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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시간

2504242203

by ODD

30살, 포기하기엔 이르고, 시작하기엔 늦었다. 예전에 들은 말이 있다, 오바마는 55세에 퇴임을 했고, 트럼프는 78세에 취임을 했다고. 포기하지 않는 한, 끝은 없다고 하지만, 그건 이전보다 더 낮은 목표를 인정한 뒤에 느끼는 비교적 옅은 성공이란 생각이 사라지진 않는다. 물론 나이 또한, 성공의 형태를 정하는 수많은 척도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전에 갔던 유럽 여행이 내일 가는 유럽 여행보다 좋을 거라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으니. 그저 이것저것 잊으며 살아가니, 아쉬운 마음마저 느껴지지 않아, 그 빈자리에 무기력과 귀찮음이 자리를 잡는 게 무섭게 느껴진다.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당연히 놓치고 있는 많은 것들. 난 오래전부터 하루에 한 끼만 먹어왔다. 다이어트나 건강, 그런 것보다는 편리함 때문이다. 오후 10시 전후, 한 끼만 먹으면 여러모로 합리적이고 편리하다. 식사 시간 전까지 딱히 배고프지도 않고, 뭔가를 먹고 싶다는 마음마저 들지 않는다. 그 한 끼 역시 보통은 간편하게 고기를 구워 먹는다. 난 쌀을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에 고기만 먹거나, 야채를 조금 곁들여 먹는다. 이런 식습관으로 살다 보니 살면서 못 먹어본 음식들이 많다. 난 음식이란 개념을 먹으며 살지 못했다. 그냥 고기나 야채를 익혀서 소스와 같이 먹기만 해왔다. 흔히 접할 수 있는 부모님께서 차려주신 집밥도 먹어본 기억이 적다. 이제 30살이 됐는데 처음 보는 음식도, 처음 먹어보는 음식도 여전히 많다.


내 삶도 내 식습관과 비슷하다. 난 내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내부의 교류는 잘 활성화되어 있지만,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언행의 실천 빈도수가 남들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같은 하루를 보내도 내 하루는 당신의 하루보다 놓치는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난 하루에 한 끼만 먹으니까. 그렇다면 왜 한 끼만 먹을까. 편리함과 귀찮음, 그 다음에 오는 이유는 살이 찌니까. 나도 살찌는 걸 싫어한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다이어트는 신체만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신적으로도 다이어트는 필요하다. SNS, 쇼츠를 시작으로 영양가 없이 소모적인 휘발성 정보들. 이런 것들을 자극적이고 맛있다며 꿀꺽꿀꺽 삼키다가는 뇌가 뒤룩뒤룩 살쪄버려 생각하기 위해 뇌를 움직이는 게 힘들어질 수도 있다. 놓치면 안 될 게 또 있다. 요새 영상 매체가 워낙 유해한 걸로 경계심이 높아진 만큼,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언행은 상대적으로 건강한 걸로 비추어진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것도 모든 게 좋은 것들로만 채워진 건 아니다. 내 기준엔 SNS, 쇼츠 따위보다 훨씬 자극적인 게 현실 세계다. 미디어는 한두 시간, 며칠, 몇 달이 녹게 만들 수 있지만, 현실은 몇 년, 몇십 년, 평생을 녹일 수도 있으니. 현실은 열심히 사는 것보단 잘 사는 게 중요하겠다. 열심히만 살다가는 사라지는 게 시간뿐만은 아닐 거다. 그러니 다들 잘 살길 바라요.


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30살이다. 딱히 벌써라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한편으론 아직이라는 생각도 든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있는데, 불이 아직 다 떨어지진 않고, 애매한 위치 있어서, 발등이 천천히 적당히 익어가는 이 시간이 애매하다. 불을 피해야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면서도, 그다음에 드는 생각은 불이 더 빨리 떨어져서 완전히 익어버린 발등과 함께 통증이 사라졌으면 하기도 한다.


나는 내 나이를 여러 개로 인지한다. 내 본 나이를 잊을 정도로 다른 나이에 몰입하곤 한다. 그중에서 본 나이만큼 몰입하는 나이는 내 나이의 두 배의 나이다. 따라서 이제 난 60대가 되기도 한 것이다. 25살엔 자식을 생각했고, 30살엔 은퇴를 생각했다. 실제 나이와 다른 나이에 몰입하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못 해봤을 법한 고민들을 미리 진지하게 접해볼 수도 있고, 아직 도달하지 못 한 위치에 벌써 도착했다며 쉴 수도 있고, 벌써 끝나버린 일몰을 아직 떠오르지 않은 일출로 느낄 수도 있다.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이는 자신을 정의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정의할 수 있는 기준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나이는 코스를 표시해 주는 깃발과 같은 것. 이 나이에는 이걸 하고 저 나이에는 저걸 하고. 그것들을 제 나이에 제때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코스를 벗어난 사람이 되고, 주변의 달갑지 않은 관심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코스는 정형화된 기준일 뿐 딱히 정답은 아니다. 물론, 다수가 지나간 길인 만큼 정답에 가장 가까운 길이긴 할 테지만, 그럼에도 정답은 아니다. 그저 수많은 이정표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가고 싶은 길대로 가면 된다. 어차피 인간이 인간을 판단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나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리 없는 타인의 의견을 인지는 하되, 그렇게까지 마음에 둘 필요는 없다. 유일하게 신경 써야 할 사람은 본인 하나다. 중요한 점은 본인의 길을 굳세게 관철할 수 있는 독재자가 되겠다면, 적어도 기본적인 능력은 있어야 한다. 적절한 판단력과 사회성, 정상적인 인지와 감각. 이것들을 보유했다면 고집은 있는 편이 좋을 수도 있다. 어차피 정말 아닌 것 같은 상황이 온다면, 누가 말 안 해도 스스로 알 수 있으니까. 그전까지는 주체적으로 사는 게 좋겠다.


나는 꽂혀있던 깃발들을 무시한 채로 20대를 지나왔고, 이제 내 앞에 새로운 30대의 깃발들이 보인다. 잠시 멈춰서 뒤도 돌아보고, 앞으로 어느 길로 갈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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