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란 무엇인가. 나는 자신이 인정한 세계를 현실이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생존. 생존은 생물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다. 누군가에겐 생존은 돈이고 누군가에겐 생존은 사랑이며 누군가에겐 생존은 자아실현이다. 모든 사람은 각각 스스로 현실이라고 부르는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은 모두 제각각이다. 어느 정도의 교집합은 존재하지만 현실이라고 불리는 그 범주는 굉장히 넓다. 영화를 좋아하는 A는 영화가 중요하지만, 게임을 좋아하는 B에게는 별 감흥이 없으며 B가 좋아하는 게임의 경험치 2배 이벤트는 음악을 좋아하는 C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D에게 있어서 A, B, C는 모두 환상 속에 사는 사람들이 된다.
나는 여러 세계에 빠진 적이 있었다. 동시에 40가지가량의 게임에 빠졌었는데, 모든 게임의 일일 보상만 받기에도 24시간이 부족했다. 이 게임의 뽑기 이벤트가 중요했고 저 게임의 밸런스 조절 내용이 중요했다. 내가 인정했기 때문에 그 세계의 재화가 중요했고 그 세계의 실력이 중요했고 그 세계의 캐릭터를 모으는 게 중요했고 그 세계의 내 레벨과 등급이 중요했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인정하지 말아볼까?' 그렇게 모든 게임을 지웠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지금 당장 접속하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보상들이 머릿속에서 계산되며 뭔가를 계속 놓치고 있다는 압박이 커져갔다. 중독이다. 지운 게임을 다시 깔고 후회하다가 다시 지우기를 반복.
결국, 버티고 버티면서 게임에 접속하지 않은 채 일주일이 지나니,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내가 관리하고 애지중지 키웠던 모든 계정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됐다. 심지어 어떤 게임은 서비스 종료가 됐다. 내가 그 세계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내 세계의 일부는 무너졌을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늘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현실에서 기분이 나빠지더라도 내가 하던 게임의 뽑기 힘든 SSR 캐릭터를 얻는다면 실제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 세계에 빠져들지 않았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텐데,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몰입함으로써 상호작용이 일어났다.
결국, 뭐가 뭘까. 인생의 의미가 자신이 부여하는 것이라면 값싼 사탕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떨까.
게임을 예로 들었지만, 어디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식을 추구하는 누군가는 저 멀리 지방이나 해외까지 나가며 맛을 찾아 떠나지만, 누군가는 집 앞 편의점의 음식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의문이 든다. 이것은 취향의 차이인가 수준의 차이인가. 취향의 차이라면 감각의 발전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수준의 차이라면 젖병의 우유만으로도 해맑게 웃는 아이처럼 감각을 발전시키지 않는 것이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더 수월하지 않은가. 일전의 전쟁으로 인해서 밀가루를 비롯한 식료품 가격이 폭등했을 때, 음식을 좋아하지 않던 내게는 별 영향이 없었다. 치킨값이 올랐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치킨을 먹지 않아서 모른다.
어떤 세계를 받아들일지 말지에 대한 인정은 스스로 하는 것이고 중요함 또한 선택하는 것이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이성을 만나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고 다른 한 명은 부자가 되는 것에, 다른 한 명은 유명해지고 싶어 한다. 모두 중요하다고 외치는 대상이 다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이 없다고 말하고 그렇게 믿는다면 그 또한 게임 클리어가 아닐까. 이미 클리어한 것 같은데 게임이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