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씻으려고 욕실에 들어가다가 미끄러졌다.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 연출될 뻔했으나 그 짧은 순간에도 뒤로 넘어지면 안 될 것 같기에 몸을 반대로 접어 욕실바닥에게 석고대죄를 청했다. 엉덩방아 대신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내 몸이 이렇게나 마음먹은 대로 유연하게 움직이는지 몰랐다. 무릎에 커다랗게 멍이 들고 허벅지 근육통과 허리의 통증까지 생겼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난 한 번도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 적이 없었다. 그게 가능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기억으로는 없다. 넘어지지 않는 아이란, 삶이 두렵거나 세상이 두려운 존재라는 것을 먼저 안 아이가 아닐까.
'착한 아이 신드롬'이란 것이 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살아남으려는 방어기제로부터 시작된다. 주로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요즘 새삼스레 내가 가졌던 엄마에 대한 마음을 생각한다. 엄마는 고작 마흔아홉 해를 살고 돌아가셨다. 엄마의 마음을 알기엔 함께 한 시간이 너무도 짧았지만, 비단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내게 엄마의 마음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일하는 엄마였기에 유아기 때는 조부모님 댁이나 외갓집을 떠돌아야 했고, 가끔 만나는 엄마와는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는지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크기에 비해 내게 돌아오는 마음은 반밖에 차지 않아 늘 허기가 졌다. 그 외로움 덕분에 나는 생각이 많고 차분하며 발을 딛기 전에 앞을 찬찬히 살피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 때의 그 서운함이 남았던지 성장하면서도 엄마와는 마음을 터 놓는 사이가 되질 않았다.
아빠와 달리 엄마는 내게 사랑을 주는데 왜 그리 인색했을까. 그저 표현에 서툰 사람이었나 싶다가도 두 살 터울의 동생에겐 그렇게 대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엄마는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그렇게 생긴 편견과 상처로 인해 울타리를 치고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가지 않았고, 그저 멀리 지나치기만 했었다. 한 그루에서 핀 꽃들도 저마다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어느 날 문득 떠올리고 나서야 외로웠을지도 모를 엄마를 짐작한다.
스스로 착한 아이가 되기로 작정하지 않고 그저 다른 아이들처럼 수시로 무릎이 깨졌다면 엄마는 내게 사랑을 듬뿍 발라줬을까. 지금 내 곁에 있었더라면 엄마의 저녁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엄마의 무릎 베고 나비잠 잘 수 있었을까.
퍼렇게 멍든 무릎을 찜질하면서, 혹여 넘어져 무릎이 깨질까 조심조심 세상을 걷던 아이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