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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081921

by ODD

모든게 귀찮아질 때가 있다. 부정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모든 감각과 감정이 0에 수렴한다. 뭐가 어떻게 되든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다. 미래는커녕, 과거는커녕, 현재의 만족에도 집중하기 어렵다. 주도권을 얻은 건지 잃은 건지도 모르겠다. 주체의식이 사라지니, 목표도 사라지고, 원하는 것도, 피하고 싶은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모든 게 상관없어진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이 상태는 언제든 언젠가는 꼭 찾아온다. 그리고 이 상태의 비율은 내 인생에서 9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해 왔다.

그러므로 이 0의 상태에서 벗어났을 때, 몰아서 노력하려 한다. 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의지 자체가 없을 때가 더 많다. 지금처럼 글을 쓴다는 건 일말의 의지가 남아있는 내게는 희귀한 상태다. 그래서 기록이 내겐 의미가 있다. 기억도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기억할 의지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내게 기록이란 내 부족한 기억 능력을 대신해 줄 제2의 뇌다. 그래서 글, 사진, 영상으로 남기려 한다. 남긴 기록을 돌아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기록해야 한다. 어제를 잊어버리면 오늘에서 벗어나 내일로 떠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기록은 하지만, 기억은 하지 않는다. 여행할 때도 짐은 없는 편을 선호한다. 삶을 살아갈 때도 그렇다. 어제까지 이어진 기억의 관성을 오늘까지 부담하고 싶진 않다. 싫어하는 기억은 물론이지만, 좋아하는 기억도 쉽게 잘라내는 편이다. 애초에 기복이 심한 사람이라 그런지, 들고 있는 게 무겁게 느껴질수록 진동에 더 쉽고 크게 동요하기 때문이다. 내 상태가 긍정과 부정을 끝없이 반복하는 걸 알기에, 긍정적일 때 불안해지고, 부정적일 때 안심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얼마를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흔들림에 얼마 없는 것들마저 내려놓게 된다. 내게 가벼움이란 자유로 이어지고, 그게 무책임과 회피라는 이면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인지함에도 내 생존 방식에 변화를 주긴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짧게 보고 싶어 한다. 길게 내다보며 상상한 계획은 내 변덕에 금방 비틀리곤 한다.

지금, 이 글에도 내 여러 모습과 마음과 의지가 들어있기 때문에 모순이 있다. 그리고 난 이 모순 자체를 나라고 받아들인다. 일출과 일몰도 하나의 태양을 가르킨다. 나는 하나다. 다만, 날 어디에서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는 밝아질수도, 어두워질수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그저 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