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다시 두 달 전으로, 여긴 에투인 연구소.
"와, 이거 정신 나갔네..."
옆에서 같은 소식을 확인한 경호원이 묻는다.
"어... 어, 이거... 아이고, 소장님, 큰일입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늘 그래왔듯 인류를 지켜야지."
종말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날, 본픽시오 인코이브는 웃었다. 그녀는 제정신이 아닌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끝난 듯, 어쩌면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본픽시오는 약 4개월 전 마키스가 자신을 찾아와, 했던 말을 되뇐다.
'그래서 마키스가 날 찾아와서 그런 말들을 했던 거였어.
그때 9개월이라고 했으니... 얼추 시간이 들어맞는군. 확인 할 필요도 없이 이건 진짜야.'
사실을 빠르게 받아들인 본픽시오는 창문을 통해 4번 연구실을 바라본다.
'그간의 내 연구와 실험이 빛을 발할 때가 왔어.'
그녀는 진행 중인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그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출입 불가한 구역인 4번 연구소로 향했다. 그녀는 경호원에게 자신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나,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을 명령하고, 4번 연구소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도착하여 6번 연구실에 들어가 스위치를 올린다. 넓은 공간이 드러나고, 원통형 벽면에 빼곡히 설치되어 있는 투명한 서랍들을 따라 정리되어 있는 정체 모를 샘플들과 그것들에 대한 데이터 파일철이 눈에 들어온다.
"정말이지, 오랜만이야..."
추억을 회상하듯 손끝으로 벽면을 쓸어가며 기억을 음미한다. 본픽시오는 옆에 있는 이동식 사다리를 끌고 와서, 5번째 줄에 중간 칸에 위치한 샘플의 인체실험 기록과 데이터를 찬찬히 읽어본다.
다 읽은 뒤에 미소를 짓고는, 샘플을 들고 사다리에서 내려와 바닥에 주저앉은 후, 깊게 심호흡한다. 주사기로 샘플의 액체를 빨아들이더니 자신의 왼쪽 팔의 정맥에 주입한다. 이내 전신에 경련이 일기 시작하고,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내다가, 기절하듯 픽 쓰러졌는데, 누워서도 경련과 신음은 끊이지 않았다.
몇십분이 지나자, 뒤집혀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돌아오고, 서서히 깨어나 앉는다.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이마 뒤로 쓸어 넘기고 입가에 흘린 침을 닦으며 호탕하게 웃는다. 다시 이동식 사다리를 옮기며, 이번에는 여섯 가지의 데이터를 확인하고 여섯 가지의 샘플을 들고 내려온다. 그렇게 하루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이 하루 동안 그녀는 얼마나 많은 목숨을 걸었던 걸까.
6번 연구실의 벽면에 놓여져 있던 샘플들 중 남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바닥에는 깨진 수십 개의 유리병 조각들과 수십 개의 주사기가, 이 넓은 공간의 바닥을 메울 만큼의 많은 양의 피와 땀이 흥건했으며, 피와 땀의 웅덩이 위에는 여러 색의 머리카락들과 빠진 손톱과 발톱들이 떠다녔고, 벽에 기댄 채 죽은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의 몰골을 한 본픽시오가 시체처럼 앉아 있었다.
다만, 그녀의 입은 웃고 있었다.
이제까지 개발은 끝냈지만, 불안정성으로 사용을 미뤄왔던 여러 약품들을 확률에 의존하며 하나씩 하나씩 받아들인 본픽시오는 조금씩 조금씩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어갔다.
이후, 약 11일이 지난 후, 벌거벗은 본픽시오가 4번 연구소에서 비틀거리며 걸어 나온다.
"소장님? 인코이브 소장님? 괜찮으십니까?"
그동안 밖의 잔디밭에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리며 입구를 지키고 있었던 경호원은 본픽시오를 보더니, 자신의 눈을 믿지 못 했다. 그도 그럴 게, 본픽시오의 외형이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풍만했던 체형이 마르게 변했으며 신장은 작아진 듯하고, 전신의 피부는 타버린 듯 검게 변했다. 어두운 보라색으로 바뀐 긴 머리카락은 방금 막 자란 듯 찰랑거리며 바람에 휘날렸는데, 무엇보다 압도되었던 것은 눈, 황금색으로 빛나는 그녀의 눈은 밝게 빛을 발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그녀를 바라본 경호원은 머리 속에 그녀의 명령이 직접 흘러들어오는 듯, 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그녀는 그에게 걸어가 허리를 숙이더니, 그의 턱을 가볍게 잡아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는 턱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손이, 그녀의 피부가 얼마나 단단하고 차가운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피부가 닿은 그의 턱을 시작으로, 점차 불이 번지듯 그의 전신이 그녀의 피부색으로 변해갔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거구의 경호원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다가 피를 토하며 죽었다.
"흠, 너무 강한 자극이었나, 아직 갈 길이 멀구나."
그녀의 목소리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몇 가지의 음성이 동시에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시체를 뒤로한 채, 1번 연구소로 돌아간다.
본픽시오는 17층 라운지의 스낵바로 가, 오른손으로 사과 하나를 집어 들고는 이리저리 살핀다. 그러더니 눈을 감고 오른손으로 사과를 음미하며 흡수한다.
'훨씬 맛이 좋군.'
거울 앞에 선 본픽시오는, 자신의 신체를 이리저리 살핀다.
'세포 하나하나가 느껴진다.'
그녀는 살과 뼈를 더하고 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세포를 통제하며 감각을 익히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손을 떨어뜨리거나 새로 만들어낸 손의 손가락을 일곱 개로 만드는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연습을 계속하자 곧잘 하게 되어 자신의 등에 날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다음 인간 농장으로 날아갔다.
그녀의 숨결이 닿는 거리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땅에 엎드렸다. 그녀는 엎드린 실험용 인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앞으로 나아갔고,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졸도하거나 죽었다. 실험용 인간을 만지면서, 자신의 세포 중 극소량을 직접 주사하는 것이다.
1층의 모든 사람들을 쓰다듬고 뒤를 돌아보니, 약 600명의 사람 중 4명만이 죽지 않고, 여전히 고통을 받으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현재 내 세포의 약 0.3% 정도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감마선 정도는 버텨낼 수 있게 되는데... 쉽게 받아들이질 못하는구나.'
본픽시오는 아직 살아 움직이는 4명을 기다려준다.
발작을 멈춘 후, 이 4명은 모두 피투성이가 된 채, 외형은 서로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했지만, 누구 하나 인간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모습이었다.
하나는 두 눈과 코가 사라지고 곱추가 된 채, 배에 가스가 가득 찬 듯, 비대하게 부풀어 올랐고, 하나는 한 쪽 눈이 얼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커지며, 양손의 모든 손가락과 오른 다리 하나가 떨어져 나갔고, 하나는 멀쩡한 듯 보였지만, 움직이기에 피부가 너무 무겁고 두꺼웠던지, 자신의 신체에 눌려, 압사당하는 중이었고, 발작이 가장 길었던 마지막 하나는 이마의 왼쪽 부분에 더듬이 3개가 자라나 발발댔으며, 양다리가 하나로 붙어버렸다.
'이거 감마선이 문제가 아니구나...'
그녀는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한다.
이후 약 2개월간 어느 때보다도 밀도 높고 많은 인체 실험을 강행군하여 연구소 내의 모든 생명을 남김없이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