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이제는 집으로 간다 / 강성민 외 75명

by 마루
있는 그대로 쓰는 일은 사람을 정직하게 한다. (...) 새롭게 다시 시작하면 된다. 방황할 수도 있고, 잘못할 수도 있고, 이탈할 수도 있다. 그러다 자기 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 도종환 시인, 추천사 中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통지표 가정 통신란에 ‘발표력이 부족합니다’라는 말이 매번 적혀있었을 정도로 남들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나에겐 곤욕이었다. 특히 중학교 2학년 때였나 최악의 사건. 5분 스피츠라는 교내 행사에 글을 응모했다가 반대표로 뽑혔는데, 전교생들이 보는 앞에서 원고를 읽다가 제한 시간이 1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경고 벨 소리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결국 끝맺음도 못한 채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나는 창피함과 속상함에 혼자 교실로 달려와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병(?)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우연찮은 일이 계기였다. 음악 수업 시간, 정말 어쩌다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 나. 떨리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그 뒤에 돌아온 선생님의 칭찬과 친구들의 박수 소리.

변화는 이렇듯 순간적으로 찾아온다. 정말 사소한 계기였지만 그 이후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때의 음악 시간이 가져다준 용기와 자신감, 나도 무언가를 잘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이후 내 삶에 작은 지표가 되었음은 당연하다.


숨겨 두었던 감정을 우물 밖으로 꺼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 감정이 언어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얘들아, 아프면 무엇이든 종이 위에 써라. 심심할 때도 쓰고 소리 지르고 싶을 때도 써라. 우리는 너희를 응원하는 독자다. - 안도현 시인, 추천사 中


우연한 계기에 시를 쓰게 된 어린 청춘들이 있다. 이들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이제는 집으로 간다』를 울고 웃으며 읽었다. 시퍼렇게 멍들지 않고서 ‘청춘’이라 부를 수 있나. 눈물과 좌절까지도 희망으로 남는 시기인데. 그러나 이 시집을 낸 어린 시인들은 남다르다. 모두 소년법정에 선 아이들이다. 시설처분(소년원)이 내려지는 아이들도 있지만, 경미한 사안일 경우는 사회 내 처분을 받는다. 가정으로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돌아가기 전 6개월 정도 청소년회복센터에서 생활하는데, 그곳에 있는 청소년들의 시를 모은 시집이다.


나는 오늘 위탁을 퇴소하고 심리 재판을 하러 간다
난 나갈 줄 알았고, 드디어 집 간다는 생각을 하고 수갑을 차고
호송차에서 내려서 수갑을 풀고 재판을 받았다
판사님이 센터 6개월 가라 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난 모든 것이 후회되었다
이제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을 거다
- 심민찬 <심리>


그렇게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다시 왔다
위탁에
센터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한 달 만에 다시 왔다
위탁에
이번 위탁이 벌써 세 번째라 소년원에 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왔다
센터에
잘 생활하다가 나가자
사회로
- 천현서 <위탁>


우연한 계기에 평산책방을 찾은 경남 청소년 회복센터 청소년들이 박성우 시인의 <난, 빨강>이라는 시집을 매개로 만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로 썼다. 책방지기 문재인 전 대통령께서 '이 솔직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자' 제안했고 한 권의 시집으로 묶였다. 비록 많은 돈은 아닐지라도 책을 판매하고 인세를 아이들에게 돌려준다면 어쩌면 이 아이들에게 결여되었을 성취감도 느껴볼 수 있겠다. 그것이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 친구, 불우한 가정,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등의 진솔한 이야기를 읽노라면 쿡쿡 웃음이 나다가도 코끝이 찡해져 온다. 자기를 반성하고 사회가 자신을 받아 줄 것인가라는 두려움도 담겨있다. 또 시를 써 보라니까 그냥 썼다는 아이도 있다. 모두가 꾸밈이 없다. 이 모두를 좋은 어른으로 성장시키는데 우리가 힘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상담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분들, 그리고 부모님들이 꼭 읽었으면 싶다.

요즘 청소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일에 울고 웃는지 궁금하다면 이 시집이 도움이 되리라.

이 아이들이 과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마도 돌아갈 수 없는 아이도, 집에서 다시 나오는 아이도, 집에게 내쫓긴 아이도 있을 게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은 집을 나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간절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어른'이라는 무게가 참 무겁다는 생각이 든다.


시는 만들기 어렵다
시라는 것은 짧지만
좋은 의미가 담긴 말이다
시는 읽는 건 쉽지만
시는 만들기 어렵다
시는 많은 고민과
생각이 필요하다
나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
- 강성민 <시는 뭘까>


눈은 떠졌고
숨은 쉬어졌고
그게 다다
-윤혜정 <가만히>


이런 것이 시가 아닐까. 이렇게 솔직한 시를 나는 알지 못한다. 이 어린 청춘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희망과 용기와 자신감을 찾게 되리라 감히 장담해 본다. 일흔여섯 명의 청년 시인들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빌며, 답시를 써 주고 싶은데 재주가 없는 나이기에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구를 빌려 본다.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


울고

웃고

수구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運命들이 모두 다 안기어 드는 소리,


큰놈에겐 큰눈물 자죽, 작은놈에겐 작은 웃음 흔적,

큰 이얘기 작은 이얘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그리며 안기어 오는 소리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산도 산도 청산도 안끼어 드는 소리.


–서정주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中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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