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인지하고 있던 상식과 사고방식이 파괴될 정도의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 본 적이 있는가. 이런 경험을 처음 겪은 후, 스스로 완벽해졌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웬걸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니, 비약적인 발전의 새로운 지식은 내 상식이 되어 있었고, 비슷한 경험을 두 번째로 겪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완벽에 완벽을 거듭한 정신을 지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런 경험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세 번, 네 번 그 이상의 경험을 마주하게 되니, 이제는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가늠할 수도 없다고 느껴졌다. 뭔가를 새로 알게 된다는 것은 마치 새로운 미지의 것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늘어나게 되는 것 같았다. 점점 더 알 수 없는 것이 늘어가고 그 방대함의 압박 앞에서는 잔뜩 웅크린 겸손함의 자세로 버텨내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백이면 백 모든 것이 이러지는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옳다는 확신이 강해지는 생각들도 존재했다. 내 생각이기 때문이 아닌 옳은 생각이기 때문에 옳다고 느껴지는 생각들.
그중 하나로, 말이란 무슨 말을 하는지 그 내용의 중요성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누가 말하는지가 중요하다. 예로, 내 입에서 나오는 평등과 평등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던 시대에서 목숨을 걸고 가치를 지켜낸 위인의 입에서 나오는 평등의 가치는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런 말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
개인적인 주장으로 인간이 지닌 생각, 감각 등 정신적인 것은 인간 그 존재 자체보다 더 상위 차원인 무언가다. 그래서 생각을 온전히 전달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며, 만일 이것이 가능했다면 그것은 굉장히 황홀한 일이고 운이 좋은 경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내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에 대해서 적잖은 어려움이 동반되곤 한다. 원기둥조차 어디를 보여주냐에 따라서 원이나 직사각형 등의 모습이 될 수 있는데, 내 정신적 형태의 어느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을지, 그렇게 드러내면 어떻게 전달이 될지 늘 두려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여러분께 나를 소개하고 싶기에 여러 생각을 해 봤고, 역시 이 문장이 나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해 왔고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는 인간이다.
2207220436
나는 불순물이 되고 싶지 않다.
내 안에 어떠한 불순물도 들이고 싶지 않다.
눈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없앨게.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게만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