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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Mar 21. 2023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

국수


눈이 많이 와서 /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 사냥을 하고 /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 이것은 오는 것이다 /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 하로밤 뽀오햔 흰 김 속에 접시귀 쇠기름부리 뿌우현 부엌에 /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 아배 앞에 그 어른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 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 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 또 그 집 등새기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 먼 녯적 큰아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굴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詩  <국수>




어린 시절 밖에서 놀 때면, 숨바꼭질을 좋아했다. 물론 술래보다는 숨는 것을 즐겼다. 나만의 공간, 누구도 찾지 못할 곳에 들어앉아 술래가 찾을 때까지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는 것이 행복했다.


숨바꼭질을 하던 시절을 보낸 우리 동네엔 국수공장이 있었다. 공장이라고는 했지만 가내수공업 정도의 조그만 공장이었는데 맑은 날이면 늘 그곳에 방금 뽑아낸 국수가락들이 마치 레이스 커튼처럼 펼쳐져있곤 했다.



머리만 숨기고 꽁지는 보란 듯이 내어놓는 닭처럼 나는 그곳에 숨는 것을  좋아했다. 국수 커튼 사이에 들어가 바깥을 보면 가느다란 국수가락들의 틈사이로 쏟아져 들어온 햇살이 반짝반짝 부서지고, 촉촉한 국수가락이 뿜어내는 밀가루 냄새가 엄마의 코티분 냄새처럼 향긋하게 느껴졌다. 그곳에 숨는 날엔 영락없이 술래에게 걸리고 말았지만, 나는 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그곳에 숨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밥보다 국수를 좋아한다. 특히나 뽀얀 멸치국물에 갖가지 고명을 얹은 잔치국수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백석의 시 <국수>는 내가 좋아하는 그 국수가 아니라, 냉면을 말한다. 평안도 사람인 백석이 그토록 찬양해 마지않는 평양냉면. 동치미국과 꿩을 삶아 낸 육수를 섞은 그 냉면.



나는 백석을 좋아해서 수업할 때는 더 심혈을 기울인다. 그런데 <국수>나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등을 수업할 때는 더러 눈가가 촉촉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수능 때문에 이 고운 시들을 수학 공식처럼 설명해야 하는 것이 서글프고 한숨이 나온다. 백석의 시는 이렇게 문제를 풀기 위해 읽혀야 하는 시들이 아닌데...



국수가락보다 더 연하고 섬세한 백석의 시 <국수>를 모티프로 한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라는 동화책을 읽다가 코끝이 찡해졌다. 동화 속에서 시인 아저씨에게 국수를 대접하는 아이는 물론 어린 백석이지만, 늘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도 시인에게 국수 한 그릇 대접하고 싶었다. 동화 속의 어린 서술자가 내 마음 같아서 국수틀에서 내려오는 국수가락처럼 연민이 쏟아져 내렸다. 


고향을 잃은 백석은 어떤 심정으로 그가 좋아하는 국수를 먹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고향이 일본에게 유린되고 마을 공동체는 사라져 버리고, 해방 후에도 마음의 고향과 다르게 변하는 고향 같지 않은 고향을 그저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백석은 유년시절의, 그 여우가 나오는 골짜기에 살았던  그 기억만을 평생 부여잡고 살지 않았을까.(월남하자는 권유에도 거절한 이유가 가족들과 여우골에 살던 많은 친지들이 고초를 겪을 것이 염려되어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젊은 날 경성의 여인들에게 상사병을 앓게 한 모던보이 백석과 북한에서 시를 쓰지 않고 노동으로 생을 이어가던 백석

                     

사람은 여기 없었지만 숫한 염문과 화제가 전설처럼 내여오던 시인 백석. 고향이 이북이라서 그곳에 있었을 뿐인데 한때는 월북작가로 낙인이 찍혀 우리는 그를 수십 년 동안 잊고 살았고, 해금이 된 후에나 우리에게 돌아왔다.


백석은 북한에서 동화책을 쓰고 러시아문학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자신의 시를 쓰지는 않았다.(북을 찬양하는 시를 강요받아 몇 편 쓴 것으로 보이지만 백석은 찬양시에도 서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다가 숙청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이용악이 북에서도 왕성하게 시 창작을 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를 쓰는 대신에 농사를 지었는데 농사엔 소질이 없었던지 영면에 들 때까지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나마 북에서도 백석 시의 아름다움을 부인할 수 없었는지, 특별히 북한 당국에게 고초를 겪지는 않았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는 시인의 심정을 내가 어찌 짐작할 수 있겠는가 만은, 아마도 영혼 없이 살아가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다. 범과 늑대가 득시글거리는 세상에서 백석은 한 마리의 슬픈 사슴이었다. 그를 짝사랑한 시인 노천명의 시구처럼...



#백석 #국수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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