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당신

by 모카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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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다섯 시간 잠자는 것 외에는 오로지 일만 했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 서울의, 회사의, 내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유 없이 불안해졌다. 몸이 떨어져 있으니 정신마저 약해졌다. 얼른 이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것만이 해결책이었다.

나는 코피를 흘렸다. 몸살도 앓았다. 오뉴월에 개도 안 걸린다는 감기에도 걸렸다. 휴지로 한쪽 코를 틀어막고, 기침을 콜록거리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원료 상자를 날랐다. 몸이 좀 더 편한 조립 라인으로 파트를 바꿔주겠다고 최 과장이 말했지만 내가 사양했다. 나는 숙련자가 아니었다. 며칠 지나면 익숙해진다지만 이미 5년 전에, 10년 전에 익숙해진 숙련공들이 수두룩했다. 불량 때문에 이 난리를 치고 있었다. 나 때문에 또 불량이 날까봐 겁이 났다.

공장장의 부탁으로 도우미 아주머니가 식사 때마다 공장으로 죽을 가져왔다(공장장의 집 냉장고에 쌓인 밥과 국, 반찬들이 모두 이 아주머니의 작품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 한동안 나는 죽을 먹었다. 출근 첫날 나는 구내식당 구석에 혼자 뚝 떨어져 앉아 밥을 먹었지만 이튿날에는 공장장이, 그다음 날에는 최 과장이 내 앞에 앉았다. 며칠이 지나자 부장이거나 주임이라는 사람들이 슬그머니 내 앞에, 내 옆에 앉았다. 그다음 날엔 나보다 훨씬 어린 직원들이 나를 둘러싸고 앉아 형, 형, 거리면서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그즈음 나는 ‘어이, 거기!’에서 ‘용 대리!’로 불리기 시작했다.

내가 하도 골골거리니까 최 과장이 홍삼을 박스째 사 와서는 공장장의 집 마루에 던져놓고 갔다. 누군가는 내 주머니에 사탕을 한 움큼 넣어주기도 했다. 힘들 때 하나씩 까먹어. 그는 사탕을 넣어주고는 바람처럼 지나갔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이 말을 알아들었다.

몸이 조금 피곤한 걸 빼고는 모든 게 괜찮았다. 사람들도 좋았고, 공장도 잘 돌아갔다. 구내식당에서 먹는 밥도 맛있었다.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 잠깐씩 하는 축구나 족구도 세상 어느 스포츠보다 재미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트랜스미션 완성품이 공장 내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모든 게 괜찮았지만 안 괜찮은 게 딱 하나 있었다. 잠이었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는데 왜 잠이 오지 않는가. 왜 잠들기 위해 필요 이상의 노력을 쏟아야 하는가.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외롭기도 했다. 이유 없이 불안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몸은 떨어져 있지만 정신은 여전히 회사와 연결돼 있다는 걸 확인해야만 안심이 됐다. 그럴 대상이 누가 있을까. 새벽에 연락할 사람이. 처음엔 목 대리에게 카톡을 보냈다. 두 번에 한 번은 답장이 왔다. 글자에서도 잠기가 묻어났다. 번번이 목 대리의 잠을 방해하는 게 미안했다. 목 대리도 나만큼이나 매일매일 엄청난 양의 업무를 소화하고 있었다. 확인 대상을 바꿔야 했다. 다음 날 회사 눈치 안 보고 한숨 잘 수 있거나 자유롭게 사우나실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으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이제 나는 부장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목표량 달성했습니다, 또는 오늘은 목표량 미달성했습니다, 같은 것들.

내게는 작업 진행상황을 매일 부장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

“야! 지금 시간이 몇 시야!”

화가 난 부장이 전화를 걸어 소리칠 때마다 내가 말했다.

“아, 일이 지금 끝나서…….”

또는,

“주위가 너무 밝아서 새벽인 줄 몰랐어요.”

가끔은 이렇게 말했다.

“낮이고 밤이고 형광등 아래서 사니까 시간 개념이 없어져요.”

그러면 부장도 차마 더 화를 내지 못했다. 아 그렇군, 이라거나 열심히 해, 말하고 말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5월 말, 드디어 트랜스미션 15만 대 추가 생산을 완료했다. 그날 저녁 나는 제일 먼저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부장이 농담인 듯 농담 아닌 듯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거봐, 하면 되잖아.”

순간 속에서 뭔가가 치받고 올라오는 걸 간신히 누르고는 지금 당장 서울로 출발하겠다고 말했다.

“누가? 용 대리 네가?”

네, 내가 대답하자 부장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선적 준비는? 하고 물었다.

“내일 오전 중으로는 부산항으로 출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이, 용 대리, 내 말 잘 들어. 지금 당장 차 불러서 물건 실어. 적재 끝나는 대로 부산항으로 출발해서 내일 오전 열 시까지는 선적 끝내라고 전해.”

“차가 내일 아침에 오기로 했는데요…… 지금 당장은 아무래도…….”

“무조건 당장 달려오게 해야지! 일 한두 번 하나? 못 오겠다고 하면 거래 끊는다고 협박이라도 해!”

“오후에 출항해도 되는데 굳이…….”

마침내 야근이 끝났다며 기뻐하던 공장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들 그동안 잠을 못 자서 눈은 푹 꺼지고, 피부는 거칠하고, 얼굴은 노랬다. 저녁에 회식이나 하지, 공장장이 말하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회식 자체보다는 회식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 때문이었다.

“오전에 출항하면 안 되는 이유도 없잖아. 납품은 빠를수록 좋은 거 몰라?”

“그렇지만…… 그러자면 또 야근을 해야 하는데…… 한 달 내내 야근한 사람들인데…….”

“한 달 야근했는데 거기서 하루를 더 못 하나? 지금 1분 1초가 급박한 때에 거 무슨 배부른 소리야. 용 대리 너도 오늘 올라올 거 없이 거기 며칠 더 남아서 뒤처리하는 거 도와줘.”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천안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한시바삐 서울로 가야 하는 이유만 있었다. 내가 말했다.

“그럼 출장은요…… 저 얼른 올라가서 출장 준비해야 하는데…….”

“출장은 나하고 강 대리가 갈 거야. 넌 신경 안 써도 돼.”

또 한 번 내 귀를 의심했다. 담당자인 나를 두고 누구랑 간다고?

“강…… 대리요? 강 대리가 누군데요?”

“누구긴. 일본 영업 파트 담당자지.”

“그건 저잖아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그러자 부장도 맞받아 소리쳤다.

“네가 일을 똑바로 못하니까 그런 거잖아!”

“제가 무슨 일을 똑바로 못했는데요?”

진짜로 궁금해서 물었다. 나는 딱히 실책을 범한 적이 없었다. 맹세코 말하건대, 나는 거래처 관리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쪽 담당자들과는 안부 메일을 주고받을 정도로 늘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거야? 응? 일본 출장 가는 것까지 네 허락을 받아야 돼? 이게 무슨 경우 없는 짓이야? 너는 닥치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지금 당장 차 불러서 물건 싣고 부산으로 출발해!”

전화가 끊겼다. 나는 아직 내가 무슨 일을 똑바로 못했는지 듣지도 못했는데, 전화가 끊겼다. 멍하니 손 안의 핸드폰만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의자에 주저앉았다. 잠시 넋을 놓고 있는데 언제 사무실로 왔는지 최 과장이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바로 화물차를 보내달라는 얘기였다. 부장의 목소리가 최 과장에게까지 들린 모양이었다.

“어려운 거 당연히 알지요. 내일 아침이랬다가 갑자기 저녁으로 바꾸면 당연히 힘들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부탁하는 거 아니요. 사랑하는 김 대표님, 아니 형님, 다음에 내가 진하게 술 한잔 살 테니까 부탁 좀 들어줘요.”


다른 사람들은 먼저 회식 장소로 가고 공장에는 공장장과 최 과장, 지게차 기사들과 나만 남았다. 자네는 딱히 할 일이 없는데, 최 과장이 말했지만 나는 할 일이 없어도 남아 있겠다고 말했다. 의리를 지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실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떠들썩한 술자리보다는 조용한 공장이 생각이란 걸 하기에 더 적합했다.

강 대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 부서에 강씨 성을 가진 대리는 없었다. 혹시 새로 왔다는 그 직원? 하지만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그 애송이가 고작 입사 한 달 만에 대리 직함을 달고, 더욱이 일본으로 출장을 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목 대리가 말하지 않았던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꼴이라고.

“실전 경험이 없어. 전혀. 인턴도 해본 적이 없대. 완전 애송이야.”

그래서 나는 불안해질 때마다 애써 나를 안심시키지 않았던가.

강 대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부장은 왜 또 나를 천안에 묶어두는 것인가. 부장은 내게 며칠 더 공장에 있으라고 했다. 남아서 뒤처리를 도우라는 것인데, 하지만 대체 무슨 뒤처리? 오늘 밤 물건이 부산항으로 출발하고 나면 더 이상 여기서 내가 할 일은 없었다. 내가 할 일은 서울에, 본사에, 내 책상 위에 있었다. 내 컴퓨터 안에, 내 서류문서 안에, 내 이메일 안에 있었다.

화물차가 도착했다. 7.5톤 윙바디 차량들이 일렬로 서서 공장 안으로 천천히 진입하고 있었다. 최 과장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차량들이 엉키지 않게 정렬시켰다.

나는 목 대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끝날 때까지 받지 않아서 계속 계속 걸었다. 계속 계속 걸어도 아 자네야? 하는 반가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저녁 여덟 시, 어쩌면 술자리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신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데 강 대리는 누구야?’

지게차들이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며 박스들을 싣고 온 뒤 윙바디 배 속으로 밀어 넣었다. 배 속이 다 채워진 윙바디는 미련 없이 공장을 떠났고, 또 다른 윙바디가 창고 앞으로 다가와 텅 빈 배를 내밀었다. 이 모든 과정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졌고, 어느 한 군데 군더더기가 없었다.

30분 뒤 나는 목 대리에게 메시지 하나를 더 보냈다.

‘혹시 강 대리가, 그 애송이야?’

공장장이 다가와 내 옆에 섰다. 초조해하는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런 거 처음 보지? 공장장이 물어서 나는 네, 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장관이네요. 오늘부터 최 과장님, 존경할 것 같아요.”

“금방 실망하지 싶은데.”

공장장이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나는 웃음이 났다. 그래서 큭큭, 소리 내어 웃었고, 웃으니까 기분이 좀 나아지는 듯도 해서 더 열심히 웃었다. 그때 공장장이 물었다. 허를 찌르듯.

“출장은 다른 직원이 간다며?”

웃음이 쏙 들어갔다. 최 과장은 어디서부터 내 통화를 들은 걸까.

“정 부장 참…….”

공장장이 중얼거렸다. 이 얘기는 나중에 술집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한 번 더 나왔다. 밤 열 시, 화물차들을 모두 떠나보낸 후 뒤늦게 합류한 회식 자리에서 최 과장이 거품을 물고 정 부장을 성토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더니, 이 되놈보다도 못한 인간! 한 달 죽어라 일해서 겨우 물량 맞춰놨더니 담당자 제치고 다른 놈을 끼고 출장을 가? 이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인간!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나? 담당자가 여기 있는데 대체 누굴 데려간다는 거야? 뭐 강 대리? 불량이랄 땐 용 대리 보내고 납품할 땐 강 대리? 이 간사한 인간! 벼락 맞아 죽을 인간! 지난번 내려왔을 때 누워서 꼼짝 못하게 다리라도 하나 부러뜨려놨어야 하는 건데!”

지게차 기사들도 최 과장 못지않았다. 나를 대신해 그들이 분노하고, 나를 대신해 그들이 정 부장을 비난하고 욕했다. 그때마다 공장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 과장은 한 달 동안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설명하며 내 노고를 치하했다. 또 공장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들이 있어서 그날 밤 나는 덜 외로울 수 있었다. 덜 우울할 수 있었고, 덜 허전할 수 있었다. 아니, 간혹은 웃기까지 했다. 웃으며 나는 다짐했다.

그가 누구든 결코 내 업무를 뺏기지 않으리라. 나는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날 것이다. 교통 체증을 뚫고 서울로, 회사로 달려갈 것이다. 부장보다 먼저 출근해 잽싸게 출장 준비를 마칠 것이고, 강 대리란 자가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부장에게 말할 것이다.

이제 출발하시죠.


며느리도 모르는 징계위의 존재


눈을 떴다. 방 안이 환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고개를 돌려 창을 보았다.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열한 시 삼십오 분. 어? 나는 튕기듯 일어나 앉았다. 너무 갑작스럽게 움직여서인지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엉금엉금 기어가서 방문을 열었다. 공장장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시계를 보았다. 열한 시 삼십육 분!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아아, 이런 제기랄!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너무 많이 마셨다. 본사 복귀를 축하한다며 최 과장이 자꾸만 술을 권했고, 그에 맞춰 다른 사람들도 마셔라, 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몇 잔 받아 마시다 축하받을 기분이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하자 최 과장이 이번엔 파이팅주라며 또 술을 권했다. 왁자지껄한 술자리가 계속됐는데……, 기억나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안채로 건너가자 마루에 밥상이 차려져 있고,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콩나물국.’

제멋대로 흘려 쓴 글씨체, 그게 다였다. 부엌으로 갔다. 혹시나 해서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맑은 콩나물국이 가득 담겨 있었다. 부엌에 선 채로 콩나물국을 마셨다. 속이 조금 풀렸다. 머리도 좀 덜 아픈 것 같았다. 욕실로 가서 간단히 세수만 한 뒤 곧장 서울로 출발했다.

이미 예상한 일이지만, 부장은 없었다. 사무실에 들르지 않고 집에서 곧장 일본으로 갔다고 했다. 부장도 없는데, 금방 돌아오지도 못하는데, 나는 부장 책상 앞을 떠나지 못했다. 연필꽂이 위로 삐죽 튀어나온 펜촉에 이마라도 박고 싶었다. 한 달 내내 잠 못 자면서 고생해놓고 제일 중요한 마지막 날 늦잠이라니. 나는 나를 죽이고 싶었다.

내가 부장 책상 앞에서 꼼짝 않자 목 대리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내 팔을 잡아끌어 회의 탁자로 데려갔다. 목 대리가 또 내 어깨를 눌러 나를 의자에 앉혔다. 마침 사무실로 들어오던 한 과장이 나를 보고는 다가왔다. 다가오며 말했다.

“용 대리 오랜만이야. 그런데 자네 몰골이 왜 그래?”

목소리가 발랄했다. 이어서 말했다.

“삭은 바나나 같아.”

한 과장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삭았는데, 너무 노래, 한 과장이 말하자 목 대리가 손가락으로 한 과장의 허리를 찔렀다.

“공장에서 일했잖아요, 용 대리. 살 빠져서 그런가 봐요.”

“감독만 한 거 아냐? 일까지 했어? 난 또 휴가 받았다고 부럽다 했더니만.”

“잠자는 시간 빼고는 죽어라 일만 했대요, 주말도 없이.”

“아, 그래?”

흥미가 사라진 듯 한 과장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강 대리가 누구야?”

그제야 내가 물었다. 목 대리가 고갯짓으로 내 자리를 가리켜 보였다. 그러면서 일주일 전에 대리로 승진했다고 소곤거렸다. 입사 한 달도 안 된 애송이를? 내가 소리를 높이자 목 대리가 쉿, 하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장 친척이라는 소문이 있어. 대리로 승진한 건, 영업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설득했다나봐, 이사님을.”

목 대리가 다시 주위를 살피더니 덧붙였다.

“말조심해야 돼. 요즘 사무실 분위기 안 좋아. 낙하산도 그렇고 승진도 그렇고. 대놓고 말은 못 해도 불만들이 많아. 분위기가 이러니까 누구 하나 본보기로 삼으려고 부장이 벼른다는 소문도 돌고. 그래서 다들 조심하는 중이야.”

어쩐지 목 대리의 태도가 지나치게 조심스럽다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다. 옥상으로 갈까? 목 대리가 말해서 우리는 함께 옥상으로 갔다. 볕이 따가운 날이었다. 목 대리가 손으로 햇볕을 가렸다. 나는 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첫 번에 받지 않아서 한 번 더 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알코올 때문인지도. 아직 내 몸속과 머릿속은 술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통화 연결음이 뚝 끊기더니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할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나도 몰랐다, 출장 간 부장에게 감히 전화를 하게 될 줄은. 나는 일단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니 뭐, 오히려 잘됐어. 나도 할 말이 좀 있었는데.”

부장이 말했고, 나는 뭐냐고 물었다. 내 용건보다 부장의 할 말이 더 궁금했다.

“넌 당분간 천안에 있어.”

또 그 소리였다. 도대체 내가 천안에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왜냐고 물으려는데 부장이 덧붙였다.

“징계 수위 결정될 때까지.”

“네? 징계라고요? 누구요? 설마 저요? 왜요?”

질문을 쏟아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계속되고 있었다.

“불량 납품에 대한 책임을 묻는 거지. 사고 후처리도 미흡한 점이 많고. 이건 내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징계위원회의 공통된 견해야. 아무튼 결과 나올 때까지 넌 본사로 출근할 수 없어. 이걸 위반할 시엔 징계가 더 무거워진다는 것만 기억해둬.”

전화가 끊겼다. 나는 아직 물을 게 너무 많은데, 전화가 끊겼다. 다시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계속 계속 걸어도 받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왜 자꾸 전화질이냐고 버럭 화를 냈을 텐데 이번만큼은 조용했다. 화조차 내지 않았다. 이제 내 존재는 화를 낼 가치조차 없어졌는가.

목 대리는 징계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게 징계가 내려질 거라는 것조차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대체 왜? 오히려 자네가 일등공신 아냐? 이 정도 선에서 수습된 게 어디야. 안 그래?”

나는 사무실로 달려 내려갔다. 한 과장도 징계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징계위원회에 소속된 위원들이 누구냐고 물으니까 오히려 우리 회사에 징계위가 있었어? 되물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징계위가 열린 적도, 열렸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박 과장은 오늘도 중국에 출장 중이었고,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사무실 안의 그 누구도 징계위의 존재에 대해 아는 자가 없었다.

나는 내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이 애송이가 한 달 동안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최소한의 대책이라도 세울 수 있었다. 파란 화면이 나타났다. 커서가 깜빡깜빡, 내가 사용할 땐 한 번도 본 적 없는 화면이었다. 기다렸다. 컴퓨터가 느려졌군, 곧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커서가 깜빡이며 무엇인가의 입력을 요구했다. 커서 속도에 맞춰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설마 비밀번호?

“이런 씨…….”

터져 나오려던 욕을 간신히 밀어 넣었다. 목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왜, 안 돼? 물었다.

“비밀번호를 설정해놨어. (이 새끼가) 비밀번호를 설정해놨네.”

“왜?”

“비밀이 많은가 보지. (이 새끼가 구린 것도 많고) 숨길 것도 많은가 보지. 이건 내 컴퓨턴데 (이 새끼가 감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여긴 내 자리고, 이 컴퓨터는 지난 3년 동안 내가 쓰던 건데 (제까짓 게 뭐라고) 어떻게 비밀번호를 설정해놓을 수가 있지?”

목 대리가 내 자리로 건너왔다.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야? 물으며 한 과장도 다가왔다. 나는 먼저 내 자리 전화번호를 입력해보았다. 다음에는 회사 대표전화 번호를 입력했다. 그다음에는 이 겁 없는 애송이의 핸드폰 번호를 네 개씩 나눠 입력했다. 생년월일도 입력해보고 강지성이라는 이름과 집 전화번호도 넣어보았다. 모두 아니었다. 부장의 전화번호도, 이름과 생년월일도 아니었다. 더 이상의 정보는 알 수가 없어서 다음에는 1234, 5678 하는 식으로 입력해보았다. 아무 숫자나 닥치는 대로 적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파란 화면을 뚫지는 못했다.

이 친구 철저하구먼, 한 과장이 중얼거렸고, 전화해서 물어봐, 목 대리가 말했다. 그러는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 상했지만 그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오기가 나서 계속 전화했다. 계속 받지 않았다.

“아, 썅!”

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모두들 숨죽인 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컴퓨터 수리업체가 어디지?”

내가 묻자 목 대리가 긴장한 표정으로 설마 부르려고? 했다.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하는데 목 대리가 손을 내저으며 나를 말렸다. 그러곤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부장 친척이라고 했잖아. 지금 자네가 상대하는 건 강 대리가 아니라 부장이라고.”

“내겐 내 컴퓨터를 열어볼 권리가 있어.”

내가 또박또박 말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억울하게 징계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것보다 내가 없는 사이 내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설정해놓았다는 게 더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났다. 나는 관리팀에 전화를 걸어 컴퓨터 수리업체가 어디인지를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해서 내 이름을 댄 뒤 컴퓨터가 고장 났다고 말했다. 지금 바로 기사 불러드릴게요, 관리팀 직원이 말했다.

몇 분 후 낯선 사내 둘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들은 용준영이 누구냐고 물었고, 누군가가 가리킨 손가락을 따라 곧장 내 자리로 왔다. 당신이 용준영 대리냐고 물어서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누구세요? 이번엔 내가 물었다. 딱 봐도 컴퓨터 수리업체 기사로는 보이지 않았다.

“인사관리팀에서 나왔습니다.”

사내 중 하나가 말했다. 인사관리팀에서 왜……, 묻는데 다른 사내가 내 팔을 잡더니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왜 이러냐고 격렬하게 항의하자 사내가 슬그머니 팔을 놓았다.

“이미 전달받은 걸로 아는데요. 용준영 대리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회사에 출근할 수 없습니다. 자택에서 대기발령 하라는 명입니다. 아, 원한다면 천안으로 출근하는 건 가능합니다.”

첫 번째 사내가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또 두 번째 사내가 내 팔을 잡으려 했다. 나는 그 손을 뿌리쳤다.

“도대체 왜요? 내가 왜 징계위원회에 회부됩니까?”

“이유는 우리도 모릅니다.”

첫 번째 사내가 대답했다.

“그럼 그 징계위원회가 언제 어디서 열리나요? 위원들이 누굽니까?”

첫 번째 사내가 또 모른다고 대답했다.

“위원들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를 쫓아내요?”

이번에는 첫 번째 사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내 얼굴만 쳐다보고 서 있었다. 두 번째 사내가 첫 번째 사내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또 내 팔을 잡으려고 해서 나는 이번엔 그 손을 세게 쳐버렸다. 두 번째 사내가 놀랐는지 움찔하며 뒤로 조금 물러섰다.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첫 번째 사내를 지켜보았다. 얼굴과 이름만 알 뿐 말 한 마디 나눠본 적 없는 사람들까지도.

첫 번째 사내와 나는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며, 그렇게 서 있었다. 두 번째 사내가 안절부절못하는 게 느껴졌지만 첫 번째 사내는 그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나만, 말없이, 바라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뭣들 하세요?”

한 과장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사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눈싸움하시나?”

그러자 사내가 슬쩍 눈을 내리깔더니 내 시선을 피했다.

“용 대리가 이겼네?”

나도 눈을 내리깔아 사내의 시선을 피했다. 그 순간 어마어마한 피곤이 몰려왔다. 머리를 들지도, 눈을 뜨지도, 가만히 서 있지도 못할 만큼 피로했다. 너무 피로해서 머리를 숙이고 싶었고, 눈을 감고 싶었고, 바닥에 눕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는 대신 아직도 커서가 깜빡이는 내 컴퓨터를 한 번 돌아본 다음 발걸음을 옮겨 사무실을 나섰다. 집으로 가자는 생각뿐이었다. 집에 가면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고 바닥에 누울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언제까지나.

목 대리가 따라 나왔다. 벌써 가는 거야? 한 과장이 물었다. 사내들은 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딱 한 번 걷다가 무릎이 꺾여서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목 대리가 팔을 뻗다가 내가 바로 서자 머쓱한 듯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나는 힘겹게 회전문을 통과해 회사 건물 밖으로 나왔다. 목 대리는 회전문 안쪽에 서 있었다. 나는 손을 한 번 흔들어준 뒤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토사구팽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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