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단축

점점 어려워지는 퀘스트.

by ODD

오래전, 어느 시대라면 평균 최대수명이 50살이었을 때도 있었고, 더 나아가 40, 30살이었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의학이 발전되고 기대수명이 늘어난 지금 시대에 요구되는 삶의 호흡은 100년이다.



어느 시대에서든 자살은 환영받지는 못할 것이다. 고로 주어진 최대 수명을 살아가야 하는데, 점점 그 퀘스트의 난도가 높아지는 느낌이다.



가끔 상상하는 것 중 하나, 평균 수명이 늘어난 게 좋은 걸까. 아니, 정말로. 사람의 최대 수명이 30살이고 모두가 그게 당연하다고 인식하면 그게 더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소문에 사재기를 하듯,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는 소망에 죽기 전까지 삶을 사는 내내 쉼없이 저장을 한다. 그래, 돈을 저장해야 한다. 최대수명이 일할 수 있는 나이보다 길기에, 노후 대비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노후를 준비하는 모든 사람은 본인만을 위해서 1인분 이상을 얻어내야 한다. 지금은 100세 시대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뭐, 넉넉하게 잡아서 70세 정도라면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경유지가 되었다. 환갑잔치라는 단어도 뒤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



자, 여기서 상상을 한 번 해보자. 지금 우리가 100세 시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100세가 넘었을 때, 장수에 감사함을 느끼고 200세까지 살지 못함에 대한 불평을 진지하게 하진 않는 것처럼. 평균 수명을 30세로 바꾸고 60세까지 살지 못함에 대한 불평은 생각도 하지 않는 세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여 보자.



평균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에 인간은 더 탐욕스러워졌을 가능성이 있다. 하루만 살 수 있는 사람은 오늘에만 충실하면 된다. 그저 오늘만 즐기다가 내일 당연하게 가면 된다. 30년만 살 수 있는 사람은 노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노후 대비 또한 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하루하루 먹고살 것만 스스로 준비하면 모든 것이 오케이. 또한,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권력과 재력과 같은 능력을 높게 쌓을 수가 없고 쌓더라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이 죽음에게 반납해야 한다.



평균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에 책임감이 높아졌을 가능성이 있다. 내일이 없는 사람이 무서운 것은 유명하다.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수많은 내일들이 있기에 오늘의 나에 대해서 더 책임을 질 수 있는 것 같다. 어차피 30년밖에 못 산다면 25살에 목숨을 건 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100년까지 살 수도 있다는 희망 덕분에 70세에 감옥에 들어가도 자살하지 않고 징역을 살다가 나오려 한다.



기대 수명이 늘어난 것이 인류 관점에서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개개인의 깨우침의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서 더 많은 기회를 접할 수도 있고 더 많은 정보에 깊이 파고들 수 있으며 그것들을 서로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인가.



아마, 옳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겠지.



장수는 관리하기 어려운 특성이다. 준비된 누군가에게는 누릴 시간을 늘려주는 기쁨이지만, 준비가 덜 된 나머지에게는 버텨야 할 시간이 늘어나는 고통일 수도 있겠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내가 오래 사는 것이 네게 좋은 일일까.



반대로 네가 오래 사는 것은 내게 좋은 일일까.



그럼, 좋은 일이지,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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