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성장해서 나무가 된다

느티나무 재판관 / 고은주

by 마루

헌법재판관 문형배 이야기


“우리가 평소에 의식하지 않고 살았던 헌법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커다란 결정을 내려 주기 위해 묵묵히 서 있는 커다란 나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마을에나 한 그루쯤 존재하는 오래된 느티나무처럼, 법이란 어쩌면 늘 이렇게 조용히 곁에 있어 주는 마음이 아닌가 싶다.” 『느티나무 재판관』 P.95



아직도 동화를 사서 읽는다. 삶의 한 복판에서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어린 시절 내가 그랬던 것처럼 동화책을 읽는다. 동화 속의 세상은 동화일 뿐이라고 치부하면 안 된다. 동화 속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해답과 문제 해결의 힌트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느티나무 재판관』은 문형배 재판관의 실화를 토대로 한 동화다. 작가의 말 중에서 “소년은 성장하고, 어른은 길을 낸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꽂혔다. 내가 가르치는 중,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좀 더 쉽게 지난겨울부터 봄까지의 상황을 이해하게 해주고 싶어서 이 따끈한 동화를 내가 먼저 읽었다. 내가 그런 주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판단은 아이들의 몫이니) 내게 배우는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골라 읽게 해주는 것이 먼저 길을 나선 어른으로서 오솔길이라도 내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고등학생 녀석들은 가끔 투덜대기도 하지만, 내가 읽히고 쓰게 한 서평으로 학교 수행평가를 받기도 하니까 그리 억울해하지는 않는다.


문형배 재판관의 어린 시절 동네 친구의 시선으로 ‘소년 형배와 판사가 된 후의 형배’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두 소년의 애틋한 우정, 그리고 관찰자의 시종일관 형배를 걱정하는 따뜻한 시선이 보는 내내 뭉클하다.

1980년의 봄, 하동 북천역은 또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문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역에서 표를 끊고 개찰구로 나서자 눈앞에 철길이 딴 세상처럼 펼쳐졌다. 기차에 올라타는 순간, 기차가 움직이는 순간, 기차가 하동을 벗어나 진주로 향하는 순간, 마침내 진주에 도착한 순간…… 그 모든 순간이 새로운 세상처럼 다가왔다. P.48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뻔한 형배는 아버지가 얻어 온 교복을 입고, 친구와 함께 꿈에 부풀어 진주행 기차를 탄다. 어렵게 진학한 고등학교를 가난 때문에 자퇴해야 하는 형배가 담임 선생님의 주선으로 김장하 선생을 알게 되는 장면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밖에 모리는 아아.”(책밖에 모르는 아이) 어린 시절 형배를 기억하는 어르신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달빛 아래서 ‘장 발장’을 읽고, 낮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서 교과서를 읽던 가난했지만 꿈을 버리지 않았던 소년 형배의 성장기가 배경이지만, 거기엔 법이란 무엇이며, 정의란 어떤 것인가라는, 간단하고 명료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렇다. 법과 정의가 어려울 것이 무에 있을까? 그것을 지키고 누려야 하는 우리 누구도 이해하기 쉬운 것이 ‘법과 정의’가 아닐까 싶다. 이 동화처럼.


작가는 문형배 재판관을 직접 취재한 것이 아니고 주변의 사람들 즉 고향 마을의 어르신들, 하동 지역 관계자들 소년 문형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하며 동화를 썼다. 그래서 이 동화는 위인전도 평전도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따뜻한 상상력이 발휘된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다.

나는 느티나무에 대해서 안다. 여름의 무성한 잎새들과 겨울의 멋진 가지들에서 대해서 안다. 봄의 여린 잎새들은 가을에 아름다운 낙엽이 된다. 우리는 지금 그 계절의 어디쯤에 와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이제 우리가 만나게 될 느티나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의 신록을 보여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P. 124

형배의 친구는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탄핵 선고의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는 형배를 TV로 조용히 지켜본다. 그 친구 마음이 지난 몇 개월간 우리의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문형배 재판관은 지금도 가끔 자신의 블로그에 책 추천 글을 올리는데, 자신을 '부산에서 자작나무'라고 표현한다. 그는 어느새 우리 사회의 커다란 나무가 된 사람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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