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 달아난다. 아니 글을 사과 깎듯이 도려낸다. 멍이 든 부분과 홈이 파진 부분과 자라면서 생긴 상처를 잘라내니 한 조각밖에 남지 않았다. 내놓을 게 없다. 원래 이만한 크기였나. 내 앞에 놓인 것보다 두 배쯤은 컸는데 이걸 누구에게 먹으라고 내놓을까.
당나라 시인 가도가 말을 타고 가던 중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 승퇴월하문(僧推月下門):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들고, 중이 달밤에 문을 민다'라는 시구를 지어 놓고, '민다의 퇴(推)'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고민하다가 '두드린다의 고(敲)'를 떠올렸다. 둘 중 어느 것으로 해야 할지 생각하다 경윤(재상)이 행차하는 길을 막고 있는 것도 몰랐다. 길을 가던 경윤이 가도의 이야기를 듣고 '推'보다는 '敲'가 낫겠다고 조언해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중이 달밤에 문을 두드린다'라고 시를 완성했다. 그 경윤이 당대의 대문호 한유였다. 시의 결구를 놓고 고민하는 시인과 대문호와의 만남도 멋있지만 그때부터 문장을 다듬는 행위와는 상관없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숙명과도 같은 '퇴고'라는 좋은 말을 얻게 되었다.
퇴고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는 첨가와, 주제와 상관없는 문장을 빼는 삭제가 기본이 된다. 또 문장을 이동시켜 보는 것도 방법이고, 글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사전을 옆에 두고 적절한 유의어로 어휘를 바꿔보는 것도 좋다. 퇴고를 할 때는 구성이나 문맥, 표현과 문법 등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기보다는 한 번에 하나씩 고쳐나가는 것이 수월하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퇴고는 많이 하면 할수록 좋고, 퇴고와 퇴고 사이에 시간적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 하루 이틀에 몰아서 퇴고를 하는 것보다 한번 퇴고 후 일주일이나 열흘정도 시간을 두면서 고쳐나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청탁받은 문예지에 보낼 수필 원고를 퇴고하다가 멈춘 지 며칠 되었다. 문예지 편집장들은 청탁 메일에 '옥고'라는 표현을 한결같이 쓴다. 그 옥고(?)를 퇴고하다 보니 이야기하고 싶은 문장은 딱 한 문장이다. 여기에 살을 붙이고 붙여 한 편을 써놓고 나니 모두 군살 같아서 보기가 싫어진다. 글 쓰는 사람의 운명이라 생각하다가도 참 가혹하다 여겨진다. 이럴 때면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싶다가도 머릿속에 넘쳐나는 생각들을 쓰지 않으면 매일 두통에 시달릴 것 같아 꾸역꾸역 문장을 뱉어 낸다.
중국의 문장가 구양수가 한 말을 떠 올린다. 좋은 글을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 보라."
어떤 수필가는 모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딱 열 편만 쓴다면 펜을 놓아도 좋다고 했지만, 나는 정말 좋은 글 딱 한 편만 남기고 절필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그 한편을 위해서 읽고 읽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쓰고 또 쓴다. 그리고 '퇴고'를 만들어 낸 가도처럼 고민하고 고민한다.
달아나려는 문장, 아니 사과처럼 잘리고 도려낸 문장들을 그러모은다. 다시 밀고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