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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장과 최 과장은 들어가고, 나는 들어가지 못했다. 나를 떼놓고 두 사람만 평택 공장의 주인, 즉 덕일공업 사장을 만나러 들어갔다. 사장에게 지병이 있다고 했고, 아픈 사람 집에 우르르 몰려가는 건 실례라고 했지만 나는 알아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낄 급이 아니었다. 사원은 사원답게 차에서 기다리는 게 옳았다. 후끈 달아오른 차 안에서 쪄죽든 말든, 그늘 하나 없는 주택가, 언제 나올지 몰라서 카페에도 못 가고, 나를 버리고 가버릴까봐,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들이기에. 이럴 거면 왜 데리고 온 것인지, 운전기사로 부려 먹으려고?
나는 찜통 같은 차 안에 앉아 쉴 새 없이 투덜거렸다. 여기서 기다려. 난 점순이가 아닌데, 여기서 기다려. 기다리라니까 기다리긴 하지만 섭섭함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이럴 거면 집에서 기다리게 놔두지 왜 여기까지 끌고 온단 말인가. 섭씨 38도, 오늘같이 무더운 날에. 게다가 경찰서가 아니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마음 약한 양반들, 차마 경찰서로는 가지 못하고 고작 찾아온다는 곳이 우리 회사도 아니고 남의 회사 사장 집이었다. 도대체 왜 하필 여기란 말인가. 상납 받은 자가 정 부장이라고 확신한다면서, 확신까지 할 때는 뭔가 근거가 있으니까 그랬겠지, 그렇다면 곧장 서울 본사로 쳐들어가야지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여기로 온단 말인가. 한번 칼을 뽑았으면 가차 없이 베어야 하는데, 망설이고 주저하다 유야무야 돼버릴까봐 겁이 났다. 솔직히는 내 복직이 물 건너갈까봐 두려웠다.
차창을 다 열었어도 쉬지 않고 땀이 흘렀다. 간간이 물을 마셨고, 잠깐씩 졸았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하도 따분해서 목 대리의 카톡을 역순으로 다시 읽기도 했다.
‘잘 지내.’
‘나 이번 주에 독일로 출장 가. 당분간 연락 못 할 거야.’
‘그렇군. 자네 뜻대로 해야지 뭐.’
‘그럼 내일은?’
‘나 좀 섭섭해지려고 하는데?’
‘응? 도대체 왜? 이유가 뭐야?’
‘지금 어디쯤이야? 혹시 벌써 도착했어?’
‘나야 물론 눈도장 확실히 찍었지.’
‘오고 있지? 여긴 엄청 붐벼. 이건 마치 장례식장이 아니라 정기 세일 첫날의 백화점 같아.’
목 대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목 대리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우리는 원하는 길이 달랐고, 그 과정에서 목 대리가 상처 받았다. 섭섭해지려고 하는데? 지금까지 목 대리는 단 한 번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연락 줘. 내가 서울로 갈게’ 하고 카톡을 보냈지만 아직 답장을 받지 못했다. 무작정 회사로 찾아가 퇴근하는 목 대리를 납치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뜨거운 차 안에 앉아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공장장과 최 과장이 나왔다. 검은색 철제 대문 안으로 사라진 지 두 시간 만이었다. 표정들이 굳어 있었다. 나는 창을 닫고 에어컨을 켰다. 어디 들어가 있지, 조수석으로 타던 최 과장이 내 몰골을 보고는 혀를 차며 말했다.
“눈에 안 보이면 저 두고 가버릴 거잖아요.”
내가 말하자 뒷좌석의 공장장은 허허, 소리를 내며 웃었고, 최 과장은 뜨악해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머릿속이 어떻게 생겨 먹으면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학습 효과죠. 그동안 저를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 좀 해보세요.”
“우리가 뭘 어떻게 대했는데?”
“스스로 생각해보시라니까요.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가요? 서울?”
“일단 천안으로 가지.”
공장장이 말했다. 최 과장과 내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본사로 안 가고요? 최 과장이 물었고, 사장님 지금 회사에 계신대요, 내가 말했다.
“좀 쉬고.”
공장장이 눈을 감았다. 피곤해 보였다. 마음이 급했지만 일단 천안으로 방향을 잡았다. 가는 동안 최 과장이 철제 대문 안에서 나눈 이야기를 해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덕일 사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양 공장장의 횡령 사실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아무리 회사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놓고 하는 횡령을 아예 모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장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양 공장장은 덕일의 직원이되, 또한 직원 그 이상이었다.
“안 이사 이 새끼가 꽂아 넣었다는 거야.”
양 공장장은 원래 미래모빌스가 부품을 납품하는 자동차 회사의 임원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가로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그런 그를 안 이사가 미래모빌스 천안 공장 공장장으로 모셔 왔다. 횡령이 발각되자 이번엔 덕일공업 공장장으로 꽂아 넣었다는 것이다.
“거절하면 되잖아요.”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
미래모빌스는 덕일공업의 목숨줄을 쥔 포식자였고, 안 이사는 미래모빌스의 사장 못지않은 권력자였다. 거래를 끊겠다, 한마디면 다 통했다. 덕일 사장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는 지점이었다. 시간 뺏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일어서는 공장장에게 사장이 말했다. 답을 구하는 간절한 눈빛으로.
“차라리 폐업을 하는 게 나을까요?”
공장장은 고개를 숙였고, 결국 대답하지 못한 채 집을 나섰다.
“폐업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최 과장에게 물었다.
“직원들은 직장을 잃고, 기계는 쓸모를 잃고 그 자리에서 낡아가겠지. 공장을 얼른 처분 못 하면 사장에게는 빚이 남겠고. 원료 납품했던 중소 업체들은 어음 회수를 못 해서 도산할 수도 있고.”
“아, 폐업한다고 다 끝이 아니네요.”
“또 다른 악몽의 시작일 수도 있겠지.”
결국 모든 것은 미래모빌스, 즉 우리 사장 손에 달렸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최 과장은 왜 한숨을 내쉬는 것인지, 공장장의 얼굴은 왜 또 저렇게 어두운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안 이사랑 정 부장만 잘라버리면 다 해결되는 거잖아요. 감옥으로 보내면 더 좋고. 도대체 뭘 걱정하시는 거예요?”
“글쎄…….”
“설마 사장님까지 관련됐을까 봐서요?”
“그렇지는 않겠지. 하지만 덕일 사정이 나아지리란 보장은 없어. 우리 회사가 지금까지 하청 업체들 대한 걸 보면 뭐 딱히 기대가 안 된달까.”
“증거가 있잖아요. 장부! 그러니까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자니까요.”
“그놈의 경찰서 소리! 불법으로 습득한 건 증거로 채택 안 된다는 것도 몰라? 상식이잖아, 용 사원!”
최 과장이 큰 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나는 움찔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다시 곰곰 생각해보니 뭔가가 많이 억울했다. 액셀을 힘껏 밟으며 투덜거렸다.
“과장님이 장부 훔치자고 하셨잖아요. 증거 효력이 없으면 그럼 애초에 훔치면 안 되는 거였잖아요.”
“안 훔치면 어떡해? 여기 있소, 하고 누가 고이 내준대?”
“경리부에 위장 취업할 수도 있죠. 취업해서 들고 나올 수도 있잖아요.”
“어느 세월에! 온갖 불법이 다 적힌 이런 장부를 신입한테 맡긴대?”
“몰라요! 이제 신고도 못 하면 저는 어떡해요? 제 복직은 어떡하냐고요!”
“하, 이런 어린 놈의 새끼. 끝까지 자기밖에 모르네.”
“당연하죠. 제가 지금 누굴 돌아볼 처지나 되나요? 자기가 살아야 남도 보이는 법이에요!”
“배부른 소리 하네. 네가 지금 당장 죽어? 왜, 공장에서 일하는 건 창피해? 몸 쓰는 일이라서 죽을 만큼 싫다 이거야?”
그때였다. 잔뜩 약이 오른 내가 대거리를 하려고 입을 열려는 찰나 뒷좌석에서 공장장이 부스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 잘 잤다. 어디서 이렇게 새들이 지저귀나. 감미롭고 좋구먼.”
나는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공장장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최 과장도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았다. 날도 더운데 시원한 냉면이나 먹고 들어갈까? 공장장이 말했을 때는 그럼요, 좋지요, 하고 최 과장이 평소답지 않게 얼른 맞장구쳤다. 어디로 가느냐고 내가 묻고, 공장장이 공장 후문 근처의 술집 이름을 댔다. 냉면집으로 안 가고요? 의아해하자 냉면은 술집에서 먹는 게 제맛이지, 라는 믿기 어려운 소리를 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토 달지 않고 공장장의 40년 단골이라는 그 술집으로 향했다. 공장장이 가자면 가야지 별수 있나.
냉면을 다 먹은 뒤 최 과장은 잠시 둘러보고 온다며 공장으로 가고, 술집에는 공장장과 나만 남았다. 별다른 말도 없이 멀뚱멀뚱 마주 앉아 있는데 불현듯 공장장을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두 달도 더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 처지는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그때는 잘릴지도 모른다고 공장장을 위협했고, 지금은 복직을 도와달라며 매달리고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한심한 인생이 다 있는지 눈앞에 공장장만 없다면 한바탕 악을 쓰며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우는 대신 한숨을 쉬었고, 조금 후 또다시 우는 대신 한숨을 쉬었다.
“한잔할래?”
공장장이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알코올의 위로가 간절하긴 했지만 이런 기분으로 술을 마셨다간 공장장 앞에서 실수를 할 것만 같았다. 나를 가만히 쳐다보던 공장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방 쪽으로 가 막걸리 한 병과 잔 하나를 가져왔다. 그러고는 혼자 따라서 마셨다. 주인 여자가 나물 한 접시를 놓고 갔다. 우리는 또 말없이 앉아 있었다. 공장장은 천천히, 조금씩 막걸리를 마셨고, 나는 그런 공장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금방 온다던 최 과장은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술집은 내 숨소리마저 크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아직 퇴근 시간 전이었고, 손님은 공장장과 나 둘뿐이었다. 주인 여자가 주방에서 나와 텔레비전을 켰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더니 마침 뉴스 중인 화면에서 멈춘 뒤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말 한마디 없는 우리를 위해 일부러 텔레비전을 켜준 것일까. 메뉴판이 걸린 벽 위, 지금껏 나는 그 자리에 텔레비전이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너무 낡고 작아서 실제로 시청하는 텔레비전이라기보다 복고 분위기를 내기 위한 인테리어 소품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멍하니 뉴스를 보았다. 한동안 같이 뉴스를 보던 공장장이 여전히 시선은 텔레비전을 향한 채 문득 물었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다고 했던가?”
공장장을 만난 첫날, 그 비슷한 말을 했던 게 생각났다. 하지만 그때는 결혼이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공장장을 설득하기 위해서 한 말이었다. 동정심을 끌어내려고. 그러나 지금 이 말을 들으니 갑자기, 너무나, 결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백배는 더 비참해진 기분으로 네, 하고 대답했다.
“서울에 있겠지?”
공장장이 물어서 나는 또 네, 하고 대답했다.
“서울로 가야겠구먼. 아무래도 주말 부부는 힘들지. 그렇지?”
지금 주말 부부 걱정할 때가 아닌데요.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못했다. 우선은 연애를 해야, 청혼을 해야, 그 청혼이 받아들여져야, 그런 다음 부부가 된 뒤에야 주말 부부든 뭐든 걱정을 할 텐데 나는 아직 이것들 중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뿐인가, 설상가상으로 천안에 다녀간 이후 현조에게서는 연락이 없었고, 나 역시 연락하지 못했다.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공장장이 뉴스를 보는 사이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쓴웃음을 지었다. 나를 비웃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공장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에 가는 것이려니 했다. 설마 술집 통유리 창 아래 쭈그리고 앉아 사장에게 전화를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미래모빌스, 그 높디높은 양반에게. 그것도 찾아갈 테니 시간을 내달라, 가 아니라 당신이 천안으로 내려오라는 전화를. 고개만 돌리면 바로 보였을 것이나 나는 나를 비웃느라 바빠서 공장장이 그런 모험 중이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참 좋으신 분 또는 어린 놈의 새끼
사장이 왔다. 최 과장과 나의 예상을 깨고.
전날 최 과장과 공장장의 대화. 최: 그 전화 한 통에 사장이 정말 여기까지 올 거라고 생각하세요? 공장장: ……. 최: 그러다 찍히면 어쩌시려고요. 공장장: ……. 최: 하긴 일은 평생 할 만큼 했으니 이제 쉬시면 되겠네. 참 자알 하셨어요. 공장장: …….
사장이 직접 천안 공장으로 내려왔다. 조용히 말씀 나누고 싶다는 공장장의 뜻에 따라 다른 임원 대동 없이 운전기사랑 둘만 왔다. 명목은 불시에 공장 시찰하기. 이번이 취임 후 두 번째 방문이라지만 사장의 소개나 직원들과의 인사 자리 같은 건 없었다. 공장장의 안내에 따라 현장을 한 바퀴 둘러본 뒤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최 과장이 뒤를 따랐다. 나는 현장에 남았다. 출근 첫날이었다. 전날 공장장이 말했다.
“내일부터 출근해.”
휴가는 끝났고,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공장장은 출근을 명령했다. 내가 대답을 못 하자 공장장이 다시 말했다.
“일단 출근하고 보자고.”
그제야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직 준비를 하나도 못 했다.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넣기는커녕 채용 공고가 있는지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나는 출장이나 파견이 아닌, 정식 직원으로서 천안 공장에 첫 출근했다. 대리가 아닌 사원으로서. 다소 젊은 라인장들은 여전히 나를 용 대리라고 불렀고, 나이 지긋한 라인장들은 용 군, 하고 불렀다. 용 군. 처음 들었을 땐 어색했지만 몇 번 그렇게 불리자 익숙해졌고, 어딘지 정감이 가기까지 했다. 용 사원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최 과장이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용 사원보다야 뭐.
한창 원료 상자를 나르는데 한 직원이 다가와 사무실에서 나를 찾으니 가보라고 말했다. 짐작되는 바가 있으면서도 왜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직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최 과장님이 전화하셔서 찾으시던데요, 말했다.
사무실로 가는 동안 나는 나를 부른 이유가 내가 기대하고 예상하는 것 때문이기를 간절하게 빌었다. 공장장님이 그러셨잖아. 이 천방지축은 돌려보내야겠다고. 그에 대한 사장의 화답이기를, 당장 어렵다면 가까운 미래에 대한 약속이기를, 그도 아니라면 징계 사유에 대한 질문이기를. 불량 사고 해결의 일등 공신인 자네가 오히려 징계를 받았다지? 이유가 뭔가? 물어주기만 한다면 나는 신속, 정확하게 답할 것이다. 할 말은 많지만 사장의 시간을 고려해 짧고 명확하게 말할 것이다. 핵심만 딱. 사족 같은 것 없이. 망설이거나 주저하는 것도 없이. 부장이 늘 강조했었지. 핵심만 간략하게! 오늘, 드디어 그동안 갈고 닦은 내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기를.
“이 직원이에요?”
사장이 물었다. 나에게가 아니라 공장장에게. 공장장이 그렇다고 대답했고, 최 과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이 창밖 어딘가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 톡, 두드렸다. 내 얼굴을 본 건 딱 한 번, 2초나 될까, 그뿐이었다. 아무도 앉으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 나는 출입문 앞에 서 있었다. 사무실 안의 회의실 겸 휴게실. 원래는 공장장이 쓰는 방이었으나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용의 장소로 만든 곳. 공장장은 이 넓고 좋은 방을 두고 사무실 구석에 책상 하나를 놓고 직원들과 함께 일했다.
나는 여전히 출입문 앞에 서서 사장의 표정 하나하나,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폈다. 마치 거기에 답이 있기라도 하다는 듯.
“됐어요.”
사장이 말했다. 이번에도 내가 아닌 공장장에게였다. 뭐가 됐다는 거지? 궁금해하는 참인데, 공장장이 나를 보더니 나가 봐도 돼, 하고 말했다. 벌써? 탁자 앞에 한 번 앉아보지도 못했는데? 그보다는, 사장과 한마디 말도 못 해봤는데? 최 과장이 나를 보며 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돌아섰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확답이나 약속은커녕 나 자신을 위한 변호 한마디 못 하고서. 내 위치가 고작 여기였구나, 내 존재가치가 고작 이 정도였구나, 하는 것만 새삼 깨닫고서. 공장장, 최 과장과 어울리다 보니 내 위치를 잠시 잊고 있었다. 언감생심, 사장과의 대화라니. 본사에 있을 땐 이렇게 가까이서 대면하는 것조차 꿈도 꾸지 못했으면서.
그날 저녁, 내 기분에는 아랑곳없이 최 과장이 신나서 떠들었다. 절반은 사장에 대한 찬사였고, 절반은 이제 곧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될 안 이사와 양 공장장을 고소해하는 내용이었다.
“저는요? 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제 얘기는 없었어요?”
내 절박한 물음도 들은 체 만 체 했다. 최 과장이 말했다.
“젊으신 분이 융통성이 있으시네요. 그렇죠? 정 부장은 몰라도 안 이사까지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그동안 의지하는 부분이 컸잖아요. 언론에 흘린다는 말 때문인가? 이거 설마 협박으로 받아들이진 않았겠죠? 그나저나 전임 사장님을 꼭 빼닮으셨네. 잘생기셨어. 일도 똑 부러지게 처리하고. 사장님이 왜 일찌감치 일선에서 물러나신 줄 알겠어요. 이런 아들을 두고 뭐 하러 나이 들어서까지 일하겠어요. 안 그래요, 공장장님?”
“이러다 팬클럽이라도 만드시겠어요.”
내 비아냥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귀담아듣는 사람도 없는데 바닥까지 박박 긁어 꿋꿋하게 사장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더니 더는 칭찬거리가 없는지 안 이사 얘기로 넘어갔다.
“젊은 사장이 제 편이라는 것만 믿고 까불더니 꼴좋게 됐어요, 안 이사. 까불어도 어지간히 까불었어야지. 제가 사장인 양 설치더니 한 방에 날아가네요. 양 공 데려올 때부터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니까. 사실 말이 안 되는 인사였잖아요. 이쪽 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를 현장 책임자라고 앉혀놓으니 일이 잘 돌아갈 리가 있나. 모르면 가만히라도 있으면 되는데, 경영혁신이니 구조조정이니 한답시고 설쳐대더니 결국 한 달도 안 돼서 포기했잖아요. 출근도 잘 안 하고. 출근해봤자 아는 것도 없고 하는 일도 없으니 따분했겠지. 아, 그래서 회삿돈에 손을 댔나? 시간은 남아돌고 할 일은 없고 심심하니까.”
그 양 공장장도 곧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 아니,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할지도 몰랐다. 미래모빌스 사장이 안 이사의 해고를 약속했다. 안 이사의 협박에서 벗어나자마자 평택에서는 공장 전체에 대한 자체 감사를 실시할 예정이었다. 그 일을 위해 몰래 빼내온 두 권의 장부도 돌려줄 거라고 했다. 감사 결과 비리가 적발된다면 양 공장장을 횡령, 배임으로 형사고소할 계획이었다. 양 공장장은 체포되어 심문을 받을 테고, 그 과정에서 정 부장이나 안 이사의 뇌물 상납까지 밝혀질지도 몰랐다. 아니, 틀림없이 밝혀질 것이다. 양 공장장이 혼자 죄를 뒤집어쓰지는 않을 테니까.
여기까지가 최 과장에게 전해 들은 내용이었다. 저는요? 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내가 물어도 거기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최 과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공장장이 대신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글쎄…… 일단 조사 결과를 기다려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 정 부장이 부당하게 자네에게 징계를 내렸다고 했더니 트랜스미션 불량 원인 조사를 다시 실시하겠다는구먼. 사실 그 문제 때문에 평택에서도 걱정이 크고. 원인이 거기로 밝혀진다면 손해배상금을 물어내야 할 테니까. 돈이 얽혀서 그런가, 사장이 강경해. 자기 직원이 연루된 횡령이랑 부품 불량은 다른 문제라는 거지. 억울하면 평택 사장이 안 이사든 정 부장이든 고소해서 상납액을 추징하라는 거야. 어쨌거나 그렇게 되면 자네는 자네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겠지.”
이 말은 즉, 정 부장의 비리와 별개로 불량의 원인이 밝혀지기 전에는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었고, 불량의 원인이 영원히 밝혀지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목숨 걸고 평택 공장에 숨어 들어가 장부를 빼내온 대가로 내가 얻은 것이라고는 고작 불량 원인의 재조사뿐이었다. 허탈해서 쓴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젊으신 분의 융통성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최 과장의 안목은 믿을 만한가. 공장장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 쳐서 내 주의를 끌더니 말했다.
“일단 기다려보자고.”
그러는 수밖에 없기는 했다. 내가 건성으로 네, 대답하는데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최 과장이 휘파람을 불며 들어왔다.
나는 여전히 공장으로 출근해 온갖 잡일을 했다.
“월세 필요 없으니까 그냥 여기서 지내. 어차피 비어 있는 방이니.”
공장장의 배려 덕분에 서울과 천안, 이중으로 월세를 내는 일만큼은 피하게 되었다.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면서 나는 서울의 원룸을 그대로 두었다. 그것마저 없으면 너무 허할 것 같았다. 꽤 여러 날이 지났지만 목 대리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나도 전화하지 못했다. 회사로 찾아가 납치라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던 패기는 다 어디로 가고 진작 출장에서 돌아왔으면 어쩌나, 돌아오고서도 내 카톡에 답을 하지 않은 것이면 어쩌나, 겁이 났다.
머릿속의 온갖 걱정과 망상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밤낮 없이 일을 했다. 반장이 돌아다니며 오늘 야근 가능한 사람? 물을 때마다 나는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철야에도 손을 들었고, 특근에도 손을 들었다. 그런 나를 보며 최 과장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철들었나 보네, 용 사원. 지난번엔 기간 안에 목표량 채우느라 어쩔 수 없었지만 요즘엔 굳이 밤까지 샐 필요는 없는데. 드디어 노동의 참맛을 안 거야?”
그러나 공장장의 생각은 달랐다. 며칠 지켜보더니 철야와 특근에서 나를 열외시켰다. 내가 이유를 묻자 공장장이 답했다.
“서울 가서 놀다 오라고. 젊을 때 놀아야지 늙으면 못 놀아. 귀찮아서 못 놀고, 몸 아파서 못 놀고, 술 마시느라고 못 놀아.”
“저 아직 늙으려면 멀었는데요?”
“인생 금방이야.”
인생도 금방인데 하루하루는 왜 이렇게 길기만 한지. 아침에 눈을 뜨면 시간은,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참새처럼 깨금발로 한 발 한 발, 눈치 보며 조심조심, 정오를 향해, 자정을 향해, 또다시 다음 날의 아침 해를 향해 나아갔다.
사장이 다녀간 지 열흘이 지나고 스무 날이 지나도 안 이사와 정 부장이 해고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평택의 양 공장장도 멀쩡했다. 날벼락을 맞은 건 덕일공업 사장뿐이었다. 불량 원인 재조사 때문이었다. 벌써 며칠째 미래모빌스 서울 본사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현장 조사를 한답시고 공장을 점거하고 있다고 했다. 덕일 사장은 수시로 이 공장장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고, 공장장은 그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당신을 믿은 게 잘한 일인지 회의가 들어요. 괜히 벌집을 건드려서 나만 피 보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때마다 공장장은 기다려보자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최 과장이 본사 구매자재부 부장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더욱 암담했다. 안 이사한테 별일 없어? 최 과장이 묻자 부장이 오히려 안 이사님이 왜? 반문했다는 것이다. 징계위가 열리거나 해고 명단이 발표되기는커녕 회사는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하고 평화롭다고 했다. 하다못해 조사위조차 꾸려지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융통성까지 갖춘 젊으신 분을 철석같이 믿던 최 과장이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한 것이. 어? 이상한데? 이게 아닌데? 일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툭하면 그렇게 중얼거렸다. 눈에 띄게 얼굴이 어두워졌고, 내게 농담을 하거나 장난을 거는 일도 없어졌다.
서른 날이 지나고 마흔 날이 지났다. 마흔 하고 하루가 되는 날, 덕일공업 사장이 그렇게 우려하던 일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평택 공장에 폭탄이 떨어졌다. 미래모빌스가 트랜스미션 불량 원인으로 평택 공장의 노후된 기계설비와 미숙련 인력을 지목, 이것이 고강도 정품에 못 미치는 저강도 불량품 생산으로 이어졌다고 결론 내리면서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불량품 생산으로 미래모빌스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책임을 물어 향후 계약 파기를 통보했다.
그날, 덕일공업 강 사장이 천안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공장장의 멱살을 잡았다.
“당신들 회사가 어떤 곳인지 당신들만 몰랐던 거야!”
강 사장이 멱살을 잡은 채 흔들자 공장장은 낙엽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차라리 폐업 신고를 한다고 했잖아! 그랬으면 호미로 막았을 것을 이제 가래로도 못 막게 생겼어! 차라리 가만히나 있지 해결도 못해줄 거면서 왜 나선 거야! 왜!”
뒤늦게 최 과장이 달려와 공장장에게서 강 사장을 뜯어냈다. 멍하니 넋을 놓고 두 사람을 지켜보던 사무실 안의 직원들도 그제야 강 사장의 팔을 잡았다.
“이 공장장님 잘못이 아니잖아요! 아시면서 거!”
흥분한 최 과장이 소리쳤고, 강 사장은 의자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공장장이 물 한 잔을 떠 와 강 사장에게 건넸다. 강 사장의 얼굴빛이 파리했다. 직원들은 우왕좌왕하다 급한 대로 강 사장에게 부채질을 해주었다. 강 사장이 땀을 심하게 흘리고 있었다.
“이제 결단을 내리세요.”
망설이는 공장장을 최 과장이 몰아붙였다.
“사장만 믿고 있다간 안 된다는 걸 아셨잖아요. 이러다 우리 다 죽는다고요. 여기 강 사장님 좀 보세요. 공장 망하게 생겼어요. 아니, 공장만 망하면 다행이게요. 그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어떻게 다 갚느냐고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 불량 난 걸로 아주 돈벌이를 하려고 들어, 이 새끼들.”
강 사장은 불안과 간절함이 오가는 눈빛으로 공장장과 최 과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방법이…… 있습니까?”
“언론에 터뜨려야죠. 원청 업체 임원이 주도한 하청 업체 횡령사건! 아마 파장이 꽤 클걸요? 보도 시작되면 검찰이 나서는 거야 시간문제고요.”
“그럼 저는, 아니 우리 덕일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최 과장도 대답하지 못했다. 언론에 보도되고 검찰이 조사를 시작하면 분명 미래모빌스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미래모빌스 사장이 가장 우려하는 것. 그러나 덕일공업이 감당해야 할 손해배상금은 그대로 남게 된다. 공장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었다.
“일단 피해자로 인식이 되면…… 미래모빌스도 사회적 시선이 있으니까…… 어쩌면 탕감해줄지도 모르고…….”
최 과장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러자 강 사장이 자포자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동정표만 받고 끝나겠군요. 최 과장님이라고 했죠? 아직도 당신네들 사장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모양이네요. 아버지보다 더한 아들이야. 도둑을 피했다 했더니 강도를 만났어. 흐흐. 내가 죽으면 빚도 같이 없어지겠죠? 어차피 늙고 병들어서 오래 살지도 못할 몸인데.”
그때 공장장이 사무실 구석, 자기 자리로 가더니 조용히 수화기를 들었다. 사장님과 통화하고 싶은데, 말하자 이유도 묻지 않고 비서가 곧장 사장실로 연결해주었다. 사장 역시 기다리고 있었던 듯 다시 한 번 천안으로 내려오라는 공장장의 요구에 흔쾌히 응했다. 목소리도 발랄하게.
“그러죠 뭐. 바쁘신 분 대신 제가 내려가야죠. 아 이번엔 거기 공장 말고 시내로 나오세요. 제가 맛있는 거 대접할게요. 덕분에 큰돈 생기게 됐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