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 김애란
"말 그대로 나의 외부. 나와 타인, 나와 세상의 간극을 나타내는 말로 썼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세상 또는 타인으로부터 느끼는 온도 차, 시차 때문에 가슴에 결로(結露)와 얼룩이 생기는 이야기들을 묶었다." 제목 '바깥은 여름'에 대한 의미를 묻자 작가 김애란은 이렇게 답했다.
바깥, 은, 여름. 이 단순한 단어의 나열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단어가 가진 의미 그 이상이다. 그것을 우리는 함축적이라 부른다. 시어 보다 더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 문장으로 '상실'을 말하는 작품이 김애란의 소설집『바깥은 여름』이다. 어느 곳의 바깥일까, 안에는 누가 있을까, 왜 하필 여름인가, 많은 질문을 던지는 제목이다.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유리볼 안에서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그런."이란 문장에서('풍경의 쓸모' P.156) 제목을 가져왔다. 보통은 제일 애착하거나 인기 있었던 단편을 표제작으로 삼는 것에 비해서 소설 속의 문장에서 제목을 가져온 것이 김애란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전작들에 비해서 김애란도 시간을 통과했구나 싶었다. 독자도 흐르듯이 소설가의 시간도 흘러가는 것일 테니까. (물론 이 소설이 출간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김애란은 더더 성숙하고 내밀해졌다. 이 작품 이후 장편인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먼저 읽었었다.)
김애란 소설의 장점은 문장이 완성형이란 것에 있다. 단어, 조사, 어미, 쉼표 등 문장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적재적소에 들어앉아 있다. 조금이라도 단어의 자리를 옮기면 김애란의 문장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 같다. 김애란의 손을 떠난 문장들은 자율주행으로 독자들에게 저절로 다가온다. 슬픈데 슬프게 그리지 않는 것이 김애란의 장기지만, 그렇다고 독자도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계절은 여름이지만 겨울 속에 있는 사람들을 바깥에서 바라보기란 그리 녹록지 않다. 그래서 한 번에 읽어 낼 수 없는 소설들이다.
며칠에 단편 하나씩 읽었다. 대부분 김애란의 작품들이 완벽한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했다면, 이 소설들은 상황에서 시작한다. '입동'은 아내가 도배를 하자고 하고, '노찬성과 에반'은 아버지를 여의었다로 시작하는 것처럼. 던져진 상황이 저절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느낌이 읽는 내내 들었다.
『바깥은 여름』은 모두 상실의 이야기였다. 상실이라는 겨울로 들어가기에 안성맞춤인 계절이 여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저소득층·청년 백수·비정규직 지식인·다문화 가정이란 사회적 배경아래, 자식의 죽음, 가족의 죽음, 연인과의 이별, 한 순간의 실수로 유일한 친구와의 비극적 이별, 언어의 상실 등 모두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린다.
그중 현실에서 가끔 일어나는 이야기, 가장 가슴 아픈 이별을 다룬 작품이 「입동」이다. 어린이집 차에 치이는 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부. 그들은 슬픔이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지만, 사고 합의금으로 대출을 갚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한다. 슬픔을 이겨내보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꽃매(지나친 관심과 몰이해)에 평생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닫는다. 아들 영우가 사고를 당하기 전 가족의 행복이 집약된 공간이 올리브색 벽면과 그 앞의 4인용 식탁. 영우가 죽은 후 무신경하게 어린이집에서 인사차 보내온 복분자 액이 튄 올리브색 벽지를 새로 바르면서 슬픔 속에서 빠져나오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아들의 부재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큰 빈자리가 될 뿐이다. '입동'은 겨울을 알리는 절기이다. 이들 부부는 이제부터 늘 겨울만이 계속되는 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 여름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안녕을 빌 뿐이고, 우리의 눈가에는 결로가 생긴다.
아내가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봤다. 텅 빈 눈동자가 불 꺼진 형광등처럼 어두웠다. 아내가 한손으로 영우가 직접 쓴, 아니 쓰다 만 이름을 어루만졌다. 순간 어디선가 영우가 다다다다 뛰어와 두 팔로 내 다리를 감싸 안을 것 같았다.(...) 부엌 바닥으로 굵은 눈물방울이 툭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 손에서 벽지를 놓을 수 없어, 그렇다고 놓지 않을 수도 없어 두 팔을 든 채 벌서듯 서 있었다. 물먹은 풀이 내 몸에서 나오는 고름처럼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한파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두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입동」 P.37
머릿속에 난데없이 '용서'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입밖에 내지 않았다. 찬성이 선 데가 길이 아닌 살얼음판이라도 되는 양 어디선가 쩍쩍 금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찬성과 에반」 P.81
도화는 노량진이라는 낱말을 발음한 순간 목울대에 묵직한 게 올라오는 걸 느꼈다. 단어 하나에 여러 기억이 섞여 뒤엉키는 걸 알았다.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안에서 여러 번의 봄과 겨울을 난, 한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연인의 젊은 얼굴이 떠올랐다. 「건너편」 P.117
앞으로도 지구가 꾸는 이 예쁜 꿈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죽은 뒤 한번 더 죽으면서도 나는, 그 눈부신 장면으로부터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침묵의 미래」 P.146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 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풍경의 쓸모」 P.173
애가 어릴 땐 집 현관문을 닫으면 바깥세상과 자연스레 단절됐는데, 지금은 그 '바깥'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하는 모양이다. -「가리는 손」 P.212
어린아이 입에 고기 넣어주듯, 시리가 인간의 언어를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말한 거였다.
ㅡ제가 이해하는 삶이란 슬픔과 아름다움 사이의 모든 것이랍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P.237
김애란 소설은 무언가를 상실하면서 무엇인가를 얻는 소설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이 소설들은 예기치 않게 상실을 겪고 그 속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바깥은 여름이지만 그들은 겨울 속에서 살아간다. 그 온도차로 생기는 슬픔, 그것은 어쩌면 안과 밖의 온도차를 줄일 수 있는 우리의 뜨듯한 시선의 표현일 게다.
인생은 견뎌야 한다. 겨울만이 계속된다고 해도 웅크리고 서 있으면 얼어 죽는다. 눈바람을 맞으면서도 우리가 걷고 또 걸어야 하는 이유다. 바깥에서 지켜보는 우리도 그들과 매한가지로 힘에 겹다.
지금 바깥은, 여름.
조그만 창으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우리 몸 곳곳에, 물방울이 맺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