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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Jan 04. 2022

아버지의 밥상

빠다비빔밤

더운 김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갓 지은 밥이면 더 좋다. 티 하나 없는 새하얀 구름 같은 쌀밥을 조금 넓은 그릇에 솔솔 퍼 담아 도넛 모양으로 가운데를 비워 둔다. 그 빈 공간에 버터를 한 숟가락 듬뿍 떠 넣는다. 버터가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기 시작하면 밥알이 으깨지지 않도록 숟가락으로 살살 비빈다. 밥에 버터의 기름기가 반지레 돌면 달걀을 깨트려 노른자만 골라 넣고 다시 슬슬 비비다가 진간장을 한 숟가락 넣는다. 기분 내키면 검은깨를 조금 뿌려도 좋다.

식욕을 돋우는 노란 색감은 달걀 때문이다. 한 숟갈 떠서 넣을 때 입 속을 꽉 채우는 포근함은 쌀밥의 공이다. 혀에 닿는 순간 맛봉오리들이 번쩍 일어서는 짭조름함은 간장의 혁명이며, 미각세포를 간질이는 고소함은 버터의 은총이다. 늘 조연에 머무는 별것 아닌 이 네 가지의 재료들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덕분에 입안에는 평화가 깃든다.


며칠 전부터 목이 칼칼하고 등 쪽에서부터 으슬으슬 추워지더니 기어이 반갑잖은 손님이 찾아든다. 코과 편도선 사이가 회초리를 맞은 듯 얼얼하고 따끔거린다. 이제 웬만큼 감기에 대한 내공이 쌓이다 보니 요란 떨며 병원에 가는 것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감기는 첫사랑과의 이별처럼 앓을 만큼 앓아야 낫는다. 그저 잘 먹고 푹 쉬는 것이 제일이다. 그런데 쉬는 거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문제는 ‘잘 먹고’다. 코가 막히고 입안이 바삭바삭 말라, 산해진미를 가져다 놓는다 한들 전혀 식욕이 일지 않는다. 그래도 무언가로 속은 채워야 하기에 불린 쌀로 흰 죽을 쑨다. 생일날 자기 손으로 끓여먹는 미역국처럼 아픈 사람이 직접 쒀서 먹는 죽 맛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누구나 머리에 저장했던 기억들을 그대로 재생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미각과 머리, 혹은 후각과 머리가 함께 저장하는 경우에는 웬만한 컴퓨터의 기억장치를 능가할 때가 있다. 예닐곱 살쯤이었나. 심한 독감에 걸려 물도 제대로 삼키기 어려울 만큼 아팠다.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던 복숭아 간주메를 들이밀어도 맛이 없었으니 밥을 못 먹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엄마는 흰 죽을 끓여주었지만 어린 나이에 밍밍한 쌀죽은 이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것이었다. 번번이 엄마의 죽이 퇴짜를 맞아 나가자 아버지가 담요로 나를 둘둘 말아 앉혀놓고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리연구가들처럼 설명을 덧붙여 가며 밥을 비벼 주셨다. 아버지와 나는 그것을 ‘빠다 비빔밥’이라고 불렀다.  

 

음식의 맛은 만드는 자와 먹는 자의 협치로 완성된다. 아버지가 밥을 비벼 한 술 떠 넣어주면 제비 새끼처럼 입을 벌리고 쏙쏙 받아먹었다. 그 재미로 아플 때마다 빠다 비빔밥을 해 달라고 했다. 아니 그것이 먹고 싶어서 부러 아팠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소박하고 볼품없는 음식이기에 누구에게 소개한 적은 없지만, 아버지의 비빔밥은 순전히 나만의 추억을 위한 음식이다.


음식에는 만드는 사람의 성격이 담기기 마련이다. 어머니가 일용의 양식을 만드는 실용주의였다면, 아버지는 맛있는 별식을 만들어 즐기는 낭만주의자였다.  어린 시절 나의 간사스러운 구미는 어머니의 부침개보다 아버지의 도넛이, 감잣국보다는 감자튀김이 더 좋았고 죽보다는 수프가 맛있었다. 어머니의 전통 한식과 아버지의 퓨전요리 대결에서 나는 번번이 아버지의 손을 들어 드렸다. 커피를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기호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나도 일찌감치 카페인의 노예가 되고 말았지만 분명 아버지의 음식은 엄마의 그것과 달랐다. 끼니때마다 일방적으로 받아먹기만 하는 어머니의 밥상에 비해 아버지와 함께 만들고 먹는 행위가 맛보다 더 좋았던 게 아닐까 싶다.


아버지는 음식에 대한 예의 또한 아시는 분이 이었다. 어떤 이유에서도 밥알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으셨고 밥을 참 맛있게 드셨다. 아버지의 밥상이라고 뭐 특별한 것이 올라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생선 한 토막에 된장국과 나물, 그리고 밥물 위에 새우젓 넣어 뽀얗게 찐 계란찜이 전부라도 어찌나 맛나게 잡수셨던지,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면 같이 먹고 싶어서 기다리곤 했다.


사람이 태어나서 수많은 음식을 먹게 되지만 결국엔 어렸을 때 먹어봤던 맛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것은 맛 때문이 아니라 다시 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일 게다. 나처럼 아버지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훗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딴딴한 추억 보따리 하나 보듬고 살아간다.

  

한 술 뜨다 만 죽 그릇을 옆으로 밀쳐놓고 버터에 밥을 비빈다. 고소한 버터 냄새가 퍼지자 파블로프의 개처럼 저절로 군침이 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한 술 떠 입에 넣는다. 눈 내린 하얀 들판에 달빛이 비칠 때처럼 온몸이 충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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