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했다. 동생과 둘이 살기에 각자의 역할 분담이 정확하게 나뉘어 있어 청소는 내 영역이 아니다. 그런데 어제오늘 틈만 나면 정리를 했다. 동생은 자못 불안한가 보다. 자기가 해 놓은 청소 상태가 맘에 들지 않아서 저러나 싶어 눈치를 본다.
나는 할 일이 많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딴짓을 한다. 어제는 주방을 집중적으로, 오늘은 오전 내내 서재를 정리했다. 중구난방 끼어있는 책들을 정리하고, 책상 주변을 말끔하게 해 놓았다.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 젠장, 노트북을 연다.
1월에만 수필집 여섯 권을 증정받았다. 소위 피눈물을 흘리며 썼을,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수필가들의 노고를 사람들은 돈과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그저 알음알음 아는 작가들이나 같은 문예지로 등단한 작가들에게 인사로 한 권씩 보내주신다. 물론 나도 돈을 주고 사지는 않으려니 하다가도, 그 수고로움을 알기에 목차를 훑어본다. 눈길을 잡는 제목이 있으면 한두 편 읽기도 한다. 내가 책을 내도 이런 대접을 받을 것을 알기에 나는 수필집을 내지 않는다.
요즘 너도나도 책을 내고 싶어 한다. 특히 에세이는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다.사람들이 읽지 않을 글을 책으로엮어서 세상에 내놓는 것이 작가에겐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을 때가 많다. 읽히지 않을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안다면 책을 내는데 주저해야 마땅한데, 마치 인생의 훈장처럼 책들을 쏟아 낸다. 모두 다 베스트셀러를 꿈꿨을까? 나 같은 겁쟁이는 그 상처를 어찌 다독이는지 묻고 싶어 진다.
며칠 전 통화한 문예지 편집장은 한동안 수필을 내놓지 않은 내게, 그동안 많이 써서 모아놓았을 거라 짐작한다. 진짜 안 쓰고 놀았는데 믿지 않는 눈치다. 청탁받은 글이 몇 편인데, 벌써 한 달 가까이 딴짓을 했다. 시간이 없다. 이제 진짜 쓰고, 탈고해야 한다. 아무도 관심 없고 읽지 않을 글을 그래도 써야 한다. 글 쓰는 행위가 그저 내 마음을 갈고닦는 것뿐일지라도,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그래 그거다. 그냥, 써야 하니까 쓰는 거다. 그것이 쓰는 生의 운명이다.
쓰면서 나를 들여다보고 마음을 닦고 또 들여다보고 닦다 보면 어느 날 불현듯 깨달음이 오겠지. 쓰지 않아도 살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