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 은희경
오랜만에 책장에서 은희경을 찾아 먼지를 턴다. 나는 은희경의 소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 불편함은 역설적이다. 내가 착해서 불편한 것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내어선 안 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다. 신경숙이나 전경린을 읽고 난 후의 주인공에 대한 애련함 때문에 밤을 지새우거나, 그녀들의 시난고난한 삶에 몰입되어 오랫동안 나를 찾지 못하는 것과는 반대다. 은희경을 읽고 나면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책을 덮는 순간 나의 문제와 마주하고 앉는다.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나의 문제들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잠시 현재의 나를 잊고자 독서에 빠져들었다가 정면으로 나의 문제와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은희경을 읽지 않았다. 그녀의 책들은 내 책장에서 맨 구석에 가지런히 꽂혀있다.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릴케 ‘두이노의 비가’中)
릴케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표제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외도로 세상에 뜻하지 않게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얼굴을 몇 번밖에 보지 못한 채 성장한다. 아버지는 그가 자라는 동안 두어 번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 준다. 초라한 파카를 입은 뚱뚱한 소년이 처음 아버지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간 날 마주 앉은 아버지 뒤로 눈에 띄는 그림 한 점이 걸려있었다. 그 그림을 눈여겨보는 아이에게 아버지는 그림 속의 여자는 비너스라고 알려 준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걸작으로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크로노스가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한 후 남근을 바다에 던지자 남근 주위로 바다 거품이 모였고, 키프로스 섬 근해의 거품 속에서 비너스가 탄생하였다는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그림 왼쪽에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그의 연인 클로리스의 모습이 보인다. 제피로스는 비너스를 향해 바람을 불어 그녀를 키프로스 섬의 해안으로 이끌고 있다. 오른쪽은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옷을 들고 비너스를 맞이한다.
<비너스의 탄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 중의 하나다. 당대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림 속의 비너스는 아름다움의 표본으로 여기고 있다. 작은 얼굴에 길쭉길쭉한 팔과 다리는 8등신을 넘어 거의 10등신에 가까운 신체비율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왜 하필 비너스의 탄생이었을까. 선택받지 못한 채, 아버지의 사랑 없이 태어난 주인공은 이미 태어난 순간부터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난 존재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 심리가 작용한 것일까 그는 나날이 뚱보가 되어갔다. 어른이 된 후에도 그는 거의 백 킬로그램이 넘는 지방 덩이들을 몸속에 가지고 있다. 그 그림을 본 후부터 그에게 아름다움의 대명사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였다.
어느 날 친구 집에서 그는 또 한 명의 비너스를 만난다. 그것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였다.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지역에서 발견된 이 조각상은 비너스란 이름이 무색할 만큼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지나치게 큰 가슴과 엉덩이는 우스꽝스럽게도 보인다. 하지만 원시시대는 지금과는 미의 기준부터가 다르다. 배부르게 먹고 등 따숩게 자고 자손을 많이 낳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었던 만큼 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야 말로 최고의 미의 여신이 아니겠는가.
주인공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만난 이후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원시의 시간을 느낀다. 목욕탕 저울 앞에서 그는 이따금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떠 올린다.
어른이 된 후에도 그의 몸에는 큰 변화가 없다. 어느 날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그는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보티첼리의 비너스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탄수화물을 먹지 않는 다이어트를 실행해 옮겨 20킬로그램 가까이 몸무게를 줄였을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는 아버지의 빈소에 찾아가지만 문상객들에게 밀려 식당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빨간 기름이 먹음직스럽게 떠 있는 국밥을 대접받는다. 그는 게걸스럽게 두 그릇을 먹어 치운다. 그간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워했던 그를 탄수화물이 위로한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자 서둘러 식당을 나오면서 식사시간이라 텅 빈 아버지의 빈소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만난 상주는 그를 알아보고 아버지가 생전에 그에게 주려고 했던 물건을 전해 준다. 그것은 신문지로 포장된 그림 한 점이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아버지는 뚱뚱하고 못생긴 아들을 기억하며 떠났다. 다이어트 후 몰라보게 달라진 그를 보지도 못한 채.... 그는 아름다움이 자신을 멸시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자신이 보티첼리의 비너스에 가까웠다면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이태리 식당에서 지금까지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세계를 보았듯이 아버지 역시 자신이 알던 것과는 다른 아들을 보았어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뚱뚱한 아이의 기억을 갖고 떠나버렸다. 비너스를 보며 나는 생각했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나를 멸시한다고.”
‘아름답다'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다. '아름'이 동사 '알다'에 접사 '-음'과 접미사 '-답다'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단어라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 15세기 문헌에서 찾아보면 '아답다'로 나타난다. 아답다의 아는 명사로 나(私)의 뜻이다. 따라서 '아름답다'는 '나답다'의 어원을 가지고 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타고난 축복이자 현대인들의 소망이다. 반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비록 겉모습은 작고 볼품없지만 그 안에는 까마득히 먼 시대의 간절하고 진실된 마음이 깃들어 있다. 사냥도 잘하고 아이도 많이 낳을 수 있는 튼튼한 여자 보다, 눈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황금비율의 몸을 선호하는 세상이지만 이것은 비단, 사람의 외적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는 아닐 게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인가? 역시 식상하지만 진실된 마음이 중요하다. 진실된 마음이 깃든 우리의 몸은 각자 모두 아름답다. 시대마다 변하는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말고 아름다움의 어원처럼 나답게 사는 것이 정답이다. 그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당신을 잃지 말라고.
이 가을, 나도 아름답고 싶다. 그리고 먼지를 턴 김에 은희경 몇 편을 더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