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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어떻게 지내세요.
네, 뭐, 잘 지냈습니다.
잘 지내셨다니 다행이네요, 요즘은 OO님에게 어떤 게 화두인가요.
(침묵)
화두랄 게 딱히 없고 그냥 계속해서 지루함이 느껴져요.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도 금세 다른 영상을 선택하고 넷플릭스로 넘어가 미드를 보다가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몇 분도 되지 않아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결국 음악을 듣게 됐어요.
(웃음)
요즘의 화두가 지루함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참 신기해요, 음악은 3분 내지 5분의 정해져 있는 데이터인데 들을 때마다 살아있는 느낌을 주고 제게 환기를 시켜줘요. 물론 그렇지 못한 음악이 더 많지만, 제 취향에 딱 맞는 음악을 찾게 됐을 때는 며칠에서 몇 주 동안이나 행복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어제 인도계 출신의 래퍼가 표현하는 미국 힙합의 음악을 찾게 돼서 기분이 좋아요.
음악을 듣는 건 청각에 집중하게 하여 OO님처럼 예민하신 분에게 좋은 방법의 해소법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나는 대로 적긴 했는데 사실 기억이 잘 안 남, 틀릴 수도 있음.)
아, 그리고 몇 달 전에 말씀드렸던 제 계획을 실천했어요.
방 안에 있던 65인치 모니터와 32인치 모니터, 그리고 데스크탑을 거실로 빼 놓았습니다.
이제 제 공간에는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접이식 책상 하나와 그 위에 태블릿 하나가 있습니다.
앞으로 데스크탑으로는 생산적인 행동에만 사용할 거고 대형 모니터는 쉴 시간을 정해서 영상을 감상할 때만 사용할 겁니다. 그리고 제 방에서는 필수적인 것만을 남겨두고 최대한 빈공간을 유지하여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외부의 자극을 받지 않고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 거예요.
아시겠지만, 이전에도 이렇게 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변화를 줬던 습관이 정착하지 않은 채로 방심하니까 어느새 원상복구 되어 자극의 요소로 채워졌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굳게 다짐을 했으니 다를 거예요.
잘하셨습니다. 개인의 공간과 업무의 공간을 분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분리가 되어야 업무를 할 때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고, 쉴 때는 확실히 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신기한 게, 커다란 모니터가 있을 때는 긴 영상들을 주로 시청했었거든요. 몇 시간 단위의 영상들, 길면 12시간의 게임 플레이 영상을 큰 모니터에 띄워 두고 저는 데스크탑으로 게임을 했어요. 아니면 두 모니터에 각각 다른 영상을 띄워 두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했죠. 그런데 비교적 작은 화면인 태블릿으로 영상을 볼 때는 뭔가 달랐어요. 좀 더 짧은 영상들을 주로 시청하게 됐고 이 영상 저 영상 왔다 갔다 하면서 좀 더 공격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영상을 골랐어요. 아무래도 하나만 하니까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긴 길이의 게임 영상만 볼 때도, 데스크탑이나 스마트폰으로 게임만 할 때도 이래도 되나 하는 불안과 시간이 아깝다는 죄책감이 느껴지는데, 두 개를 동시에 하면 그것들이 사라진다는 점도 생각해 볼 만한 것 같아요. 그래서 방에 있던 여러 자극의 요소를 없애고 없앨 수 없다면 최대한 줄이기로 결심했던 거고요.
65인치 화면으로는 뭘 봐도 재미있었어요.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오락의 만족도가 상당했습니다. 화면 속의 인물의 크기가 저보다 크니까 신선하더라고요. 그리고 방을 정리한 이후로 같은 영상을 태블릿으로 보는데 내가 보던 게 맞나 싶었어요. 자극의 요소가 줄어든 건지 만족의 기준이 높아진 건지 이전만큼 오랫동안 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간만에 영상 보는 것을 멈추고 내가 놓쳐왔던 것들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었는데, 모니터 두 대가 채워주던 빛이 사라지고 9개의 스피커가 채워주던 소리가 사라지니, 비로소 제 주위에 겹겹이 쌓여가던 불안이 드러나고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구석에 있던 책들이 눈에 들어왔죠.
영단어 책과 소설을 비롯한 몇 권의 책들.
아, 나 영어 공부하기로 했었지.
아, 나 다 써놓은 소설 방치되어 있지.
아, 이 불안들은 지난 몇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것들.
그동안 이 불안을 무시하기 위해서 다른 자극들로 내 눈과 귀를 막아왔구나.
이번 주는 책을 좀 더 읽고 글을 더 많이 쓰게 됐습니다.
모니터 빛 덕분에 필요가 없어서 무드등으로 사용했던 스탠드 조명이 이제야 다시 제 역할을 찾았습니다.
외부의 여러 자극들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저도 이제는 다시 마땅히 느껴야 할 제 책임의 불안들을 느끼며 제 역할을 찾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