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이러니

오 헨리 단편선 / 민음사

by 마루

"워싱턴 어빙이 단편소설을 전설화하였고, 에드거 앨런 포가 그것을 표준화하였며, 너새니얼 호손이 그것을 우화화하였고, 브렛하트가 그것을 지역화하였다면, 오 헨리는 그것을 인간화하였다" - 앨폰소 스미스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를 '아이러니'라고 한다. 여기까지 어찌어찌 살아오다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마치 왕가위감독의 스텝프린팅 기법처럼 만나고 스치고 지나왔다. 가끔 오래 머무르기도 했고. 나를 스쳐 지나간 그 사람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기억이 떠 오르는 존재가 있을 때 혼자 조용히 안녕을 빌어주곤 한다.


여기 무척이나 많은 인간상과 다양한 소재를 폭넓게 다룬 작가가 있다. 바로 오 헨리다.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 일상의 경험을 이렇게 다양한 인물로 단편화한 작가는 오 헨리가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앨런 포'나 '모파상'보다 나는 이 불우했던 휴머니스트 오 헨리에게 더 끌린다.


내가 어린 시절 빠져있던 오 헨리를 요즘 다시 읽으면서, 어렸을 때 읽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때는 인생이 아이러니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순수한 존재였다 나도. 그래서 그때는, 그저 소설 속의 이야기려니 하며 읽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인생의 짠맛, 쓴맛, 단맛을 두루 경험한 후라서 그런지 오 헨리표의 아이러니와 그 바탕의 휴머니즘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가 경험하는 평범하고 진부한 일상이 어떻게 오 헨리의 손을 거치면 '아!'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반전으로 거듭날까 싶어 경이롭기도 하다.


오 헨리의 인물들은 해학을 띠고 있다. 그래서 우리와도 결이 맞는 작가인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생의 겉모습과 실제 모습, 삶에서 기대하는 것과 우리가 결국 가질 수 있는 것의 차이가 클 때 골계미, 즉 해학이 생긴다. 해학은 일종의 웃음으로 눈물 닦기인데, 오 헨리 작품의 '아이러니'를 경험하다 보면 내가 거쳐온 그 많은 아이러니는 귀여운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지점에서 나는 '아! 그래도 내 인생은 좀 괜찮게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그것이 오 헨리의 묘미다.


돈을 벌려고 꼬마를 납치했다가 이 꼬마한테 호되게 당하는 어른들 이야기를 그린 ‘붉은 추장의 몸값’, 눈물과 미소가 함께 터지는 사랑 이야기 ‘식탁을 찾아온 봄’, 열심히 살기로 결심한 그 순간 본래의 부랑자의 삶으로 돌아가게 되는 아이러니 '경찰과 찬송가', 짝사랑에 빠진 여자의 고백이 상대에게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마녀의 빵', 이십 년 후에 만나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려다 잘못 살아온 인생의 대가를 치르게 된 '이십 년 후에' 등은 인생의 아이러니를 눈물 나게 보여준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마지막 잎새'의 아이러니는 휴머니즘의 정점인 작품들이라 우리에게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고, 그 외의 작품들도 크고 작은 반전과 색다른 소재들이 적절하게 녹아져 있다.


누구나 세상을 끌고 갈 주인공을 꿈꾸지만, 오 헨리의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우리 모두 소시민이다. 인생과의 싸움에서 매번 지기만 하거나 상처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사회적 지위나 신분, 지적 능력, 물질적 풍요에 관계없이 오 헨리는 인간에 대해 깊은 동정과 이해와 애정을 보여준다. 가끔 독자들에게 설교를 늘어놓기도 하지만, 그가 겪었던 불우한 개인사가 낳은 노파심이라고 이해할 만하다.


오 헨리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사회적 약자나 낙오자들에게 관심을 가졌던 작가다. 그의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심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단편들은 언제 어느 때라도 곁에 두고 읽어봐야 하는 인생의 동반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동반자가 꽤 많다)


헤밍웨이가 그랬던가 '불행한 어린 시절이야말로 작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육이다'라고. 내 어린 시절의 외로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나는 조금 더 질 좋은 글을 써야 한다. 아니면 오 헨리처럼 인생의 아이러니를 조금 더 겪어야만 할 텐가.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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