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짐을 싸기 시작한 겨울의 등짝을 떠밀며, 새 옷 걸어놓고 목이 빠져라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계절 중에서 유독 봄에게만 '새'라는 말을 붙이며 봄이 가진 명랑함과 희망찬 이미지에 더해 초록이 번져가는 시각적 충만감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봄이 더 쓸쓸한 계절인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밝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괴로운 계절, 저 혼자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고 해사한 햇살 아래 서 있는 기분, 해서 자살자가 가장 많은 계절이 봄이라지 않던가. 조금씩 길어지고 넓어지는 밝음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오는 봄에 걷기 좋은 제주에 가기 위해 비행기며 호텔을 예약하다가 낯선 기분에 사로잡혔다. 인생이란 한 치 앞도 모르는 거라고들 말하는데, 내일이 온다는 보장을 아무도 해준 바 없는데,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약속하며 설레기도 한다. 그리고 내일이라고 하는 가까운 미래가 당연히 올 것이라는 주문을 자율 신경에 맡기고 살아간다.
나를 영원히 사랑하겠다던 남자와 헤어진 후 또 몇 명의 남자를 만났고 그때마다 내일을 그려봤지만 언제나 고방 유리를 씌운 듯 앞은 잘 보이지 않았고, 기다리던 미래는 찾아오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일랑 그대로 던져두고 그저 하루하루 그날그날 눈앞만 보며 살자살자 그랬고, 지금 여기다. 그런데 요즘 들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오후 3시쯤의 삼거리에서 서성이는 기분이다. 방금까지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무슨 일이었는지 까먹은 기분이랄까.
물고기자리다. 물에 살아야 하는 물고기가 땅에 올라와 살다 보니 현실 너머 무의식 세계에 살고 있기 쉽다는 그 별자리. 그래서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별자리 운세를 신봉하는 친구에게 자주 들었다. 그다지 별자리를 신용하진 않지만, 태어난 계절이 주는 기운과 왠지 그렇게 될 것 같은 자기 암시 때문이라고 해도 아예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래전 영화 <물고기자리>는 전형적인 물고기자리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신문이나 잡지 한구석의 별자리 운세가 감성적인 여성들의 시선을 당기듯이, 영화 역시 여성 관객을 타깃으로 했음이 화면 곳곳에서 보이는 영화였다. 어느 한적한 주택가에서 '새드 무비'라는 이름의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는 여자 애련. 혼자 하는 사랑,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종류의 사랑이기에 "간절하게 바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동석의 주문에 차곡차곡 감정을 쌓아가며 애련에게 마음을 주었다. 새드 무비란 이름에서 그 사랑이 화답받지 못하리란 것을 예고하고 있었지만 슬펐다.
애련의 사랑이 오월의 신부가 꿈꾸는 핑크빛이 아니었듯, 우리의 삶이 그렇게 감동적이고 드라마틱하지도 설레지도 않는다는 것을 안다. 겨울 뒷자락에서의 봄처럼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은 그저 내일이란 이름 앞에서만 아름답고 설렌다.
전국 도로지도를 펼쳐놓고 7번 국도 따위를 찾아보던 기억, 휘파람을 불며 짐을 꾸리던 기억, 신라의 푸른 길은 아직도 철썩이는 파도 옆에 길게 누워 있을 텐데. 그때 아베 코보를 읽으며 마리아 칼라스를 따라 부르던 싱그러운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푸석이는 얼굴로 남아 여전히 혼자 걷고 있을 내일을 생각한다.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는 물고기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