 놀라긴 했어요. 한 달 견디는 거 보고.”

“체력도 영 못 쓸 정도는 아니고.”

“곧 회사 잘릴 것 같은데 우리가 알바로 데려다 쓸까요?”

“아직 결과 안 나왔어요.”

“데려다 어디에 쓰려고?”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다잖아요.”

“저 안 잘릴지도 모른다고요.”

“그건 개똥에나 해당되는 말이고.”

“에이, 술 마시는데 더럽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놓고는 공장장과 최 과장의 눈치를 보았다. 공장장이 쯧쯧, 혀를 차더니 말했다.

“청출어람이 따로 없구먼.”

“그렇죠? 제자 삼아야 될까 봐요.”

최 과장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면목이 없어서 나는 말없이 술을 마셨고, 자작으로 술잔을 채웠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내 고민이 너무 깊어서 두 사람을 따라 마음 편히 웃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드는데 술집 통유리 창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초라하고 비루한, 삭은 바나나 같은 얼굴이.


평택이 수상해


속전속결. 부장이 출장에서 돌아온 그날, 나는 징계위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6월 7일부로 용준영은 대리에서 사원으로 강등 후, 서울 본사 영업부 해외영업팀에서 천안 공장 생산부로 인사 발령합니다.

나는 회사로 찾아갔으나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고, 부장을 만나고자 했으나 부장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나를 막으러 온 총무팀 직원들에게 징계위 소속 사람들이 누구냐고, 제발 그것만이라도 알려달라고 사정했지만 단칼에 거부당했다. 어떻게 대면 조사 한 번 없이 징계를 결정할 수가 있냐고 따졌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이곳, 미래모빌스에 입성하기 위해 일본에서 3년 동안 대학원에 다녔다. 교재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코피를 쏟아가며 공부했고, 3년 동안 단 한 번도 푹 자거나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었다. 트랜스미션, 트랜스퍼 같은 자동차 부품에 관해서는 잘 알았으나 내가 아는 건 이 부품들의 기능과 타 회사와의 차별성, 우수성 같은 것들이었고,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는 알았지만 내가 직접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나는 잘리진 않았으나 잘린 것과 마찬가지였고, 회사는 자르진 않았으나 자른 것과 같은 효과를 보았다.

집 안에 틀어박혔다. 보증금 5천에 월세 50. 침대에 누우면 욕실, 거실, 주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원룸. 거실, 주방이라고? 이건 정정하자. 텔레비전과 싱크대로. 며칠 동안 먹지도 않고 잠만 잤다. 자다 깨면 또 자고, 자다 깨면 또 잤다.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다행히 잠은 잘 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며칠이 지났는지도 알지 못했다. 방 안이 밝으면 아 낮이구나, 어두우면 밤이구나, 했다. 가끔 현조 생각이 났지만 만나고 싶은 마음도, 만나러 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내 꿈, 현조와 함께하고 싶었던 꿈, 몇 년째 한강에 두둥실 떠 있던 그 꿈은 이제 태평양까지 떠내려가 있었다.

비몽사몽 잠에 취해 있는데 얼핏 초인종 소리 같은 게 들렸다.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이번엔 또렷하게 들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저러다 가겠지. 몇 초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미친 듯이, 쉴 새 없이 초인종이 울렸다. 내가 집에 있다는 걸 아는 자의 소행이었다. 나를 불러내기 위해 내 고막을 테러하고 있었다. 목 대리일까.

비틀거리며 현관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문손잡이를 잡은 채 엉거주춤하게 서서 고개를 들었다. 어? 내 눈을 의심했다. 문밖에는 목 대리보다 늙고, 목 대리보다 크고, 목 대리보다 거칠게 생긴 사내가 서 있었다. 최 과장이었다. 그가 말했다.

“길 좀 비켜봐.”

나는 옆으로 비켜섰다. 최 과장이 들어왔고, 나는 문을 닫은 뒤 또다시 비틀거리며 침대로 돌아와 앉았다.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보았다. 6월 13일, 금요일이었다. 오후 세 시. 최 과장이 물었다.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출근은 어떡하시고…….”

“전에 약속받았던 3일 휴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고.”

여긴 웬일이세요? 묻는데 몸이고 목 안이고 바짝 메말라서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저 물 좀 주세요. 내가 말했다. 최 과장이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가져다주었다. 나는 물을 마셨다. 입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목으로 흘러내리는 게 더 많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방 안이 더워서 찬물이라도 한 바가지 뒤집어쓰고 싶은 참이었다. 별안간 최 과장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내가 쳐다보자 꼭 쪼그라든 오이지 같아서, 하고 말했다.

“그렇게 흉해 보여요?”

내가 물으니, 오이지한테 흉하다고 하진 않지, 했다. 흉하다는 소리군요 난 오이지가 아니니까, 내가 말하자 최 과장이 잠깐 생각하더니, 오이지는 아니지만 오이지 같은 거지 지금 자네는, 하고 받았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오이지는 아니지만 오이지 같은 거고, 오이지한테 흉하다고 하진 않지만 어쨌든 난 오이지 같은 것일 뿐 진짜 오이지는 아니니까 흉하다는 거? 또 지난번처럼 내가 놀림 받는 상황인가?

“오이지 얘기하니까 오이지 먹고 싶네.”

최 과장이 말했다. 나는 생각을 멈췄다.

“여긴 웬일이세요? 집은 어떻게 아시고?”

“공장장님이 가보래. 무단결근이잖아, 지금 자네.”

“저 그만둘 거예요.”

결심은 섰다. 이후 대책이 문제였다. 금방 새 직장을 잡을 수 있을까. 적지 않은 나이에 짧은 경력, 취업난, 경제 불황. 정상적인 퇴사라면 또 모르겠다. 징계로 인한 퇴사 후 재취업=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코딱지만 하구먼.”

이 심각한 와중에, 원룸을 둘러보며 최 과장이 말했다.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숨은 쉬어져?”

갈수록 가관이었다. 내가 대꾸했다.

“숨을 못 쉬어서 삭은 바나나 같고, 쪼그라든 오이지 같잖아요.”

“응, 그래 보이네. 그럼 숨 쉬러 나가지.”

말뜻을 이해 못 해서 네? 하고 묻자 밥 먹으러 나가자고, 말하며 먼저 원룸을 나섰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는데, 먼저 나간 최 과장이 현관문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고는 어서 나오라고 재촉했다. 최 과장은 성격이 급했고, 배고플 때 특히 난폭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원룸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내가 간신히 반 그릇을 비우는 동안 최 과장은 두 그릇을 해치웠다. 서울 밥도 괜찮네, 중얼거리며. 식당에서 나온 뒤엔 정 부장 집으로 갔다. 회사가 아니고 왜 집이냐니까, 민낯을 보이는 시간, 이라고 알쏭달쏭한 소리를 했다. 최 과장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정 부장을 만난다 하더라도 뭔가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조금도 없었다. 3년 가까이 함께 일한 나를 내치면서도 정 부장은 내게 소명의 기회도, 변명의 기회도, 항의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나를 무력감과 허탈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다섯 시 사십칠 분, 정 부장의 아파트가 있는 삼성동에 도착했다. 나는 또 최 과장이 이끄는 대로 술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술을 마셨고, 안주를 먹었다. 최 과장 혼자 떠들었다. 생각보다 천안 공장도 괜찮다며 육체노동의 짜릿함, 기쁨, 성취감 같은 것들에 대해 역설했다.

“용 사원이 오해할 만은 해.”

부지불식간이었다. 움찔하며, 몸이 먼저 반응했다. 최 과장을 쳐다보았다. 왜? 사원 때문에? 이제 사원이잖아, 최 과장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땐 비상근무였고, 정상근무는 할 만해. 사무실하고 현장, 왔다 갔다 하며 일해도 되고. 공장장님의 특별 배려야.”

여덟 시 삼십 분에 우리는 술집을 나왔다. 아파트 지상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런 다음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정 부장의 차가 있었다. 퇴근했구나. 확실해? 최 과장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정 부장의 차를 모를 수가 있겠나. 회사 지하 주차장에는 정 부장의 지정석이 있었다. 출근할 때마다, 외근에서 돌아올 때마다 가장 먼저 부장의 차부터 확인했다. 차가 주차되어 있으면 쏜살같이 사무실로 튀어 올라갔다.

아파트 공동 현관에서 벨을 눌렀다. 남자 목소리가 누구……, 하다가 들어가고 곧 여자 목소리가 누구세요? 물었다. 최 과장이 신분을 밝힌 뒤 정 부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아직 안 들어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차 있는 거 확인했는데요? 최 과장이 말하자 잠시 후, 오늘 차 안 가져가셨어요, 여자 목소리가 대답했다.

“좀 전에 누구냐고 물은 사람, 정 부장님 맞죠? 다섯 시 사십칠 분에도 여기 왔었는데, 그땐 차가 없었어요. 잠깐만 만나고 갈게요.”

그러자 여자 목소리가, 아닙니다, 그 시간에 내가 차를 이용했어요, 미안합니다, 또박또박, 정중하게 말하고는 인터폰을 끊었다. 그 뒤로는 아무리 벨을 눌러도 반응하지 않았다. 이 인간은 민낯도 두껍네, 최 과장이 투덜거렸다.

“정말로 최 과장님은, 부장을 만나면 뭔가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궁금했다. 이 정도로 순진한 사람이었나, 싶었다.

“아니 뭐…… 내가 해줄 게 없어서…… 정 부장 멱살이라도 한번 틀어잡으려고 했지.”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서 그냥 웃고 말았다. 부탁이나 사정이 아니라 멱살? 역시 최 과장다운 발상이었다. 가지, 최 과장이 나를 이끌었다. 나는 또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최 과장이 나를 데려간 곳은 자동차 수리점이었다.

“골라봐. 난 분홍.”

나는 파랑을 골랐다. 우리는 래커 스프레이 하나씩을 품에 안고 다시 아파트로 향했다. 가는 길에 모자도 하나씩 사서 썼다. 화려한 무늬가 프린팅 된 티셔츠도 하나씩 사서 갈아입었다.

“이런 데서 예술혼을 다 발휘하네. 용 사원 자네 덕분이야.”

“아, 제발(용 사원 소리 좀 안 하면 안 돼요)!”

최 과장이 차 옆문에다 정은신 바보, 라고 쓰는 동안 나는 차 뒤 유리창과 앞 유리창에 정은신 사랑해, 라고 썼다. 최 과장은 또 정은신 신발놈, 개발시려, 일시불할 같은 알 수 없는 단어를 쓰기도 했다. 이제 가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최 과장이 앞장섰다. 우리의 발길이 멈춘 곳은 술집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었다. 많이 걷고 움직였더니 배도 고프고 술도 고팠다. 이번에도 최 과장 혼자 떠들었다. 나이도 어린 놈이 차는 졸라 좋네. 신입 때는 어리바리하더니 어느새 대가리가 컸어. 너무 커서 대가리밖에 안 보이네. 응, 너무 커서 잡을 수도 없어. 대가리 큰 생선이 뭐가 있더라.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새벽에 술집을 나와 택시를 타고 내 원룸으로 돌아왔다. 코딱지만 해서 숨은 쉬어지냐고 묻던 최 과장은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물론 숨 한 번 막히는 일 없이. 나는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 잠들었다.

keyword
이전 09화불온한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