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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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

의지는 방향을 빚어내 흐름을 만들고, 무욕은 천천히 가라앉아 깊이를 더한다. 난 사람들이 좀 더 깊이 가라앉길 바란다. 차분하게. 하나하나 따져가며 예민하게 곤두세우지 말고, 울퉁불퉁 모난 부분도 그저 하나의 퍼즐 조각인 것처럼 안심했으면 좋겠다. 죽일 듯 노려보며 몰아세우기보단, 죽은 듯 눈을 감고 쉬었으면 좋겠다. 서로를 위해서.
다들 충실하다. 하룻밤, 아니면 그보다 조금의 시간만 지나도 평생을 잊고 살 텐데, 당장의 불만에 성실하게 반응한다. 그 반응은 또 다른 사람의 새로운 불만의 시작으로 이어지고, 참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연쇄적으로 퍼진다. 그러는 중에도 어딘가에선 불만의 불씨가 여전하다. 구조적으로 불만이란 건 사라질 수 없다. 누군가의 당연함이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기 때문에 생각과 사고방식을 비롯한 모든 요소 중 뭔가가 조금이라도 서로 다르다면 그 다름 자체가 불만이자 스트레스로 전환될 수 있다.
딱히 누군가의 잘못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저 누군가의 존재가, 그 존재의 언행 자체가 타인의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런 내 생각들을 써놓은 글 자체가 누군가에겐 어떠한 이유로든 불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배려가 필요하다. 대부분은 존재 자체가 불만을 만들기 때문에 그 사이에 배려라는 벽을 쳐서 서로 보호하며 보호받는 것이다. 이 배려라는 게 가식과 거짓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지만, 그래도 필요하다.
가장 확실하게 불만을 없애는 방법은 각자 고립되는 것이다. 완전히 고립된다면 남은 모든 불만의 화살은 자신에게 향하고, 이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 방식을 견디지 못한다. 혼자라는 공포와 타인의 그리움이 버티지 못할 만큼 커질 때가 돼서야 인간관계의 필수성을 다시금 느낀다.
다들 어쩔 수 없이 함께하는 것 같다. 3대 욕구처럼 사람이 사람을 원한다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견디며 사회에 뛰어든다. 뛰어든 사회 속에서 생각이 맞고 조건이 맞는 사람을 찾아, 스트레스 강도가 덜한 가족을 구성한다. 모든 사람이 계획대로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몇몇은 기대한 대로 가족이라는 새로운 벽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숨을 돌린다. 목을 축인 사람이 배를 채우려 하는 것처럼, 자위를 하는 사람이 섹스를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에게 실망한 마음이 수그러들면 새로운 인간에게 기대감을 품는 게 인간이다.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게 인간이다. 그런 만큼 서로를 위해 안심하며 차분하게 배려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