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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내게 낭만이라 말해줬다.
내게도 친구가 있다. 하지만 친구의 정의는 하나가 아니고, 그 정의에 따라서 난 친구가 많은 사람이 되기도,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난 가족을 제외한 인간관계를 6단계로 나눠 구분한다. 그중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3명. 난 상대에게 있어서 나와 모든 게 맞길 바라진 않는다. 내가 가진 톱니바퀴의 수많은 톱니와 상대가 가진 톱니바퀴의 수많은 톱니가 단 한 부분만 맞더라도 만족한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과 상대가 살아가는 인생이 단 한 순간이라도 어우러지게 맞물린다면, 난 그를 친구라 생각한다. 물론, 조금 먼 친구가 되긴 하겠지만. 반면, 아주 가까운 친구는 서로의 많은 톱니가 같이 어우러져 함께 돌아간다. 이들의 톱니와 맞닿을 때면, 맞물린 톱니를 통해서 그들의 에너지가 온전히 전달되곤 한다. 편안하고 순수하며 신선하고 특별한 에너지가. 이 3명은 3명 이외의 내 모든 인간관계보다 방대하고 견고하며, 이들의 나이는 모두 다르다.
한 명은 동갑인 친구.
한 명은 2살 많은 누나.
한 명은 4살 많은 형.
오늘은 동갑인 친구와 만났었다. 이 친구는 실력도, 능력도, 매력도, 이력도, 경력도 엄청나면서 그를 능가하는 겸손함을 뿌리에 두고, 성실하게 노력하며 순수하게 살아온 자연 같은 녹색의 힘을 지닌, 강한 인간이자 남자다. 우리가 만나면 보통 내가 말하고, 이 친구는 들어준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이 친구는 동의해 준다. 내가 금연을 100번 선언하고 실패해도, 101번째 금연 선언을 진심으로 믿고 응원해 준다. 내가 노력은 하지도 않으면서 계획만 번지르르하게 제안해도 환호를 해주고, 어쩌다가 내가 그 계획들 중 하나를 실천하면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박수를 쳐준다. 현실에서 벗어난 이상적이고 비정상적인 내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준다. 나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면서, 동갑이면서도 내게 술을 따라줄 때는 양손으로 따라주고, 건배를 할 때도 양손으로 하며 잔을 내려 부딪친다. 그래도 다행히 고개를 돌려 마시진 않는다.
다시 돌아가서, 우울하고 부정적인 상태였던 나는, 평소보다 더 비관적으로 내가 살아온 삶과 신념에 대해 의문과 반감을 느끼며, 내 생각과 감정을 가감 없이 피력하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감사하게도 흔치 않게 조언을 해줬다.
밖에 나가면 모든 게 현실이다.
현실은 계산적이고 정형화되었으며 차갑다.
그렇게 현실을 살아가며 낭만은 사라져간다.
그에 반해, 내 삶은 현실적이지 않더라도 낭만 그 자체고, 그렇기에 나와 내 삶을 존중하고 존경하고 좋아한다.
라고 그는 말해줬다.
어느 순간 잊어버린 듯하다.
나는 나 이외의 누구도 살지 못하는 내 기준의 깨끗함 속에 살아왔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세계를 위해서 현실적인 존재의 모든 출입을 통제했다.
내 존재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내가 사는 곳이다.
난 내 세계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친구가 말해준 의도와 의미는 이런 게 아니었지만, 덕분에 기억나게 되어 다행이었다. 내가 살아온 곳과 살아갈 곳의 가치, 그리고 그곳에는 언제나 나뿐이고, 난 그 사실에 행복해 한다는 착각을.
그게 내 낭만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