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수를 줄이고 모니터 크기를 줄였다.
나는 음악 듣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많이 듣는다. 내 플레이 리스트에는 4,173곡이 저장되어 있으며 한 번 꽂힌 노래는 몇 주 동안 반복 재생해서 듣는다. 음악은 내게 영감과 생기를 부여해 준다. 다만, 같은 소리가 반복된다는 점에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무생물 같다.
그에 반해서 영상은 같은 내용을 반복하지 않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생물 같다. 영상을 틀어놓으면 어느 세계의 일부와 함께한다는 착각이 들어 시간을 낭비한다는 느낌이 꽤 많이 깎여나간다.
그리고 게임, 게임에도 여러 장르가 있지만 내가 주로 하는 게임은 수집형 게임이다. 뭔가 키운다는 느낌이 있다. 성장한다는 느낌이 있다. 여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강해지고 있다는 착각이 들어 시간을 낭비한다는 느낌이 꽤 많이 깎여나간다.
지난 몇 주간은 이렇게 영상과 게임으로 시간을 낭비했다. 반성합니다. 인터넷과 유튜브에는 평생 몰라도 될 것 같지만, 왠지 알면 유용할 것 같은 정보들이 넘친다.
처음에는 모니터가 하나였다. 그러다가 영상을 틀어놓는 동시에 인터넷 검색도 하고 싶어서 모니터 두 개가 되었다. 그러다가 욕심이 생겨서 노트북이 추가 되었다. 거기에 모바일 게임의 자동 사냥도 빼놓을 수는 없지, 태블릿이 추가 되었다. 내가 하는 모바일 게임 대부분은 자동 사냥이기 때문에 여러 개를 켜놓을수록 좋다. 내 스마트폰과 더불어 공기계까지 더해졌다. 그렇게 6개의 모니터로 시간의 낭비를 즐겼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내 책상 위의 상태를 보니, 흠. 끊어낼 필요가 있었다.
나는 틈만 나면 놀고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어 줘야 한다. 다행이자 불행히도 나는 버리거나 멈추거나 포기하는 것을 잘한다. 필요성만 느낀다면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쉽게 끊어낼 수 있다.(담배만 빼고, 술은 끊었다.) 또한, 변화를 줄 때는 과격하게 완전히 뒤집어엎는 편이다.
가장 먼저, 책상 위의 모든 것들을 없앴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없애니 빈 공간이 필요 이상으로 넓게 느껴졌다. 작은 책상으로 바꿔야겠다. 기존 책상을 빼내고 오래된 책상을 들인 뒤, 조금 손을 봤다. 톱을 들고 와서 대각선으로 반을 갈라냈다. 기존의 유리판은 다른 곳으로 옮기고 좀 더 작은 다른 유리판을 올리니, 딱 알맞은 빈틈없는 크기의 책상이 완성됐다. 책상이 넓으면 자꾸 빈 공간에 뭔가를 올려놓고 치울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남는 공간이 없는 작은 책상은 반강제적으로 깔끔함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어디 이동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화면은 커질수록 좋은 것이 당연하다. 같은 영상이라도 몰입감이 높아지고 더 섬세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즐길 때가 아니다. 나는 불편해질 필요가 있었다.
데스크탑을 없애니 일단, 하염없이 영상을 틀어놓거나 인터넷에 빠지는 일은 사라졌다. 글을 써야 한다는 이유로 노트북만 올려놓기도 했지만, 노트북 또한 작은 데스크탑이다. 충분한 변화를 주지 못하여 결국 없앴다. 큰 모니터와 노트북을 없애니, 태블릿이 남았는데, 태블릿이 괜히 넷플릭스 기기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역시 없앴다. 태블릿까지 없애니 남은 것은 스마트폰뿐이어서 영상 보기가 불편했다. 계획대로다. 시각적인 제한이 생기니 긴 영상은 더 이상 보기 어려웠고 짧은 영상 위주로 보다가 그마저도 금방 그만두게 되었다. 이제 남은 기기는 스마트폰밖에 없기 때문에 이전처럼 자동사냥을 켜놓고 놀릴 수가 없어서 스마트폰 게임도 거의 못 하게 됐다.
이제 책상 위에는 스마트폰과 블루투스 키보드만 남았다. 처음에는 급격하게 변해버린 환경이 익숙하지 않아 의자에 앉았다가도 못 참고 금방 일어나서 방 안을 걷거나 아예 방을 나가곤 했다. 하지만 내게는 이런 불안이 필요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어야 했다. 그 감각을 느껴야지만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된다. 이전 같았더라면 불안을 느낄 틈 없이 별 의미 없는 정보들을 계속해서 뇌에 욱여넣었을 테니 말이다. 방 밖으로 자주 나가게 된 덕분에 부모님과 대화도 더 많이 하게 되어 좋은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자리를 잡게 됐다. 많은 모니터의 불빛 덕분에 필요 없던 스탠드를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고 몇 달 만에 책을 다시 잡게 됐다. 눈을 감고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음악을 더 심취해서 즐길 수 있었다. 만일, 내가 엄청난 부자라서 발전할 필요가 없거나 내게 주어진 날이 며칠밖에 없다면 곧바로 모니터 6개의 이전 상태로 원상복구 시킬 것이다. 하지만 난 부자도 아니고 아직 살아갈 날이 꽤 남아있으니(아마도)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해서 변화를 주며 나아가야겠다.
요새는 글쓰기에 꽤 집중하고 있다.