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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모든 생물에게 죽음이라는 선물이 주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죽지 않길 바라는 마음보다 타인이 죽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물론, 건강하게 살다가 마주하는 자연사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도 죽지 않는다면 그 혼란을 어떻게 감당하랴. 어쩌면 생물은 하나의 짧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콧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얕은 바람처럼 그 존재를 은은하게 뽐내다가 기억과 함께 사라지나 보다. 그 바람 중 하나가 될 수 있어 영광이다.
이전 글과 반대로 모든 인간이 영생한다면, 아마도 죽음의 규율이 생길 것이다. 일정 수명을 산 사람에게는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물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자는 드물다. 다수의 사람은 사형 선고를 피하고자 끝없이 도망을 친다.
장수는 가장 큰 범죄가 되었다. 위장 사망과 신분 세탁이 유행이다. 이제 더는 개인이 성형외과를 개업할 수 없고, 국가의 통제하에 관리되고 있다. 함부로 고객을 받을 수도 없고 모든 수술 기록은 1급 기밀이다. 암암리에는 수술 기록을 남기지 않는 성형 수술이 큰 금액에 거래되고 있다. 뉴스에서는 4번의 성형수술을 받아 5세기나 살아온 범죄자가 화제다.
이런, 열심히 도망다녔봤지만 스위스에서 결국 잡혀버렸다. 죄목은 247세. 세계 헌법 1조 1항에 의거하여 최대 보장 수명인 100세에서 147년을 더 살아남은 죄. 사형으로도 부족하여 고강도의 고문이 집행될 예정이다.
안타깝게도 이 권력자와 저 재력가는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 가며 천 살 기념 파티를 열려는 모양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위대한 위인은 1조 1항의 강제성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인데. 하하, 많은 이들이 남용과 오용을 하는구만.
아이도 함부로 낳을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복권 시스템을 통해서 당첨된 사람만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인간으로 등록시킬 수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인간 등록은 필수다. 등록되지 않은 인간은 어떠한 인권도 보장받을 수 없이 누구에게든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예로 팔려가지 않으면 다행.
전반적으로 생명의 소중함이 줄어들었다. 부모가 죽은 장례식장에서도 그렇게 슬프지 않은 듯하다. 생전에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아참, 기본적으로 100살까지 보장된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10년에 한 번 평가받는 인간 능력 평가에서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낙제점을 받으면 보장 수명이 줄어들 수 있으니 조심하길. 반대로 최상위권의 능력을 뽐내면 5년 단위로 수명이 늘어날 수도 있으니, 화이팅.
원체 인류에 있어서 소중하지 않은 인간은 없다만 인류를 이끄는 인간은 최상위의 극소수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인간들이 하나둘 탄생하게 되면서 인류는 가파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만큼 인간과 인간의 격차 또한 점점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번 뛰어난 권력과 재력을 쌓는다면 시간의 한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해서 보강하며 절대적인 독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계급사회를 제시하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그와 동시에 요즘에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키워드는 평등이다. 빈부격차가 압도적으로 심해지는 요즘에 불만들이 많은 모양이다.
이 상황을 보다 못한 어느 한 인간이 나섰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평등을 실현시키기로 한다. 그렇게 그 과학자는 강력한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그 바이러스는 인간을 아프게 하지 않았다. 다만, 인류를 약하게 만들었다. 단 일주일 만에 전 세계의 모든 인간에게 퍼진 이 바이러스로 인간의 영생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최대 기대 수명은 100살로 돌아왔다. 이미 100살이 넘은 자들은 며칠 내로 죽을 예정이다. 패닉!
이에 대해서 가진 자는 화냈으며 없는 자는 환호했다.
이 과학자는 분명히 비행하는 인류를 추락시켰지만, 비행하는 인류와 추락하는 인류로 분열되는 것을 막은 것 또한 분명했다.
1,396살이었던 이 과학자는 자신이 돌려놓은 세상에 씁쓸하지만 안도하며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담배를 하나 태운 뒤에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